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싶은 수필159 생명 생명 목성균 자고 나니까 링거액을 주사한 오른팔 손등이 소복하게 부어 있다. 링거액이 샌 모양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멀겋게 부은 아버지의 손, 중풍이 오신 고통스러운 말년의 손을 내가 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자지간의 생명의 바통인가. 나는 아버지의 말년, 그 손을 잡고 병고를 위로해 드리곤 했었다. 아버지의 손은 퍽 크다. 내 손은 아버지의 손에 비하면 너무 병약하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숭배한다. 사랑한다. 어쩌면 지금 내 손이 아버지의 손과 똑같을까? 생명은 닮는다는 뜻 일까? 고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가정실습 때다. 집에 왔다가 모내기를 돕게 되었다. 뒷골 천수답에 모내기를 했다. 나도 열심히 모를 심었다. 식구들과 일꾼을 몇을 얻어 가지고 모를 심었다. 아버지는 며칠 동안 빗물을 잡아서 논.. 2023. 12. 25. 목성균의 ‘국화’를 읽으며 내 고향 뒷산은 이 맘 때쯤이면 들국화 천지다. 가을이 오면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뒷산에 올라 술 때문에 위장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 약초로 쓰기위해 쑥부쟁이를 캐서 지고 내려왔다. 어머니는 평생을 외롭게 사셨지만, 그 긴 긴 세월 외로움을 안으로 삭이셨지, 밖으로 드러내시지 않으셨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이었다. 뜨뜻한 아랫목에서 곤히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날 흔들어 깨우셨다. 또 술을 드셨는지 술 냄새가 코를 찔렀고 얼굴은 붉으래한 홍당무 같았다. “작은집에 가서 느그 아부지 좀 모셔오그라.” “왜?, 아부질 모셔와? 아버지는 일 년 내내 작은집에만 계셨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옷을 입고 방문 앞뜰을 막 내려서는데 어머니는 또 날 불렀다. “가지마라, 그냥 방으로 들어와, 어서.” 그.. 2023. 12. 25. 한 그루 우주수宇宙樹 / 정승윤 한 그루 우주수宇宙樹 / 정승윤 나무는 자라면서 갈라졌다. 갈라져 두 개의 나무처럼 자랐다. 줄기가 자라면서 한 나무의 둥치처럼 되고 또 두 개의 줄기로 갈라졌다. 줄기가 갈라져 가지가 되고 가지가 벌어져 또 다른 가지가 되었다. 두 개로 갈라진 나무는 두 나무처럼 마주보고 자랐다. 서로 껴안는 것처럼 둥근 둘레를 이루었다. 하나의 가지 끝에 잎들이 피어났다. 하나의 가지가 하나의 나무처럼 자랐다. 하나의 나무가 끝없이 갈라지며 하나의 숲이 되었다. 하나의 나무가 우주수가 되었고 모든 생명들과 공생했다. 한 그루의 나무 곁에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자랐다. 두 나무는 자라면서 점점 더 가까워졌다. 두 나무는 마치 한 나무처럼 얼싸안고 자랐다. 새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갔다. 햇볕은 나무들의 잎 사이로.. 2023. 12. 9. 팽나무 / 정승윤 팽나무 / 정승윤 나 죽으면 봉분을 쓰지 말아다오. 손등만한 무덤도 필요없다. 누구도 찾을 이 없기 때문이다. 나 죽으면 한 조각의 돌도 세우지 말아다오. 단 한 줄의 비문도 필요없다. 누가 진부한 내 삶의 기록 따위를 찾아 읽겠는가. 나 죽으면 내 뼈를 곱게 갈아서 팽나무 옆에 묻어다오. 내 삶이 고스란히 그 뿌리에 스미게 하여다오. 팽나무 가지는 오늘도 허공에서 뒤틀리고 꼬부라진다. 고통 뿐인 뿌리의 삶을 낱낱이 그대로 증언해 주고 있다. 내 삶은 악했거나 선했거나 또는 비루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팽나무는 오랜 인내처럼 서로만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상형문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23. 12. 9. 이전 1 2 3 4 ··· 4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