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보내는 내 눈에 우연히 신동엽의 시가 들어왔다. 처음 보는 시는 아니다.
오히러 어느 때 입에 달고 다닌 적인 있는시다. 그 시절 내가 왜 저걸 외고 다녔는지 기억에 없다.
'그리운 그의 노래
맑은 그 숨결
들에 숲길에 피어날지어이'
이 리듬을 그저 좋아했던것 같고 다시 찾을 수 없다는 서러운 정서에 괜히'필'이 닿은 것 같고
'~지어이'라는 어미가 품은 피리소리 같은 떨림과 복고조에 실없이 감응한 것 같다.
그러나 저 노래에 담긴 가슴미어지는 분통과 의연한 극복과 그만큼 간절하게 솟아오른 재생의
믿음과 기운을 당시 나는 몰랐다. 알턱이 없었다.
그리운 그의 모습, 그리운 그의 노래를 갖지도 못했으니 잃어버린 망실감을 알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저 노래의 한 절만 읽어도 눈 안 가득 눈물 고인다.
딱히 슬픔이라고 규정할 순 없다. 새벽 우물에 우물물이 고이듯,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아오른 눈물이다.
눈물은 원래 불순물은 가득 담고 있어야 하련만 그의 모습, 그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눈물엔 탁기가 없다.
그를 기억하는 내 마음이 아픔보다는 감사가, 분노보다는 그리움이, 탄식보다는 애정이 더 크기에 눈물은
새벽 우물물처럼 청신하게 하늘을 가득 담고 흔들린다. 시인 신동엽이 저 노래를 부른 연도와 배경을
나는 모른다. 그도 나처럼, 이 시대 우리들처럼, 애통하게 잃어버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이 없었으랴. 폭압의 시대, 부당한 박해의 나날을 가난하게 뜨겁게 건너온 시인인데!
12월의 끝자락, 빰을 때리는 바람이 아프지 않다.
나는 지금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이지만 이 산천 곳곳에 깃들은 그의 숨결을 느낀다.
'울고 간 영혼'이 저기 맑은 소리를 내며 포릉 포르릉 날아가는 것을 본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이렇게 어질고 슬픈, 자락마다 가슴 미어지는 애정을 담은 이 땅, 이 하늘 아래서,
어쨌든 살아갈 수 있어야 하리라고 나는 다짐한다.
겸허하고 다정하게, 예민하고 너그럽게,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타고난 품성을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새삼 결의하지만 별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어처구없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김서령, <참외는 참 외롭다> 2014 나남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