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는 골을 많이 넣어야 한다. 요리사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훌륭한 선수요 요리사다. 하지만 이건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축구선수,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축구선수는 패스 능력, 슈팅력, 지구력, 스피드 등이 좋아야 한다. 요리사는 간을 잘 보고 칼질을 잘해야 한다. 이런 것이 기초이고, 기초가 모아져 역량이 된다. 글쓰기도 두루뭉술하게 역량을 높이려 하지 말고, 기초를 다져야 한다.
글쓰기 기초는 건강한 문장 쓰기
글쓰기의 기초는 문장력이다. 좋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문장에도 육체와 정신이 있다. 문장의 육체는 구조이고, 정신은 내용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좋은 문장이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은 문법에 맞게 썼느냐 하는 것이다. 주어와 서술어,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이 서로 호응하는지가 핵심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은 의미가 잘 전달되느냐 하는 것이다. 의미를 잘 전달하려면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한 문장 안에서 여러 가지를 전하려고 해선 안 된다. 어려운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비유나 예를 들어 쉽게 말해야 한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초등학생에게 배우는 문장론
초등학생 글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솔직하다. 꾸밀 줄 모른다. 그래서 문장이 담백하다. 둘째, 간결하다. 주어와 서술어만으로 쓴다. 단문 중심이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문장이 복잡해진다. 셋째, 구체적이다. 개념어를 사용하지 않고, 관념적으로 쓰지 않는다. 그렇게 쓸 줄을 모른다. 아직 추상화하는 게 서툴다. 구체적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글이 좋다.
단문쓰기
초등학생처럼 쓰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문으로 쓰는 것이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방법을 한 가지만 들라면, 나는 단연 단문쓰기를 권한다. 단문으로 쓰면 무엇보다, 비문이 될 확률이 낮다. 문장구조가 복잡한 복문, 포유문, 중문은 주술이 안 맞거나 호응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해도 쉽다. 주어와 서술어가 가깝게 붙어있고, 문장 안에 들어 있는 정보가 적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의미가 명료하다. 군더더기가 붙으면 뜻이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이 있다. 늘어지지 않아 강력하다. 쓰기도 쉽다. 미사여구 넣어 길게 쓰는 게 훨씬 어렵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단문으로 쓴다. 그런데 글을 못 쓰는 사람일수록 장문으로 쓴다. 그것이 더 어려운데도 말이다.
물론 단문쓰기의 단점도 있다. 짧게 치고 가기 때문에 숨 가쁘다. 유려한 멋이 없다. 그럼에도 단문으로 쓰는 게 맞다. 단문과 장문이 7:3이나 8:2로 어우러져 리듬감 있는 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단문은 어떻게 쓸 수 있나. 일단 쓰고 쪼개면 된다. 쪼갤 수 있는 데까지 쪼개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예쁜 그녀를 사랑한다.” 이 문장은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와 “그녀는 예쁘다.”로 쪼갤 수 있다. 수식어를 별도 문장으로 만들어 뒤에 붙이면 된다. 단문이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쓰기 쉬운 글인 것은 틀림없다.
조사와 어미 활용
단문쓰기를 넘어 좀 더 잘 쓰고 싶으면 조사, 어미를 잘 활용해야 한다. 우리말은 조사와 어미가 발달했다. 글쓰기는 관계를 맺어 새끼를 치거나, 연결을 통해 가지를 뻗어 나가는 과정이다. 새끼치기나 가지 뻗기를 하는데 쓰는 핵심도구가 바로 조사와 어미다. 글은 논리와 수사라고 한다. 논리적으로 탄탄하고, 수사적으로 매끈하면 좋은 글이다. 논리는 뼈대이고, 수사는 겉포장이니 이 둘이 괜찮으면 좋은 글인 게 맞다. 그래서 중고등학교에서 개요 짜기와 수사법을 열심히 가르쳤다.
그런데 간과한 게 있다. 뼈대를 연결하는 ‘거멀못’과 같은 조사, 어미다. 나는 글쓰기야말로 조사와 어미를 얼마나 잘 쓰느냐의 승부라고 생각한다. 조사와 어미를 적절하고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느냐에 글쓰기 성패가 달렸다. 조사와 어미 사용은 부적절하면서 골조와 포장만 그럴싸한 글은 겉만 번지르르한 부실 건물과 같다.
조사를 잘 써야 문장이 다채롭다
조사에는 격조사, 보조사, 접속조사가 있다. 격조사는 자격을 부여하고, 보조사는 뜻을 더해주며, 접속조사는 이어준다. 격조사는 다시 여덟 가지로 나뉜다. 문장성분 7요소인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관형어, 부사어, 독립어에서 독립어를 빼고 호격과 인용격을 추가하면 된다.
