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지난 간 밤에도 간헐적인 복통과 설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듯 합니다.
내 삶이 하루 하루 아무런 소망없이 현실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면,
그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탄의 뜻이겠지요.
요즈음 소망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묵상하는 듯 합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찬수 목사님의 <하늘에 속한 복>이라는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에베소서를 썼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의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그 때문에 요동하거나 비굴하지 않은,
그야말로 당당한 바울을 보게 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
“찬송하리로다.”
바울은 강렬한 이 한 마디로 에베소서를 시작한다.
에베소서 1장 1,2절은 편지를 시작하는 인사말이기 때문에 에베소서가 실제로 시작되는 본론은 3절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원어로 보면 3절부터 14절까지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장면을 한번 생각해보자.
바울이 감옥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데 인사말을 끝내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더니, 무려 14절까지 숨도 안 쉬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와 감격을 표현하고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 바울은 어떻게 암담한 감옥 속에서도 이런 놀라운 찬양과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여기 나오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은 이 땅에 속한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복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복의 개념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이며, 땅의 것이다.
물질이 풍요롭고, 건강하고, 좋은 위치와 지위를 누리는 것들 말이다.
이 복을 누리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는 그런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복은 차원이 낮은 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울이 말하는 복은,
그런 눈에 보이는 복이 아니라 영적인 복이요
신령한 복, 땅에 속한 것이 아닌 하늘에 속한 복이다.
이 신령한 복을 볼 수 있는 데까지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런 넓은 시야가 확보되면 땅에 있는 일시적인 복들을 다 빼앗겨도 마음의 기쁨은 빼앗기지 않게 된다.
지금 바울이 그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나는 예수님의 팔복을 자주 마음에 새긴다. 팔복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시야를 넓히라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시야가 좁으면 가난한 것만 보인다.
심령이 곤고하고 마음이 힘든 데만 집중해서 자기만 항상 불행한 것 같다.
그런데 시야를 넓히고 보면 그게 복인 것을 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겉으로 보기에는 눈물 흘리며 애통하는 사람이 안쓰럽게 보이지만,
시야를 넓혀서 보면 그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하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결국 ‘시야 넓히기’이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 23:6)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 왕 때문에 수없이 많은 위기를 겪은 다윗이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과정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다윗의 시야가 말할 수 없이 넓어졌다.
그렇게 시야가 넓어지자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라는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사무엘상 23장 15절만을 보면 다윗은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다.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삼상 23:15)
육안으로 보면 자기를 죽이려는 권력자 원수 사울이 보였다.
좁은 시야로 이것만 보면 절망에 빠지고 말 상황이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15절에만 매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감싸고 있는 14절과 16절을 보면
그 안에 얼마나 놀라운 은혜가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삼상 23:14)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 23:16)
15절만 보면 안달복달할 수밖에 없다.
죽을 것 같다. 외롭다. 혼자 버려진 것 같다.
그러나 시선을 넓혀 바라보면 14절에서 영으로 감싸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16절에서 아름다운 동역자 요나단을 통해 하나님의 심정을 전해주고 계심을 보게 된다.
이것이 신앙생활이며, 다윗에게 요나단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이런 요나단과 같은 동역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두렵고 불안한 15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14절과 16절의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하심으로 감싸주는 것이 교회이다.
그것이 신앙생활이다.
나는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 마음을 열고 요나단과 같은 동역자를 만나려고 애썼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요나단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용기를 전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하심을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를 섬기고 격려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덴티티: 예수 안에 있는 자, 이찬수 / 규장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마태복음 5장 3~10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장 17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4절
눈에 보이는 환경만 바라보며 요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보는 눈이 뜨이게 하소서.
넓은 영적 시야를 가짐으로 천국의 복과 소망을 누리며 기쁨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인생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전 7: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 을 망하게 하느니라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벼랑 끝에 선 남자가 있었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던 그는 최후의 방법으로 사기를 계획했습니다.
먼저 가짜 명함과 주소로 유령 회사를 세우고 전화만 따로 연결해 실제 사무실이 있는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수 식을 가지고 ‘45일 안에 50%의 수익, 90일 안에 100%의 수익’을
무조건 올릴 수 있는 투자 공식을 개발했다고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은 이 남자의 말에 혹했고,
투자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들어오는 투자자의 돈으로 앞선 투자자의 돈을 대주며
남는 돈을 횡령했던 이 남자의 사기 행각은 결국 1년도 안되 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해 8개월 동안 5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2000억 원이 넘는 돈이 증발했습니다.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찰스 폰지는 이 일로 사 기의 대명사가 되었고,
지금도 유령회사를 세워 투자자를 모으는 방식 의 사기를 폰지 사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잘못된 탐욕은 모두를 수렁에 빠트립니다.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익보다
매일 매일의 수고로 얻는 노동의 가치가 훨씬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말고 오늘 내게 주어진 은 혜에 만족하며 주님만을 바라보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 합니다.
주님! 욕심은 패망의 지름길임을 깨달아 노력하며 살게 하소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마음을 구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