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69 동백숲길에서 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 2025. 2. 23. 거울/정승윤 거울/정승윤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 속에 또다른 내가 있다. 그와 나는 쌍생아처럼 웃는다. 이마를 맞대면 샴쌍둥이 같다. 거울 속 세상은 이곳 세상과 너무 닮아 있다.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다. 화병에 꽃이 있었던 기억도 함께 한다. 그 언저리에 허무도 함께 있다. 그와 나의 거리는 백짓장처럼 얇다. 금방이라도 찢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문지방만 건너면 갈 수 있는 저승길 같다. 때로는 거울 속 세상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거울 앞에서 나는 죽음을 묵상한다. 그 세계로 조용히 옮겨 가고 싶다. 삶과 죽음은 너와 나처럼 언제나 함께 했지만 한 몸은 아니었다. 그러나 삶이 사라지면 죽음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이래도 우리는 죽음 이후를 모른다고 할 것인가. 2023. 12. 9. 세상의 절반/진은영 세상의 절반/진은영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 나머지는 물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붉은 물이 스민다 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 세상의 절반은 삶 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 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2023. 12. 9. 인연 인연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의 의한 의견 • 21시간 인연 맨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모르는 사이였지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한 그 순간 나는 키가 작아 앞줄에 앉고 너는 키다리. 맨 뒷줄이 네 자리 아, 우리가 어떻게 단짝이 됐을까! 키다리 친구들과 둘러서서 바람이 가만가만 만지는 포플러나무 가지처럼 두리번거리다 나를 보고 너는 싱긋 웃으며 손짓한다 너를 보면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 내 입은 벙글벙글. -황인숙(1958~) 마지막 두 행이 멋지다. “내 코는 절로 벌름벌름/내 입은 벙글벙글”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어,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진짜 친구를 보면 말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다. 친한 사람들은 멀리서도 서로 알아볼 수 있다. 중학교 동창, 오랜 벗들을 만날 때.. 2023. 12. 5. 이전 1 2 3 4 ··· 1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