주격 조사(이, 가), 목적격 조사(을/를), 서술격 조사(이다), 보격 조사(~이 되다/~가 아니다), 관형격 조사(의), 부사격 조사(에게, 에서, 으로, 처럼), 호격 조사(야, 여), 인용격 조사(라고, 고)가 격조사다. 보조사는 다양하다. 도/역시(포함), 만(단독), 까지(한정), 마저/조차(극단), 은/는(차이), 부터(시작) 등이다. 접속조사는 와/과, 하고, 랑/이랑 등이 있다.
<칼의 노래>의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저자 김훈은 애초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고 썼다가 ‘꽃이 피었다’로 고쳤다. 글에 관심 있는 사람은 대부분은 아는 이야기다. 왜 고쳤을까. 주격조사 ‘이’와 ‘은’의 차이는 뭘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꽃은 피었다’는 왠지 째를 부리는 투다. 이에 반해 ‘꽃이 피었다’는 담담하다.
이런 느낌 차이는 어디서 올까. ‘학생은 공부한다’와 ‘학생이 공부한다’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전자는, 학생은 응당 공부해야 한다, 학생은 공부해야 하는 신분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에 반해 후자는 그저 학생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자는 느끼하다. 후자는 담백하다. 조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당나라 시인 가도가 “달 아래 문을 민다는 뜻의 ‘퇴(推)’를 쓸까, 두드린다는 ‘고(敲)’를 쓸까 고민한 이유가 있다.
‘꽃이’는 일반적인 서술이고, ‘이’는 주격조사이며, ‘꽃은’은 차이나 대조의 의미로서 ‘다른 게 핀 것이 아니고’를 나타내며, ‘은’은 보조사다. 이밖에도 ‘이/가’와 ‘은/는’을 구별해 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문장 전체의 주어는 ‘은/는’, 문장 일부의 주어는 ‘이/가’를 쓴다. 다음 예문에서 ‘사람’과 ‘사실’이 문장 전체의 주어다. “글쓰기‘가’ 즐겁다는 사람‘은’ 좀 이상하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또한, 처음 나올 때는 ‘이/가’, 다음에 나올 때는 ‘은/는’을 쓴다. “책이 있다. 그 책은 내 책이다.”
보조사인 ‘도, 또한, 역시, 까지, 조차, 마저’도 의미는 비슷하지만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모범생인 원국이도 술을 마셨다.” “모범생인 원국이 역시 술을 마셨다.” “모범생인 원국이 또한 술을 마셨다.” “모범생인 원국이까지 술을 마셨다.” “모범생인 원국이조차 술을 마셨다.” “모범생인 원국이마저 술을 마셨다.”
접속조사도 다양하게 구사해보자. 형과 내가 만났다(과/와). 선생님이 형하고 나하고 부르셨다(하고). 형이랑 나랑 학교에 갔다(이랑/랑). 휴지며 병이며 쓰레기로 가득했다(며/이며).
어미 사용
어미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연결어미와 종결어미만 주목하면 된다. 종결어미에는 평서형, 의문형, 감탄형, 명령형, 청유형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쓰는 평서형 어미로는 ‘이다’, ‘있다’, ‘것이다’가 있다. 이중 ‘것이다’가 문제다. ‘것이다’는 문단의 첫 문장에는 쓰지 못한다. 마지막 문장에 주로 쓰인다. 그것도 가급적 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할 것이다’, ‘될 것이다’, ‘있는 것이다’는 ‘한다’, ‘된다’, ‘있다’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 꼭 써야 할 때는 ‘것이다’만 쓰지 말고 ‘점이다’, ‘사실이다’와 번갈아가며 써보자.
부사를 어찌 할 것인가
조사, 어미 활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글에 맛을 넣고 싶다면 양태부사를 잘 쓰라고 말한다. 부사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 오죽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는 말이 있겠는가.
우리말에 부사는 성분부사와 문장부사가 있다. 성분부사는 문장 안의 일부 성분을 꾸며주며, 문장부사는 문장 전체를 꾸민다. 문장부사는 두 가지 밖에 없다. 양태부사와 접속부사다. 양태부사는 ‘과연’, ‘의외로’, ‘다행히’, ‘실로’, ‘모름지기’ 등 다양하다.
성분부사는 좀 복잡하다. ▲성상부사(매우, 열심히, 가끔, 가까이), ▲지시부사(이리, 저리) ▲부정부사(안, 못) ▲상징부사(의태어, 의성어)가 있다. 성상부사는 다시 1) 정도부사(매우, 대단히), 2) 상태부사(열심히, 깨끗이), 3) 시간부사(가끔, 자주), 4) 장소부사(가까이, 멀리)로 나뉜다.
