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올해의 작품상 수상자
김종완
기억나지 않는 시간
오랫동안 그를 찾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며칠간이나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그가 나를 부른다는 걸 알면서도 안 가고 버텼다. 견디고 견디다가 못 견뎌 찾아 갔을 때 그는 자고 있었다.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버린 살아있는 미라. 관자며 광대, 위턱과 아래턱의 뼈마디가 가파르게 드러난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등으로 불거진 앙상한 뼈들을 더듬었다. 그의 부인은 목이 잠겨 말소리가 이상했다. 사오일 전 의사가 준비하라고 해서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젠 위험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고 했다. 고비를 넘겼다는 그 말이 왜 그렇게도 공허하고 기막히던지, 나는 눈만 끔뻑거리며 멀대 같이 서 있었다. 그가 눈을 뜬 것은 한참 뒤였다. 무거운 침묵에 눌린 내가 갑자기 기침이 터져 나와 고개를 외로 꼬며 쩔쩔매는데 그의 부인이 말했다.
“여보, 김 선생님이 오셨어요.”
나는 터져 나오려는 기침을 참느라 목을 움켜쥔 채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을 목도했다. 그러나 우리의 눈빛은 마주치지 못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기름 떨어진 등잔불처럼 희미해져 있었고 이내 초점을 잃고 꺼지듯 감겼다. 눈을 감고 잔뜩 찡그린 그가 단발마적으로 괴상한 비명을 질러댔다. 부인이 얼른 그의 상의를 젖히더니 손가락을 세워 그의 몸을 마구 긁었다. 나는 차마 손가락을 세울 수 없어 손바닥으로 팔과 가슴께를 문질렀다. 그는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병실을 나왔다. 그날 그의 병실에서 내가 한 말이란 부인에게 ‘고생이 많으십니다’라는 작별인사 한마디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았을 때 갑자기 말문이 터졌다.
“그만 벗어나시게. 어서 그 몸 벗어버리시게. 제발 떠나시게.”
내 목소리가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그 낯섦이 하도 이상해서 그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미친 듯 혼자 중얼거리면서 낮은 폭의 진동으로 좁은 화장실 안을 떠도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기억나지 않는 시간> 부분
김 기 연
사촌언니가 있는 풍경 1
아침에 일어나보니 눈이 발목이 빠질 만큼 내렸다. 큰엄마가 우리 머리에 보자기를 뒤집어씌우고 무명목도리를 눈만 빼꼼이 남기고 감아주었다. 나에겐 큰엄마 옷을 더 입히고 언니도 옷을 껴입어 뚱뚱이가 되었다. 방안에서는 바깥이 추운 줄도 모르고 호기롭게 길을 나섰지만 눈바람이 금방 우릴 쫓아와 자라목을 하고 땅만 보고 걸었다. 언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소리쳤다.
“아 참! 땔감 가꼬 가야 되는데…. 어짜지?
언니가 두리번거리다가 산비탈에 떨어진 소나무 삭정이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언니는 나보다 크고 언제나 나보다 씩씩했다. 나도 씩씩한 편인데 얼마 못가서 내가 발 시리다고 울기 시작했다. 언니가 나를 달래다 안 되겠는지 벙어리장갑을 벗어 내발에 끼워주었다. 고무신이 신어지지 않아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하고 신발이 자꾸 벗겨졌다.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와 발은 깨지는 것 같았다. 언니는 눈을 털어내고 신을 다시 신겨주느라 손이 빨개졌다. 나는 언니가 보살펴주는 것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잉-잉- 마른울음을 울면서 어리광을 피웠다. 언니는 손에 입김을 불어가면서도 내 어리광을 받아주었다. 겨우, 정말이지 겨우 한 살 많은 아홉 살일 뿐인데 말이다.
