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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삶의 예배

by 안규수 2017. 2. 22.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유기성 목사님의 <누구에게 당신을 바치겠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가가길 소망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 이것이 진짜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을 알았으면 그 복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롬 12:1

이 말씀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것이라 여기고 살라는 것입니다. 
‘산 제물’이란 “살아 있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제물은 본래 산 짐승을 죽여서 번제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수가 없는데 제물이면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졌는데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살아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에 나오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의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서 살았다고 하지만 죽은 자요, 
죽었다고 하지만 살아 있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롬 12:1

이것은 예배하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 예배자란 예배 시간에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 합당한 예배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것이라 여기며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예배를 많이 드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예배를 잘 드리는 기준은 떠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에라도 떠들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고 하며 
매를 들고 예배를 감독하는 선생님이 계셨고, 떠들면 예배 중에라도 뒤로 나가서 벌을 서곤 했습니다. 
예배를 잘못 배운 것입니다. 
무엇이 예배인지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어디에 바칠 것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오래전 한국 교회에 철야기도가 한창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철야기도가 유명하다는 어느 교회에 한 기자가 취재를 갔습니다. 
그런데 철야기도를 마치고 나온 교인들이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길 건너편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러 가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에 육교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철야기도 하면 무엇하느냐 하는 조롱 섞인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합당하게 드려지는 예배입니까? 
여러분의 삶은 예배입니까?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 너무 지나친 요구라고 여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이 구절은 설교하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하느냐, 바치지 않아도 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어디에 바칠 것이냐?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 롬 12:2

하나님께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과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세상에 바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이 이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도 세상 풍조를 따라 삽니다. 
우리 몸을 세상에 맡기고 사니까 우리 삶의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지지 않는 사람은 이 시대의 풍조를 따라 세상에 바쳐진 삶을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대의 풍조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마태복음 12장 39절에서 이 시대가 “악하고 음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우리가 악하고 음란한 세상 풍조를 본받고 따르게 하게 위해 엄청난 힘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통해 아주 교묘하게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원하는 길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십시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힘에 끌려가 1년, 10년, 30년을 산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이 갑니까?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속히 구원의 길로 들어서라고 말씀합니다. 
진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한 삶으로 들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자신을 바치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은 구원의 메시지요, 
놀라운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 유기성 / 규장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로마서 6장 6,1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로마서 12장 1,2절

주님,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 안에서는 산 자로 살게 하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예배드려지길 원합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중세 시대에 유명한 신학자 아벨라르두스가 제자를 구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중 최종으로 3명이 선발되 었습니다. 
그러나 아벨라르두스는 그 3명도 많다며 질문을 통해 단 한 명만 뽑겠다고 했습니다. 
아벨라르두스는 세 명의 후보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길을 가다가 커다란 황금을 보았네, 자네들은 어떻게 할 건가?”
첫 번째 사람은 “당연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제 것이 아니니 까요”라고 대답했고, 두 번째 사람은 “저는 너무 연약합니다. 
보는 사람 이 없다면 제가 줍고 말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 람은 “가장 먼저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안 된다고 양심이 막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 하겠습니다.”
아벨라르두스는 첫 번째 사람은 일반적인 도덕만 있고, 두 번째 사람은 솔직한 욕심만 있으나 
세 번째 사람은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능력 을 알고 있다며 세 번째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악에게 지지 않고 선을 위해 싸우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하나님 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죄의 마음을 물리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 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겸손과 기도로 주님의 능력을 구하게 하소서!
나의 연약함이 느껴질 때는 언제나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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