보호하심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호치민은 해 뜨는 시간이 많이 빨라졌네요. 호치민의 봄은 서서히 여름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합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이찬수 목사님의 <보호하심>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과의 추억은 위기가 닥칠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부인했다.
그러고는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하며 쌓았던 모든 것을 허물어버리고
‘더 이상 나는 이 생활을 할 수 없다’라고 판단하고 과거로 돌아갔다.
그런 그가 어떻게 회복되었는가?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를 만나주셨기 때문이다.
다시 불러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드로 역시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과의 추억이 너무 많기 때문에 도저히 그분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 빠졌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베드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물 위를 걷다가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어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러자 주님이 손을 내밀어 건져주셨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_마 14:29-31
그때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서로 마주치지 않았겠는가?
베드로를 건져주시던 예수님의 눈빛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
화가 나셔서 ‘이 골칫덩어리!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구나’ 하는 눈빛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물에 빠질 수밖에 없는 베드로를 향해 연민의 마음을 담은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을 것이다.
‘미안해하지 마라. 부끄러워하지 마라. 괜찮다.
내가 다시 건져주면 되지 않니?’ 하는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일생의 가장 수치스러운 사건이 될 수 있는 그 일이 주님과의 추억이 된 것이다.
베드로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때 주님의 그 눈빛을 말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배신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닭이 울 때, 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예수님이 그를 보셨을 것이다. 그 눈빛이 어떠했을까?
나 같았다면 실망의 눈빛을 보냈을 것이다. 증오의 눈빛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셨을 것이다.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내가 미리 말했잖니. 넌 그렇게 약해.
그래서 넌 나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란다’라는 눈빛을 느낄 때 베드로의 마음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평생 자기를 괴롭힐 수 있는 순간이 그 눈빛으로 인해 예수님과의 추억이 된 것이다.
우리가 ‘내가 얼마나 고결한가, 내가 얼마나 순결한가,
내가 얼마나 흠도 티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바리새인이다.
어떤 죄를 지었든 상관없다.
그 죄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우리는 주님과 추억을 쌓아야 한다.
어려울 때, 고독할 때, 눈물이 날 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내 힘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그때가 하나님과의 추억을 쌓을 시간이다.
그때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고 마음을 토해내야 한다.
목자이신 예수님...!!^^
나를 푸른 풀밭에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나의 목자, 예수님!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지켜주시고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선한 목자, 예수님!
내 이름을 아시고 나를 부르시며,
의로운 길로 이끄시는 나의 인도자, 예수님!
양은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양은 목자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양은... 잠잠히 예수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
저 문 밖에서 반가운 예수님의 음성이 들릴 때에,
양은 예수님께 달려갑니다.
양은 예수님께 안깁니다.
양은... 예수님만 따라갑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
(시23:1~6, 요10:1~30, 계3:20 )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히 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 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계최고의 명문대학인 미국의 하버드 대학은 1636년도에 설립되었습니다.
영국에서 이민을 온 가난한 노동자인 존 하버드가 세운 이 학교는
약 천만 원의 돈과 300여권의 장서라는 초라한 재원으로 시작했습니다.
하버드는 자신이 세운 학교가 단지 지성과 신앙을 겸비한 목사님들을 양성했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주님은 하버드를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어주셨고, 미국에서 가장 기금이 많이 모금되는 학교가 되게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가진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의 물고기는 너무도 작고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주님께 드려질 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놀라운 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이 일을 계획하고 행할지라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을 계획하고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언제나 선한 마음에 뜻을 두고 행동하십시오.
주님! 부르심에 언제나 응답하는 순종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일의 과정이나 규모보다는 오직 선한 뜻에 집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