우리는 눈밭에 먹이 찾아 나온 토끼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사방천지는 눈으로 뒤덮여 고요하기 짝이 없다. 솔가지의 눈덩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풀썩’ 눈밭에 떨어진다. 막막했나보다. 언니도 울었다. 참말로 ‘하는 수 없이’ 언니 집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되돌아가는 동안에도 계속 잉잉거렸다. 학교 빼먹는다고 꾸중 들을까 언니 뒤에 숨었는데 이상하게 큰엄마는 야단도 치지 않고 도리어 잘했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배를 깔고 몸을 녹이며 놀고 있었다. 얼마 후 ‘으흠’하는 기척이 들리더니 이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아이고 새 서방님 오싯네. 추븐데 얼릉 들어오시소.”
아버지는 아랫방에서 문을 빼꼼이 열고 내다보고 있는 나를 혼내는 얼굴로 쳐다보더니 안채 방으로 몸을 구부정하게 굽히며 들어가셨다. 한참을 있다가 나온 아버지의 눈은 토끼눈처럼 빨갛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다보는 큰아버지의 눈두덩은 꺼져서 동굴처럼 검었다.
“형님 들어가소. 감기 걸리요.”
큰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에헤- 에헤, 잔기침을 하셨다. 눈이 젖은 큰엄마는 또 앞치마에 코를 풀고 눈자위를 꾹꾹 눌렀다. 큰엄마가 아까처럼 내 머리에 보자기를 씌우고 눈만 보이게 목도리를 감았다. 아버지는 새끼줄로 신발을 묶고 말없이 내게 등을 돌려 대셨다. 아버지 등에 업히려다 빠꼼히 뚫린 보자기 사이로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씩씩하던 언니의 눈은 말로 할 수 없는 부러움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미안해서 안 업히겠다는 나를 아버지는 눈치도 없이 끌어다 업었다. 아버지 등에 엎드리며 언니의 눈길을 피했다.
“아부지, 큰아부지는 왜 저래 마이 아파여? 빨리 일나서 아부지캉 같이 언니도 업어주마 조을 껀데.”
“휴-. 그르케 말이다.”
<사촌언니가 있는 풍경 1> 부분
김현숙
절멸(絶滅)의 시간
섬은 온통 잿빛이다. 애초에 색(色)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섬은 한 마리의 거대한 익룡(翼龍)처럼 바다에 부리를 박고 엎드려 있고, 퇴색한 억새와 띠의 무리가 그 몸을 덮고 있다. 그것들은 들숨과 날숨에 들썩거리는 깃털처럼 바람에 눕고 다시 일어선다. 멈추는 순간 바다 깊숙이 가라앉기라도 할 것처럼 그들의 몸짓은 쉼이 없다.
지난봄에 섬의 깃털은 병아리의 그것처럼 가늘고 부드러운 연둣빛이었다. 여름엔 매의 날개처럼 힘이 있었고 진한 초록을 띠었다. 그때 섬은 곧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처럼 싱그러웠다. 11월의 비 내리는 저녁, 섬의 깃털에선 색(色)이 사라지고 있다. 털갈이를 시작한 양 숭덩숭덩 밑바닥도 보인다. 억새꽃이 갓 고개를 내밀었을 때의 보랏빛 신비도, 10월의 은빛 출렁임도 순간이었던 듯 사라져버렸다. 다른 곳에 비해 퇴색이 빠른 건 색(色)을 탐하는 바닷바람 탓이려니 싶다.
내가 아는 갯바람은 호색한이어서 강열하고 아름다운 색일수록 서둘러 채어 갔다. 괘씸하게도 녀석은 어머니의 물옷에 과한 욕심을 냈다. 우리가 즐겨 입던 꽃무늬 셔츠도 어머니의 물옷이 되는 순간 어느새 색을 빼갔고, 심지어 고무바지 속에 입는 검정 스타킹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빨랫줄에 걸린 어머니의 물옷들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갯바람이 범하고 간 흔적들을 내비칠 때마다 나는 그 남루함이 싫어서 괜스레 고개를 돌렸다.
