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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하나님의 사랑

by 안규수 2020. 2. 9.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은혜를 잊었다는 뜻이다” (파스칼)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모든 사람들에게 매일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음을 기억해 봅니다.  
매일의 새 날과 새 호흡 그리고 새 만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 봅니다. 

오늘 하루도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창조과학선교회의 이재만 선교사님의 편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부 전합니다.

창조과학탐사를 인도하다 보면, 과학적 질문뿐 아니라 성경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게 됩니다.
특히 프로그램 후반부로 갈수록 그렇습니다. 과학적으로 이해가 되자 자연스럽게 성경에 대한 궁금증으로 넘어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때 곧잘 등장하는 질문이 ‘삼위일체’입니다. 창조과학자에게 질문하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은 신학적 내용입니다.
삼위일체는 결국 성경에 대한 질문이므로 성경으로만 답하는 것이 가장 쉽고 정확하겠지요.
성경에서는 중요한 상황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세 분이 함께 등장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조 첫째 날에 이미 세 하나님을 암시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창 1:1-3)
하나님, 성령님, 말씀이신(= 이르시되) 예수님이 함께 창조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실 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5) 세 분이 함께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8)
말씀하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 그분 위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함께 등장합니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님께서 몇 번이나 세 분을 함께 언급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예배 마지막에 축도할 때 매번 등장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도
세 분이 모두 등장합니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을 단수가 아닌 복수 대명사로 받았습니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을 대적할 때도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라고 하며,
또 ‘우리’가 나옵니다. 여기서 등장하셨던 ‘우리’는 모두 세 분 하나님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세 분이 함께 도우십니다.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롬 8:26),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
성령님과 예수님 두 분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아들 하나님께서 죽으면서까지 구원해주신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Creation Truth 독자 여러분, 세 분 하나님께서 총력을 기울여 자신의 형상인 우리를 위하십니다!
이 사실로 인해서 무한히 기뻐하는 한 달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재만
창조과학선교회 회장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미국 보스턴의 성공한 사업가인 바턴에게 하루는 허름한 차림의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합니다. 2천 달러만 빌려주십시오.”
담보도 없이 무턱대고 돈을 빌려달라는 청년이었지만 열정이 대단하다 싶어 
바턴은 속는 셈치고 당시 거금인 2천 달러를 빌려줬습니다. 
돈을 떼일 것이라는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청년은 몇 년 뒤 찾아와 사업이 성공했다며 
2천 달러와 은행금리를 훨씬 넘는 많은 이자를 주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대공황이 찾아왔고 바턴이 도산 위기에 처했을 때 바턴의 사무실에 한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 10년 전에 도움을 받았던 스트로입니다. 사업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드리면 되겠습니까?”
“빌려준 돈은 이미 이자까지 쳐서 넘치게 갚았는데, 또…?”라는 바턴의 말에 스트로는 대답했습니다.
“돈은 갚았지만 은혜는 남아있습니다. 
당시 저를 믿어주신 바턴 씨가 안계셨다면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은혜는 단순히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은혜를 잊었다는 뜻이다”라고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가치는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도 항상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귀한 은혜를 묵상하며 하루를 삽시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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