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읽고 싶은 수필

3월의 새 아침에/ 백남오

by 안규수 2016. 11. 13.



   3월의 새 아침은 설렘으로 시작된다.

   개학식 날 아이들의 환호성 속에 발표되는 새 학년, 새 교과, 새 담임. 새로움이란 사람의 나이까지도 잊게 할 정도로 가슴 울렁이게 한다. 올해는 또 어떤 예쁜 여고생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새 담임인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첫 시간, 그들 앞에 어떤 표정을 지으며 교실 문을 열까. 무슨 말을 먼저 할까. 아이들은 나를 담임으로 만난 것에, 얼마나 좋아하며 기뻐할까. 행여 실망하지 않을까. 모두가 숨 막히도록 긴장되는 순간들이요,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다. 이 순간, 삶의 어떠한 고뇌도 잊어버리고 오직 티 없이 맑고 밝은 소녀들의 미소만 생각할 뿐이다. 이 아름다운 새아침에 내가 아이들을 위하여 준비한 선물은 <꿈이 있는 하루>, <꿈이 있는 하루를 위하여>, <꿈을 심어 주세요>라는 꿈 보따리다.

   <꿈이 있는 하루>는 내가 맡은 학반의 학급경영 목표이고, <꿈이 있는 하루를 위하여>는 나와 학생들이 대화를 주고받은 책의 이름이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꿈 노트라고 부른다. 이 공책은 우리 반 학생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는 필수품인데, 맨 앞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제들이 적혀 있다.

   “나의 꿈을 위하여, 20년 후 나의 모습, 나의 이상적인 남성상, 내가 생각하는 참 행복, 참 우정과 내 친구,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참된 효도란, 내가 읽은 감명적은 책, 우리 학급의 담임이라면, 좋아하는 계절과 추억, 내가 존경하는 분.”등등이다.

   일주일에 글제 하나를 임의로 골라 써서 제출하면, 그 글의 뒤에다 나의 진솔하고 정성어린 생각을 적어서 다시 돌려준다. 그러니까 이 노트는 나와 아이들을 이어주는 대화의 끈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일 년 동안 우리는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다.

   글을 쓰기 싫어하는 요즘 아이들이라 처음에는 상당한 부담감도 가지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우리만의 대화에 푹 빠져들게 된다. 글을 통하여 그들의 작은 문제라도 발견되기만 하면 정성을 다해 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의 장점을 가려내어 추켜세워 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꿈을 심어 주세요>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교과 선생님께 인사할 때 드리는 우리 반의 구호이자 메시지이다. 이 인사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꿈을 심어 달라고 인사한 처지에 졸수도 없고 딴 짓을 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니 수업 분위기도 늘 살아 있다. 선생님 쪽에서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요구가 아닐 수 없다. “꿈을 심어 달라고 주문한 육십 여개의, 맑은 눈망울 앞에서 어느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우리 반은 온통 꿈투성이의 학급이다.

   나에게 교육관이 있다면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일이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현실과 고통 속에서도, 지금의 모습이 초라하고 비참할지라도, 내일을 향한 꿈이 있기에 고난과 고통과 초라함까지도 이겨 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실업계이기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소외 받은 면도 있다. 가정적으로도, 학업성적 면에서도 그러하다. 때문에 어린 시절 이들이 꾸었던 화려했던 꿈들은 고교 입학과 동시에 버려지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나는 감히 말한다.

   “여러분은 이 교정에서 어린 시절 꾸었던 꿈들을 모두 실현 할 수 있습니다. 세계를 이끌어 가는 여성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선생님도, 사업가도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점에서 그 꿈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강조한다.

   “그런데 꿈은 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끝없이 노력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담금질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나의 이 같은 말은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학교에 안주시키기 위함만은 아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이 교정에 입학하여 좋은 직장을 잡아 자기의 꿈을 실현 시켜 나간 수많은 그들 선배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중견간부가 된 사람, 책임 있는 은행원, 교직의 길을 걷는 사람, 스스로 이루어낸 사업가의 자리, 특정 분야의 전문가, 육군 장교의 길, 시인의 길, 성직자의 길, 내가 지켜본 이들은 모두가 억척같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잠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고독하고도 치열하게 스스로의 길을 창조한 그들의 선배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굳이 한 가지 길만 강조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사람이 가야 될 길은 수없이도 많은데, 왜 모두가 가는 길로만 이끌어야 하는가. 목적 없이 가는 대학과 억지로 하는 교과공부가 그것이다. 현실적 고려 없이 당장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은 아닐 것이다. 그 글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기에, 나도 가야만하는 길처럼 느껴질 뿐이다.

   길은 얼마든지 있다. 전문 기능직도 있고, 좋은 기업체에 취업하여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진학하는 길도 있다. 이럴 경우 여러 가지의 특혜로 쉽게 진학할 수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도 있다. 한 가지 길만 고집하는 것만큼 무지하고 맹목적인 것도 없다. 그 길을 가지 못할 때 꿈을 잃게 되고, 꿈을 잃을 때 삶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행동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불행한 일이다. 또 성공이라는 것이 학교 공부만 그 기준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 길은 복잡하고 비좁을 뿐이다.

   사람을 사귀는 일, 계산을 잘하는 길, 컴퓨터를 잘하는 길, 인사를 잘하는 길, 피부 관리를 잘하는 길, 식물을 잘 키우는 길, 동물을 잘 기르는 길, 노래를 잘 부르는 길, 개성적인 연기를 잘하는 길, 청소를 잘하는 길,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길, 이 외도 찾아보면 길은 얼마든지 더 있을 것이다. 그 많은 것 중, 교과공부 하나 안 된다고 실망하지 마라. 꿈을 포기하지 말라. 길은 얼마든지 있다.

   사랑하는 나의 꽃들이여, 오늘도 우리의 꿈을 향하여 가슴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자. 이 찬란한 3월의 새아침에.

 

이 책을 읽고

이번 동학사 세미나에서 뜻밖의 한 분을 만났다. 경남대학교 백남오 교수가 그분이다. 일찍이 그의 <지리산 황근 능선의 봄>(2009)<지리산 빗점골의 가을>(2012) 두 권의 저서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터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분이 우리 에세이스트 세미나에 참석했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세미나에서 백교수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그의 세 번째 저서 <지리산 세석고원의 여름>(2015)이다. 앞서 두 권은 지리산을 사랑하는 저자의 치열하고도 섬세한 성정이 담겨 있다면 이 책은 그의 태어난 교향, 어린 시절, 성장과정, 30여년 교사 시절의 애환과 교육철학이 작가자신의 진솔한 고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의 수필은 우선 문장이 수려하다. 한 군데의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하고 어려운 문장도 없다. 그러니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요컨대 그의 수필은 인생론 등 다양한 무늬들을 복합적으로 드러내 마음이 훈훈하기도 하고 때론 눈물짓기도 한다.

“3월의 새 아침에는 그가 교사로 재직하면서 열정적으로 쏟아 부은 제자 사랑이 잔잔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그의 교육관이 퍽 인상적이다.


'다시 읽고 싶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독(毒) /김은주  (0) 2016.11.21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김채영   (0) 2016.11.16
고개 / 목성균  (0) 2016.11.13
울지 않는 반딧불이/박일천  (0) 2016.10.14
겨의 노래/김선주  (0) 201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