<절멸(絶滅)의 시간> 부분
송혜영
첫사랑
내 애잔한 사랑을 위로하기 위한 신의 배려였을까. 졸업을 앞두고 교무실 앞에서 그와 딱 마주쳤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성격의 강렬한 시선이었다. 우리를 중심으로 배경이 빙그르르 돌았다. 하지만 잠시 강하게 얽혔던 시선은 풀어지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러고 그뿐.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내 시시한 청춘의 한 장이 저물었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나는 염원하던 운동권이 되지 못했다. 유신말기의 정치 상황이 워낙 살벌해 대들기도 무서웠다. 그들이 나 같은 사람을 원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 내 신념의 허약성을 절감하며 현실과 타협했다. 대학의 수준에 맞춰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대학생이 되었고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고 나름대로 바빴다. 그래서 잠시 그를 잊고 있었다.
2학년 무렵이었다. 그가 갓 스물에 연로하신 조부모님의 성화에 정해준 처녀와 후딱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술 더 떠서 고향에서 조부모님 모시고 농사짓고 산다는 그가 잠시 동창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막연히 그가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에 진학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격훈련이나 사격연습에 열심일 줄 알았는데…. 너도 나도 야망을 실현시키려 찾는 서울을 굳이 버리고 떠난 그가 어쩐지 멋져 보였다. 한편으로 나와 말 한 번 나눠 보지도 않고 그렇게 빨리 시골 처녀의 서방이 된 그가 참 야속했다. 얼마동안 나는 그와 같이 논밭 갈고 저문 강에 삽을 씻었다. 밤에는 함께 글을 읽고 슬픈 영혼을 안아주었다. 그와 살림을 차리는 상상만으로 상실감을 달래며 첫사랑과 허망하게 결별하고 말았다.
붕어빵을 보면 매번 파블로프의 개가 된 건 아니다. 내 행복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시절에는 길거리 주전부리에 덤덤했었다. 붕어빵에 본격적으로 감정이입이 된 건 굳건하리라 믿었던 산이 흔들린 다음부터일 게다. 신산스러운 삶의 고비를 넘기면서 사는 게 영 시시할 때, 심신이 대책 없이 허물어질 때,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그가 떠올랐다. 우리 사이에 내세울 만한 애틋한 사연도 없는데 그가 간절했던 건 왜일까. 내게서 연민을 끌어낸 최초의 이성이어서 인가. 문학적 교감을 한 구체적 대상이어서? 흔들림 없이 굳건히 나를 지켜준, 강철 같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이팔청춘의 풋풋하고 순정한 시선에 대한 갈증 때문일까. 정직한 노동이 삶의 기조인 인간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그가 첫사랑의 이름으로 내 삶에 틈입한 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 이유다.
<첫사랑> 부분
안규수
정글은 말이 없다
중대에 배치된 지 20여일 만에 처음으로 연대 규모 작전에 투입되었다. 먼동이 트기 전 우리 부대는 광활한 평지를 지나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베트콩은 아군이 지날 만한 길에 부비트랩 등 교묘한 무기를 설치해서 진격을 방해하고 있었다. 작전 개시 일주일쯤 지나 모든 병사들이 잠든 새벽, 섬광이 번쩍하더니 폭음이 터지고 진지 내에 적의 총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기습공격이었다. 거의 동시에 출동한 아군들은 적진에 맹렬히 포탄을 퍼부었고 10여 분 만에 전투는 끝났다. 병사 두 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 별다른 피해는 없었다. 자욱한 포연 속에 나의 첫 전투는 이렇게 끝이 났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밀림지대를 오르내리는 적진 수색작전은 계속되었지만 적과 큰 교전은 없었고 보름 만에 정글에서 철수했다.
작전이 끝나고 연대본부 휴양소에서 쉬고 있을 때 연대운동장에서 이번 작전 중 적진에서 노획한 전리품을 전시한다기에 가봤다. AK소총 등 다량의 적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대단한 전과에 조금 의아했지만 그냥 무심코 넘어갔다.
