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행복의 비결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 배움의 기회, 안정적 결혼생활, 금연과 절주, 운동, 적절한 체중관리~ 라고 하네요.
참 단순한 진리이지요.
곰곰이 들여다보면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수 있는 선물들이네요~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박영철님의 <구멍만 복음을 기워라>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동안 기독교는 효과적인 전도를 위해 다양한 방법들과 전도훈련을 개발해왔다.
누구나 알기 쉽게 전한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쉽게 이해하고
믿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은 분명 바람직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복음 전도가 가져다준 피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
그것은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 복음을 단순히 천국 가는 보증수표 정도로 이해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만족해하면서 그리스도께 온전히 굴복하는 삶과는
여전히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상한 결과를 낳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세주로 소개하고 전해줌으로써 그분을 구세주로 믿기 시작한 개종의 시점으로부터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진정한 복음의 핵심적 개념이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핵심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너무도 좋고 감사한데
주님으로까지는 믿고 싶지 않다고 반응하는 괴물 같은 교인들이 양산(量産)되어 온 것이다.
구원은 확신하는데 삶은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복음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복음인가?
왜 이토록 복음이 왜곡되고 훼손되었는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동안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개발되어온 복음 메시지 전달 방식이
오히려 복음의 내용을 그토록 허약하게 만들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에, 크게 부담을 주지 않고, 쉽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려다보니
복음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한다.
그 결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만 오해하면서 믿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가져다준 결과가 예수님을 구세주로는 믿는데 주님으로는 아직 부담스럽다는 고백이며,
이로 인한 신앙과 생활의 괴리현상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고질적인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구원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을 주고 언제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신을 갖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주님으로 믿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주관자요,
통치자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과는 그 의미가 너무 다르다.
그러한 믿음의 고백은 자신의 삶을 실질적으로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주인이
더는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주님의 의미가 아닌, 구세주라는 의미로 믿고 그러한 분으로 영접할 경우
예수님의 역할은 단지 우리가 죽으면 천국 가게 해주는 구세주 이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복음의 본질로부터 크게 벗어날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분께 인생의 무릎을 영원히 꿇고 굴복한 의미에서의 주님이라는 고백이 아닌,
단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가게 해주는 구세주라는 고백이 과연 구원받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복음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인 죄, 십자가, 부활, 회개에
구멍이 생긴 복음을 전해왔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죄가 윤리적, 도덕적 차원의 것으로 이해되었기에
십자가도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죄악들을 해결해주는 능력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둔 회개는 도덕적, 윤리적 죄악들로부터 뉘우치는 선에서,
그것도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정도에서 그쳐버리는 피상적인 수준에서 회개가 이루어지는 심각한 문제를 수반한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예수님을 도덕적, 윤리적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구원해주는
구세주로만 이해하고 믿으며 신앙을 고백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직접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자기가 주인이 된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로서
주인을 바꾸는 의미의 회개와 영접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들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비록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속에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이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죄는 자기가 하나님과 같아지겠다고 교만해져서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범한 것이 근본적인 죄이기 때문에 그 죄로부터 회개했다면
이제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자기가 주인 되어 삶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던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크리스천은
예수님이 주인님인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약속한 구절들이 많다.
구원을 약속한 많은 구절들 중에서 예수님을 ‘구주’ 또는 ‘구세주’(Saviour)로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한 구절을 본 적이 있는가?
아무리 찾아봐도 한 군데도 없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한 성경 구절들은 한결같이 그분을 주님(Lord)으로 믿으라고 말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행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롬 10:9).
이제 우리는 즉각적으로 구세주에 초점을 맞춘 인스턴트 복음에서부터 돌이켜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 온전한 복음을 믿고 전하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
구멍 난 복음을 기워라, 박영철 / 규장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3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린도후서 5장 15,16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장 7,8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주님, 제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제 자신이 주인이 되어 마음대로 살아왔던 죄를 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구세주이시며 주님 되시는 예수님을 제 마음과 삶 속에 영접합니다.
이제 더 이상 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 268명의 삶을 무려 70여 년간이나 역학 조사해 행복의 조건을 알아봤더니
다음의 7가지 특징이 나왔습니다.
1. 인생의 어려움에 적응하는 능력.
2.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교육 기회.
3. 배우자와의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 안정적 결혼생활.
4. 금연.
5. 금주 및 금주에 가까운 절주.
6. 건강을 유지할 정도의 적절한 운동.
7. 적당한 체중 유지.
위의 조건 중 4가지 이상을 갖춘 사람의 인생은 거의 100%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3가지 이하로 가진 사람은 대부분 불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조건은 매우 단순하고 누구나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심과 세상의 잘못된 지식에 눈이 멀어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행복’이라는 이유로 진짜 행복에서 멀어지는 어리석은 일들을 멈추고,
진리 안에 거하며 진정으로 행복하게 되는 일들을 붙잡으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진정한 행복은 주님 안에만 있음을 철저히 믿고 생활하게 하소서.
나에게 부족한 행복을 위한 조건을 달성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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