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편지

아들의 기도

안규수 2015. 12. 29. 20:3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요즈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오는 새해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 


새해에는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여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마7:12)대로 살게 하소서. 


‘나의 처지와 상관없이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과분하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싶고,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받고 싶고, 

꾼 빚을 탕감 받고 싶고, 

하나 주더라도 둘을 받고 싶은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돌아 보게 하시고 

이 마음을 상대방으로 돌리게 하소서. 


‘상대방의 처지를 떠나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며, 

상황을 너머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며, 

먼저 용서하며, 

거저 꾸어주고 돌려 받지 않으며, 

하나를 받고 둘을 주는 손해도 감수할 수 있게 하소서.' 


새해에는 매일 매일

오직 나만을 바라보게 하는 

자아(옛사람)가 죽고 

오직 예수로 사는 

작은 예수로 살게 하소서. 


성령이여 

한 순간 ~ 

예수를 바라보지 않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는 

이 연약한 자를 도우소서.


24시간, 365일 

예수를 생각하고 바라보고 동행하는

에덴에서의 

친밀한 동행을 회복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찬수 목사님의 <기도하고 통곡하며>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사무엘에게서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은, 그가 정치적 과도기에 그처럼 큰 역할을 행함으로써 

백성이 많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자기가 직접 왕 노릇 하겠다며 자기 궤도를 이탈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한 번도 욕심을 내본 적이 없다. 
정말 귀한 모습이다.    

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했던 세례 요한과 똑같이 닮았다. 
세례 요한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는 역할을 감당하면서 한 번도 그 이상의 것을 탐한 적이 없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요 1:20)   

정말 귀한 모습이다. 
나 역시 이런 모습을 닮고 싶다. 
내가 견지하는 여러 목회 지침 중 하나가 세례 요한이 말했던 ‘광야의 소리론’이다.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 1:23)   

소리는 주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나면 조용히 사라져버린다. 
의사 전달을 하고서도 없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에코’이다. 
그래서 음향 전문가들이 방송할 때 제일 신경 쓰는 것도 에코를 죽이는 일이다.  

분당우리교회는 체육관에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에코를 잡느라 음향 봉사 전문가들이 얼마나 수고하는지 모른다. 
이미 자기 의사가 전해졌고 주인은 그 다음 말을 하고 싶은데 소리가 죽고 않고 맴돌고 있으니 다음 의사가 전달이 잘 안 된다. 
우리는 체육관의 에코를 잡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에코도 잡아야 한다. 

내 인생이 오십대에 들어 인생의 후반전에 진입하고 난 후부터는 ‘광야의 소리론’을 진지하게 내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서 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광야의 소리가 되기 원합니다. 
제가 하나님 아버지의 스피커가 되어 하나님이 원하실 때 소리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제 역할이 끝나면 미련 없이,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원합니다.”

가끔은 은퇴식도 안 하고 주일 마지막 설교를 끝으로 조용히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정말로 광야의 소리가 되기를 하나님 앞에 구한다. 

광야의 소리가 되기를 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는 내 역할을 다 감당하고 나면 사라질 소리이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가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비워졌다. 
그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소리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다.  

우리가 세례 요한이나 사무엘에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정하신 그 이상의 것을 탐내지 않는 것이다. 
사무엘은 절대로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품지 않았다. 
자기 자리를 잘 지켰다. 

세례 요한 역시 자기는 오실 메시아가 아니라고 분명히 선언했다. 
이것이 그 인생의 행복이 된다. 
내가 두려워하는 성경 구절이 있다. 
그 구절에는 비참한 인물이 등장한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행 12:21-23)   

피조물로서 자기 위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로 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이렇게 비참한 마지막을 맞고 싶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조물로서 우리의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궤도를 이탈하여 내 멋대로 폭주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것 이상의 것을 탐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왕이 되기를 탐하지 않았던 사무엘처럼, 
광야의 소리로서 하나님께만 영광 돌렸던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인생의 기쁨으로 여기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가 다 헤롯의 길이 아닌 사무엘의 길로, 세례 요한의 길로 나아가게 되기를 기도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로마서 12장 3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에베소서 4장 22~24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야고보서 1장 14, 15절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소중히 여기며 신실하게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교만함과 욕심이 제 안에 들어오지 않게 하시고 
사무엘과 세례 요한처럼 겸손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삼상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은‘사랑이란 마음을 열어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고 정의를 합니다. 

사랑을 할 때는 크게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1. 감정의 교류가 일어나며 상대방의 행동을 따라함. 
2. 뇌파가 서로 비슷해짐. 
3. 엄마와 갓난아기가 교감할 때 나오는 옥시토신이라는 신경안정 호르몬이 나옴. 

프레드릭슨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마치 몸은 두 개이지만 한 사람인 것 같은 반응이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은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사소한 대화나 작은 배려를 베푸는 낯선 사람을 통해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또 우리에게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밤 중에 닫혀 있는 연꽃은 햇살을 받을 때만 꽃잎을 활짝 엽니다. 
닫혀 있던 우리의 마음에도 예수님이란 빛이 찾아와야만 우리의 마음도 활짝 열리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더욱 닮기를 사모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몸도 마음도 날마다 주님을 더욱 사모하게 하소서.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