두어 달 뒤, 우기가 그치자 사단 규모의 작전이 시작되었다. 적들은 지난번과는 전혀 다르게 이번에는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술을 펼쳤다. 치열한 교전으로 많은 전우가 죽거나 부상당했다. K중사도 야간전투에서 전사하였다. K중사는 공포에 질려 방황하는 신병들을 다독였고 아비규환의 극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병사들을 도왔다. 특히 나에겐 동향이라고 각별이 대해줬는데, 나는 아파할 시간도, 애도할 시간도 없을 만치 공포 속에서 그를 보내고 말았다. 그의 죽음은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나는 공포와 우울증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돌아가신 아버지가 찾아오셨다. 아버지는 문밖에 서서 물끄러미 날 바라보셨다.
“아부지!”
놀라 달려 나가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
“몸조심 허야 쓴다.”
어린 시절 내게 늘 이르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또렷이 들려왔다. 그 음성은 나를 새파란 하늘과 감나무와 대추나무가 있는 그리운 고향집으로 데려갔고, 숨 막히는 전쟁터의 공포를 잠시 내려놓게 했다. 그때 나는 이승과 저승이 그다지 멀지 않음을 알았다. 이쪽과 저쪽은 분명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믿음이 싹 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늘 나를 지켜보셨던 것만 같았고, 내가 죽음의 고비를 간신히 넘어온 것도 아버지의 보살핌 덕분이었던 것만 같았다.
중대에 배속된 지 8개월이 지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전투에 자신감이 붙은 전사(戰士)가 되어갔다. 작전이나 매복이 그다지 두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밤이었다. 밤이 되면, 별들이 총총한 밤이 되면, 남십자성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곤 했다.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어머니의 모습과 어린 것에게 젖을 물린 아내의 모습이 별자리에 어른거렸다. 그 모습들은 닿을 수 없는 머나먼 별자리에, 뼈아픈 그리움의 모습으로 어른거렸다. 그 이름만으로도 목이 메는 그리움. 그리움이 그토록 큰 고통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 정글은 말이 없다> 부분
엄기백
부끄러운 날들
후배는 지난 3월 26일 저녁에 퇴근하고 자기 집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그의 아내는 둘만의 오붓한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한참을 기다리다 남편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 문을 열어봤다.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재빠르게 119에 신고를 해서 소방대원이 와서 문을 뜯었다. 쓰러진 그의 몸이 화장실 문을 막으며 널브러져 있었다. 앰뷸런스로 다급하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던 중 그의 의식은 사라져버렸고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뇌사판정을 받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 후 병원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를 포기(?)하기에 이르러 며칠을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었다.
상반기 정기공연 <부산 상인 서일록>(원작: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베니승의 상인) 준비에 정신이 없던 나에게 누군가 그 후배의 다급하고 한심한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워낙 정신이 없었던 터라 이삼일이 지난 후 그의 아내를 찾았다. 그의 아내는 찾아간 사람이 무색할 정도로 남의 얘기하듯 담담하게 말을 던졌다. 마치 투정하듯, “우리 남편 죽었니더!”라고 하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니 죽은 거잖아요!”
너무 늦게 찾아온 나의 무심함을 꾸짖는 걸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솔직히 그런 그의 아내의 액션에 적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가 이렇게 냉정하지? 뭐야? 이 상황이?”
무어라 위로할 수도 더 이상 되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 몇 날을 보내며 거의 매일 그녀를 만나 그의 안부를 묻곤 했다. 호전은 없었다. 그녀의 생각은 단호하고 간단했다. 중환자실에서 식물인간의 수순을 밟는 장기전에 돌입한 남편의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와 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 학비 때문에라도 본인은 부지런히 출근해서 커피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치의 틀림이 없는 정확한 판단이고 당연한 액션이었다.
