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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한 시간 기도

by 안규수 2019. 8. 16.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다소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입니다. ^0^ 


내가 믿는 하나님이

피조세계의 창조주이시면서도


사랑이시며, 

겸손과 온유하신 분이심이 

너무나 큰 감격으로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그 분이 내게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심이 

너무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에도 유기성 목사님의 <한시간 기도하기>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시편 42편은 영적 침체에 빠진 시편 기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 시 42:1,2

시편 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고, 내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 같아’, 
‘내 기도에 전혀 응답하지 않으셔.’ 

이런 생각이 바로 자신의 영적 침체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에게 실제로 그러신 것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정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닙니다. 
시편 42편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자신이 영적 침체에 빠지면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역사하시고 말씀하셔도 
전혀 들리지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책망의 소리가 들립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 시 42:5

시편 기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성령으로 깨달았습니다.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내 영혼을 향해 ‘네가 어째서 낙심하고 어째서 불안해하느냐?’라고 
나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표현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시편 기자가 영적 침체에 빠진 것 자체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주님의 음성을 마음속에서 듣습니다.

우리 속에서 두 말씀이 들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음성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어느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적 상태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우리는 아무 말이나 마음에 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쉽게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시편 기자가 영적으로 낙심한 이유는 사람들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생각을 다 받으면 안됩니다.
내 마음을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께로부터 온것만 받겠다고 기도하세요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 시 42:3 새번역

시편 기자는 “너,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이 계시면 네게 역사하겠지? 
그런데 하나님이 안 계시잖아!”, 
이렇게 사람들이 영적으로 공격하고 빈정거리고 핍박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자기도 완전히 낙심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분명히 살아 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십니다.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으면 계시고, 안 믿으면 안 계신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믿는 성도인 우리조차 세상 불신자들이 하는 말 때문에 마음이 상하고, 
그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하거나, 교회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고, 
믿는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고, 한국 교회는 이제 다 끝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영적 침체가 찾아옵니다. 
갑자기 신앙생활에 의욕을 잃고 내 안에 있던 믿음의 소망도 다 사라져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나도 모르게 영적 침체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다음부터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헌신의 기쁨도 사라집니다. 
결국 기도도 안 되고, 하나님 말씀의 은혜도 빼앗긴 채 완전히 마귀의 노리개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귀가 하는 말을 잘 분별해서 무시해야 합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들이 우리 마음을 뒤집어놓습니다. 
웃어넘기면 되는 말을 자꾸 묵상하게 된다면 큰일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알고 보면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무슨 거창하고 엄청난 일 때문에 영적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말 한마디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런 말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속이 썩어가고 메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에게 낙망할 만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그 증거는 그의 마음에 계속해서 주님의 권면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지금 나를 아시고, 지금 나와 함께 계시고, 지금 나에게 역사하십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눈으로 봅니까? 아닙니다. 생각을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같이 들어도 
우리의 심령 속에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각자 다 다릅니다. 
여러분과 주님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대화가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전율할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계속 듣고 있습니다. 
5절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라고 하셨는데 또 들려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분명히 낙심 상태에 빠져 있는데, 또 가만히 보면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이 아프고 크나큰 실패 때문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지라도 
주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시고, 간절함과 사모함을 주시고, 
회개할 마음을 주셨다면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고 감옥에 끌려가도, 다니엘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도 
주님이 함께하심으로 도리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 낙심이 되고 영적으로 침체에 빠졌을 때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정확히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영혼이 사는 길입니다.

지금도 주님이 여러분 각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도들 중에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게 간단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너무 어려워요”라고 하면서 
주님의 음성 듣는 일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동안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주님에게 계속 집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살다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주님이 함께 계시고 말씀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을 주실 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한 시간 기도. 유기성 / 규장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 시편 73편 2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창세기 39장 21절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누가복음 22장 31, 32절

하나님, 나를 영적인 침체에서 완전히 회복시켜주소서. 
영적으로 깨어나게 하시고 살리는 말씀을 들려주소서. 
한 말씀이라도 좋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분명히 알아듣게 하소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주소서. 
주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하소서. 말씀으로 깨닫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슥 9:9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세계적인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기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루이스는 ‘개인 기도’라는 책으로 이런 의문들을 모아 ‘말콤’이라는 가상의 인물과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여러 의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했는데 다음은 그중 하나님의 공의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창조물에게 진노한다는 것이 사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닐까요? 
전류가 흐르는 전선은 인간에게 절대로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인간이 손을 대면 감전이 되고 맙니다. - 루이스에게 말콤이’

‘보낸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미지를 전류나 전선, 
혹은 그 밖의 어떤 것에 대입시킨다 한들 아무 소용도 없고 득도 없습니다. 
공의의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은 인간을 용서하고 사랑하시지만 전기는 사랑도 용서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선이시자 사랑이신 하나님이시기에 불의에 진노하시고, 그럼에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부재에서 오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에는 공의가 빠져 있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 때에 참된 회개로 주님 앞에 나아가며 참된 사랑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는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기억하십시오. 아멘!!

주님, 하나님의 공의가 있기에 용서도, 사랑도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죄의 회개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조심합시다.  <김장환,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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