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아! 생일 축하.
페이스북에 올라와서 생일인 것은 알았지. 가능하면 페이스북을 안 건드리려고 하다보니 (건드리면 머리가 아파져서.../ 근데 탈퇴 안 하는 건 또 뭥미?) 축하 메시지를 못 보냈다.
대신 편지나 하나 써 줘야겠다고 맘먹었는데 또 며칠이 지났다.
요즘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공부량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능동적이 아닌 공부라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로 입시지옥이 없었던 적은 없다. 내가 교사가 된 지도 거의 20년이 되어가는데 여하튼 요즘 아이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뭔가 생각해 보면 지금의 공부는 자기주도적이 아니어서 인 것 같다. 자기주도적이라는 말이 생긴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말이 나왔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기주도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이라고 했단다.
굳이 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나같은 선생들은 언어의 사용에 대해서 많이 고민한다.
최근에 라디오에 어떤 작가가 이런 말들을 좋아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그림을 그림”, “꿈을 꿈”, “삶을 삶”, “잠을 잠”, “춤을 춤”
이 말들은 동사형과 명사형의 모양이 같다. 그림이라는 명사는 ‘그리다’라는 동사를 통해서만 완성된다. 그리는 행위가 없으면 그림이라는 실체는 없다. 그리는 행위를 끝까지 해 내지 않으면 그림이라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 그리고 그림이라는 결과를 통해서 그동안 애써왔던 그리는 행위는 드디어 세상에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산다는 것도 그러하다. 삶은 살고 있는 구체적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 내가 아이들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마도 이 과정으로서의 행위에 관련되는 것 같다.
최근 유명인이 그린 그림이 다른 사람이 그린 대작에 마무리 정도만 해서 내 놓은 것이란 뉴스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느끼는 느낌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싶다. 누군가가 대신 그려준 그림에 자기가 마지막 터치만 하는 느낌.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느낌. 그래서 공부 시간은 무지 많은데 밀도는 없고, 배운 것은 무지 많은 데, 아는 것은 없는 느낌….
어른들이 짜 놓은 틀에서 움직이는, 마치 벌이나 개미들이 자기 역할을 하는 느낌….
그 과정이 자기 것이 아니니 그 결과도 자기 것이 아닐 것 같은 불안감. 그런 느낌이 들어서 더 안타까운 건가보다.
근데, 그것이 또한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는 데, 또 문제가 있다. 어른들이 짜 놓은 틀 속에서 움직이니 그것의 해법 또한 너희 속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뭔가?(어른들은 긴 시간 살면서 만든 가치관이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전쟁 중에도 아이들은 뛰어논다. 그것이 아이들이다. 나는 너희들도 그것을 충분히 이겨낼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힘이 곧 청춘이 아닐까 생각한다.
얼마 전, ‘동사형 꿈’이라는 책이 있음을 알았고, 당연히 그 책을 샀다. 적어도 이 작가는 명사형 “꿈”에 대응하는 동사형 “꿈”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이야기이니 안 읽어봐도 수준 있는 책일 것이라는 생각!
동사형 꿈은 한 마디로 이런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이 명사형 꿈이라면 동사형 꿈은 ‘가르치는 것’이리라. 내가 교사가 될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진로는 정해진다. 교대나 사대를 가야할 것이고 거기에 맞는 성적을 따야 되겠지. 봉사도 가능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를 해야 하고…, 그러나 ‘가르치는 것’이 꿈이 되면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원과 같은 곳도 있겠지만 회사 연수파트에서 근무할 수도 있고 때로는 공부를 더 해서 교수가 될 수도 있다. 명사형 꿈이 간결하고 목표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동사형 꿈은 더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서로 맞물려 있고 한 쪽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가르치는 것은 싫어하는데, 직업의 안정적인 면만을 생각하고 교사를 하겠다는 학생이 있다면 그 결과가 어떨까? 동사형 꿈이 없는 명사형 꿈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그저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어떤 경우에도 가르칠 수 있다며 아무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친구는 나중에 실업(자 취업)교육만 줄기차게 듣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사형 꿈이 없는 동사형 꿈은 말만 번지르르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00이하고 거의 우리 반 아이 보듯이 보게 되는 것 같다. 학교 행사에는 거의 모두 참여하고 내 방과후 수업도 들었는데, 늘 졸음을 이기느라 애쓰는 것을 보면서,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학교 행사에 늘 참여하고, 주말에도 학원에 가고…, 쉼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처음에도 이야기 했지만 공부의 양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 선배들은 이것보다 더 공부했(을 수도 있)다. 네가 네 삶을 자기주도적으로 네 것으로 만들어서 하는 가가 문제일 것이다. 시간이 없겠지만 이 책을 한 번 읽어서 도움이 되는 내용이 있었으면 좋겠다.
생일축하도 하고 뭔가 도움을 주려고도 했는데, 쓰고 나니 무슨 내용인지 나도 좀 헷갈린다. 어쩌라고……….
자기주도성, 쓰고 나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헷갈린다. 좀 더 생각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자는 것이 내가 하고 실은 말이었나?
나는 지금 자기주도적으로 행동하는가? 나도 좀 고민을 더 해 봐야겠구나.
이 편지는 그냥 너에 대한 나의 관심으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뭔가 도움 되는 것을 주겠다는 내 생각이 짧았음을 느낀다. 쓴 글을 다시 지우기보다는 부족하더라도 너에게 전하려 한다.
더위에 건강 잘 챙기면서 공부하자!
그럼 20000.
2016.08.23. 영일고등학교 1교무실에서 문병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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