유독 생활력이 강한 후배의 아내는 1년 반 전쯤 경주예당 2층 커피숍 운영권이 바뀔 무렵 열과 성을 다해 임대권을 얻었다. 그리고 후배는 본업인 경비업무에 전력을 다하고 그녀는 열심히 커피 공부를 하며 맛있는 커피를 뽑는 데 온힘을 쏟으며 중년 이후의 모델이 되는 바람직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는 2층과 지하층 정도 지척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로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답답하게 어떤 조치도, 조언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마냥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날 후배는 깨어났고 조금씩, 더디지 않은 속도로 회복이 되어 외형상으로는 거의 정상을 되찾았다. 놀라운 일이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고 기적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더니 머리에 약간의 후유 증세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이 되돌아와서 한 달여 만에 퇴원을 했다.
그렇게 ‘기적’이라는 단어가 잘 맞아떨어지는 상황은 이 나이를 살 동안 거의 처음이었다.
<부끄러운 날들> 부분
윤 춘 신
희망, 그 쓸쓸한 속임수
진짜 서울에 살면 일하고 공부하고 그 공부를 마치고도 열두 시 전에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요동을 친다. 격렬한 파동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진짜 서울에 살면 어디 공부뿐이랴. 이제부터 노후 준비를 해도 늦지 않을 터이다.
조금 길어진 서울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있다. 열네 평 아파트의 월 임대료 십사만육천사백팔십 원과, 관리비 구만오천칠백구십 원이 통장 잔고가 될 것이다. 통장 하나쯤은 애쓰지 않아도 만들어진다.
서울, 진짜 서울로 가야겠다.
길어진 서울이여, 안녕이다.
나이는 전혀 상관없다면서 이력서만 떼어먹은 00마트여, 잘 있어라. 00주택공사도 잘 있어라. 내년 삼월에 나는 임대아파트 계약갱신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년 전에도, 그 이 년 후에도 나는 근로빈곤계층이었다.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을 못 면해서 도움이 필요해요’ 라는 고백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른다. 굿 바이다. 본드 냄새에 멀미가 나던 자동차 하청공장도 잘 있어라. 밤새도록 실려 나오는 빵을 지키던 삼만 팔천 원짜리 컨베이어벨트도 잘 있어라.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는 말이 사실인지 보여 달라던 고객님이여, 잘 있어라. 저소득계층의 자립을 돕겠다며 팔십만 원에 십일 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들이밀던 00구여, 너도 잘 있어라.
아름다운 서울에서 아름답게 살기 위해 지난 주말 서울에 다녀왔다.
<희망, 그 쓸쓸한 속임수> 부분
이조경
사이좋으세요?
화폭 전체를 통틀어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은, 그늘, 다음은 환한 햇살, 다시 그늘을 지나 햇빛이 비치는 구간으로 반복된다. 마치 삶의 고락과 희비가 교차하듯이.
두 사람 사이에는 각자 서로를 향해 팔을 뻗으면 손끝이 닿을 듯한 거리가 있다. 그림의 구도상, 팔짱을 낀 경우보다 더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배치가 단순히 구도상의 안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화가는 왜 두 사람 사이에 이 공간을 두었을까?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에서 하느님과 아담 사이의 거리를 손끝이 닿을락말락하게 그렸다. 그 작은 틈새가 결정적인 창조의 공간, 창조의 여지라는 생각이 든 것도 요즘 들어서이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표지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를 사람[人間]이라 한다. 사람[人]은 관계맺음에 의해서 사람[人間]이 된다. 間은 사이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관계 속에는 사이가 있어야 하고, 적정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지 싶다. 그렇다면 그 적당한 거리는 얼마큼이어야 하는지.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말했다, 기둥은 떨어져 있어야 지붕을 받친다고. 우리말에서 ‘사이가 좋다’는 말의 의미가 화두(話頭)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예전에 남들이 남편과 나를 두고 ‘사이 좋아 보인다’고들 했다. 아마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주 서로 헤어져 있었던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수시로 출장을 다녔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적일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있는 거리가 약이 되었다.
그림 속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화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관계의 암시일까. 믿고 이해한 자들만의 편안한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 카유보트가 젊은 나이에 꿈꾸어 본 중년의 로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46세에 독신으로 타계했다.