부사 사용에 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상성부사 가운데 우리가 많이 쓰는 정도부사는 안 쓸수록 좋다. 성상부사 ‘매우, 대단히, 아주’ 등은 글의 품위를 떨어트린다. 신뢰도 떨어트린다.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시부사, 부정부사는 쓰던 대로 쓰면 된다. 상징부사는 많이 쓸수록 좋다. 의태어, 의성어를 쓰면 글이 생생하다. 오감을 자극해 현장감과 생동감을 준다. 우리말이어서 어렵지 않고, 글에 리듬감과 재미를 불어넣어준다. 또한 미세한 감정 차이를 표현해준다. 같은 웃음소리도 '껄껄', '깔깔', '낄낄' 모두 다른 느낌이다.
양태부사도 다양하게 쓸수록 좋다. 양태부사는 글 쓰는 사람의 상태를 나타내준다. 글에서 조미료 같은 역할을 한다. 과연, 어찌, 설마, 하물며, 결코, 조금도, 제발, 정말, 모름지기, 응당, 설령, 실로, 아마도, 부디, 만일, 가령 등이 그것이다. 적당한 자리에 넣으면 글을 맛깔나게 해준다. 양태부사만 잘 써도 글을 잘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접속부사는 가급적 자제한다. 안 쓸 수는 없다. 써야 할 경우에는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그런데’ 등 ‘그’자 돌림 보다는 같은 의미의 다른 접속부사를 찾아서 쓴다. 찾아보면 의외로 많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접속부사를 책상에 붙여놓고 다양하게 써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접속부사 다음에 쉼표를 찍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좋지 않다.
순접 : 게다가, 더욱이, 더구나, 아울러,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런 점에서, 어쩌면, 하물며, 이처럼, 이같이, 바로
역접 : 하지만, 그렇지만, 그럼에도, 반면에, 도리어, 오히려, 반대로
인과 : 따라서, 그러니까, 그리하여, 그렇기 때문에, 그러면, 그러니, 급기야, 마침내, 왜냐하면
전환 : 다른 한편, 그렇기는 해도, 다만, 바꿔 말하면
보완 : 즉, 곧, 말하자면, 예를 들면, 일례로, 사실상, 예컨대, 덧붙여, 구체적으로, 왜냐하면, 이를테면, 다시 말하면
종결 : 끝으로, 결국,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 요컨대, 결과적으로, 분명한 것은, 종합하면
동사형 글쓰기
마지막으로, 동사 사용이다. 문장은 명사형, 형용사형, 부사형, 동사형이 있다. 명사형은 개념 중심의 관념적인 문장이다. 형용사형은 수식이 많고 감성적인 문장이다. 부사형은 느낌을 강요하는 문장이다. 동사형은 힘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문장이다. 어느 문장도 이중 하나의 유형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것저것이 섞여 있다. 비중의 문제다. 나는 동사형 문장이 좋다. 동사형 문장은 구체적이다. 기(氣)가 느껴진다. 명사형은 아는 체 하고 논리적이고 딱딱한 글이다. 형용사형은 잘하면 감동을 주지만 자칫하면 예쁘기만 하다. 부사형은 느끼하다.
동사형 글을 쓰려면 동사를 많이 써야 한다.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조동사, 비(Be)동사 등은 열심히 배웠다. 우리 동사에 대해서는 별로 배운 바가 없다. 우리말도 동사 종류가 다양하다. 동사를 많이 쓴 글이 생생하다. 또한, 독자를 움직이려면 동사로 제안해야 한다. 그러나 ‘동사’하면 생각나는 것이 ‘하다’ 밖에 없다. 몸으로 하는 움직임만 동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머리를 쓰는 동사가 더 많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나와 있는 동사 종류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심리동사 : 좋다, 나쁘다, 즐겁다, 싫다
지각동사 : 보다, 듣다, 맡다, 느끼다
인지동사 : 알다, 모르다
기원동사 : 원하다, 바라다
경험동사 : 알다, 느끼다, 깨닫다
이동동사 : 가다, 오다, 다니다, 나가다
수행동사 : 말하다, 명령하다, 제안하다, 주장하다, 단언하다
수혜동사 : 주다, 받다, 드리다, 얻다, 잃다
결론은 동사를 다양하게, 많이 쓰자는 것이다.
맺음말
문법에 관한 내용이어서 딱딱하고 재미없다. 그러나 꼭 필요한 내용이다. 글쓰기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만약 이 칼럼을 끝까지 읽었다면 잘 쓸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나아가 어미, 조사, 양태부사 등을 찾아봤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글을 잘 쓰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단문 쓰기, 어미, 조사, 접속부사, 동사에 신경 쓰면서 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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