화가는 두 사람 바로 앞에 쏟아지는 햇빛과 나무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순간을 빛과 그림자의 극적인 대비효과로 표현하고 있다. ‘한 찰나도 머무름이 없는 세상만사, 그러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하라’고 그림이 말하는 것 같다.
<사이좋으세요?> 부분
이현주
컴백홈
처음 부딪힌 난관은 농장에서 통용되는 화폐 ‘골드’의 부족이었다. 시골생활은 돈이 안 들 것 같지만 거름과 장비를 구입하는 푼돈부터 창고와 집을 증축하는 목돈까지 자금이 필요했다. 골드가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레벨을 올릴 수가 없었다. 시작할 때 받은 정착금은 밭을 사느라고 벌써 바닥났다. 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때쯤 되면 시세가 엉망이어서 모종 값도 못 건지는 날이 많았다. 한꺼번에 출하되는 것이 가격폭락의 원인인 것 같아서 나는 절기보다 하루 이틀 앞서 심고 남보다 일찍 내다 팔았다. 풋마늘이 똥값이라고 징징대는 글을 보며 같은 행동과 후회를 반복하는 융통성 없음을 비웃었다.
장사를 잘 해도 골드 부족은 여전해서 비료를 사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머리핀이 가끔 들러서 골드를 보태주었다. 머리핀은 이곳에서 레벨 50의 고수였다. 그녀는 넓은 농장에 전원주택을 짓고 자가용 비행기까지 있었다. 쪼들리는 나에게 골드뿐 아니라 쓰던 농기구를 던져주기도 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친구마저 없었다면 진즉에 거지가 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걸까.
하루는 마음먹고 이웃농장이며 게시판이며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녔다. 게시판에는 안부를 주고받는 사랑방과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방이 있었다. 그런데 매매되는 물건과 단위가 이해되지 않았다. ‘시균 금반 22억’ ‘바씨 금목 40억’ 하는 식이었다. 나는 십 만 골드 연구비가 모자라서 절절매는데 게시판의 돈 단위는 딴 세상 같았고 희한한 이름들의 정체는 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궁금한 것을 배워 나갔다.
시균 금반은 ‘시간의 균열 금반지’의 준말로 시간의 균열은 작물이 성장하는 시간을 단축해주었다. 재료 중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물건인데 시균 금반지를 끼고 수확하면 밭에서 시균이 쏟아져 나왔다. 바씨 금목은 ‘바람의 속도로 씨앗을 심는 목걸이’ 이런 식으로 낯선 용어들을 이해했다.
<컴백 홈> 부분
조성자
소리 삼색
소리를 빼앗고 인간들이 얻으려 하는 것들의 미미함에 부끄러울 뿐이다. 테크놀로지를 빌어 외로움을 “멍멍멍”과 상쇄시키고 변명꺼리 근사하니 지어내고. 우리가 포기하고 얻은 것들이 이제 우리들 자신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테크놀로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귀 고막 안에 스물 네 시간 이내에 의무적으로 집어 넣어야 하는 일정량의 비 자연음 내지는 머신 소리가 있는 건 아닌지. 그 적정량 밖의 모든 자연의 소리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삭제해버리는 건 아닌지. 먼 옛날 반고의 침묵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 내지는 인내심 부족일까. 자연의 소리에 대한 향수의 변질일까. 아니면 인공소리에 대한 면역력 상승일까.
가마솥에서 김 새 나오는 소리, 엄마와 할머니의 도란거리는 소리, 도마질 소리. 그릇들 달그락거리던 소리는 모두 사라지고, 전기밥솥이 정확히 예약된 시각에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를 어김없이 두 번 반복한다. “띠리리리” 현관 벨이 울리고 주문한 치킨 택배가 도착한다. 설거지도 머신이 “쏴아”해낸다. 강물 흐르는 소리나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는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삽시간에 임무를 완성한 세탁기가 “삐리리릭” 소리를 낸다. 머신들이 내는 소리에 길들여져 가는 줄 알면서도 집안일을 대충 끝내면 손에 쥐는 건 텔레비전 리모컨. 사람목소리들이 텔레비전이라는 머신에서 쏟아져 나온다. 뉴스 소리, 드라마 소리, 광고 소리 또 다른 광고 소리. 저녁 식사 시간에도 가족들끼리의 대화가 끊긴 곳에 쉼 없이 텔레비전 소리가 채워진다. 이렇게 소리를 몸속에 담는다. 하루에 들어야 할 소리를 가득 채웠다싶으면 머신을 끈다. 텔레비전 끄고 컴퓨터도 끄고 스마트폰 모닝콜 예약하고 자리에 눕는다. 오늘 들어야 할 소리의 정량에 부족을 채우기라도 하는 듯 한밤중 어디선가 구급차 소리가 급하니 들려온다. “띠웅 띠웅 띠웅.” 카즈오 이시구로의 <네버 렛미 고(Never Let Me Go)>를 펼치는데 슬그머니 나타난 아인슈타인이 나의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팔베개를 한다. “그르릉 그르르릉.”
소리 삼색> 부분
현정원
아버지의 비밀정원
1층 카페에 내려가 카모마일과 블루베리스콘을 사들고 병실로 돌아온다. 이런, 서쪽 창문 너머의 저녁 해가, 동그란 제 몸을 온전히 드러낸 샛노란 해가, 노란벽지가 발린 병실을 더욱 노랗게 물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아버지의 병실은 다름 아닌 카모마일 꽃밭이다.
침대 옆 커튼을 당긴다. 노랗게 물든 아버지의 얼굴에 푸른 그늘을 끌어다 놓고 의자를 가져다 가리개 앞에 놓는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푸른 가리개를 담장이벽 삼아 따뜻한 카모마일을, 그 노란 액체를, 마시는 것이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내 시작을, 내 최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어둠과 고요 속 아주 조그만 점, 나를.
소리들이 점차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도, 아버지의 숨소리도,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아득해져간다. 아, 엄마의 자궁! 그래, 어쩌면 나의 최초는 아버지와 엄마가 사랑을 나누던 그 순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솟구쳐진 아버지의 씨가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있는 엄마의 알에 끼워져 태반에 들러붙던 그 순간. 두 사람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합쳐져, 서로를 끌어안은 채, 상대를 기쁘게 해주려 애쓰던 그 순간. 매혹된 두 육체가 불쑥 달려들어, 합쳐져, 넘실대는 가운데 내가 생겨났다는 게 새삼 감격스럽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몸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눈을 감은 채 앞을 바라본다. 희붐한 어둠 속에서 노랗기도 하고 하얗기도 한 것들이 움직이고 있다. 가끔은 작은 섬광이 번쩍이기도 한다. 마치 구겨서 비비다 다시 편 금박종이 같은 느낌. 내가 엄마의 뱃속에서 보던 광경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때 듣던 소리는? 엄마의 심장소리, 위와 창자를 오가는 음식물 소리들이지 않았을까. 6살 언니가 재잘거리는 소리, 2살 오빠가 칭얼거리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엄마가 마구 소리를 질러대 귀를 막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다정하게 소곤거려 귓바퀴를 쫑긋거렸을지도. 희붐한 엄마의 뱃속이 암흑으로 변할 때면 나도, 느린 리듬의 숨소리듀엣을 들으며 잠을 청했으리라. 불현듯, 아버지가 나를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안아줬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엄마의 몸에 감싸인 채 나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고 안겼던 것이다.
아버지가 몸을 뒤척이며 신음소리를 낸다. 허리가 아픈 게다. 일어나 아버지를 살핀다. 아버지가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의자로 돌아와 카모마일을 한 모금 마신다. 몸이 나른하다. 의자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나도 다시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드디어 그날이다. 어둠 속, 내 안온한 동굴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천장이 내려앉기도 하고 바닥이 솟구쳐 오르기도 하면서 내 공간이 용트림을 하고 있다. 거친 숨소리에 섞여 엄마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들려온다.
출처: 에세이스트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