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관계의 회복~
하나님이 찾아와 내민 손을
잡아드리는 것 ~
그리고 함께 하는 것 ~
구원은
관계의 회복
그리고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임을 기억해 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찾아오신 그분의 손을 잡는 것~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한근영님의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 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1시간쯤 그렇게 기도했을까.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나의 삐딱한 기도를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들어주셨다(고 믿어졌다).
속을 털어놔보면 상대가 내 말을 듣는지 아닌지 알아채지는 것처럼,
그때 나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내 거친 언사를 경청하신다고 느꼈다.
그걸 ‘믿음’이라 해야 할지 ‘느낌’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내 상처의 독을 1시간 내내 숨 가쁘게 쏟아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할 말을 다 마친 듯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30초 정도의 침묵. 전력질주 후에 몸을 내던진 사람처럼 나는 바닥에 엎드려 헉헉, 숨고르기를 했다.
잠시 후, 무언지 모를 시원함이 아랫배에서 쏴 하니 밀려왔다.
그러더니 어떤 소리가 속삭임처럼 바깥으로부터 내 안으로 찾아와 나를 감쌌다.
“나는 너를 한순간도 내버려 둔 적이 없단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그날처럼, 생각지 못한 시점에 그분의 마음을 보여주는 분이셨다.
체한 듯한 내 마음을 게워내야만 살 것 같아 솟구치는 원망과 비난의 언어를 쏟아놓던 그때도,
하나님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니?”라고 책망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라는 눈빛으로 다가오시고는,
나를 한순간도 내버려 둔 적이 없는 나의 유일무이한 보호자가 하나님이시라고 알려주셨다.
그 한 말씀은 마치 ‘너한텐 내가 있잖아,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너와 동행하는데 뭐가 걱정이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애착 관계는 그때 가장 뜨겁게 형성된 것 같다.
찢기고 상하고 넘어진 못난 나도 하나님 품 안에선 완벽히 수용될 수 있음을 그 순간에 나는 알았다.

마치 때 묻은 나의 민낯을 보였는데도 “너는 참 예쁜 내 딸이야”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지금도, 앞으로도, 어떤 경우에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돌보시며 영원히 함께하시리라고 100퍼센트 믿어졌다.
“나는 너를 한순간도 내버려 둔 적이 없단다.”
아, 그렇다면 더는 절망할 이유가 없다.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을 거라 믿어졌다.
그날 저녁, 식구들과 둘러앉은 저녁 식탁에서 간만에 밥그릇을 비웠다.
아직 입안은 까슬거렸지만 내게 찾아오신 성령님의 첫 명령이 ‘밥 한 그릇 다 비워라’인 것 같아
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계속 의지를 발동한 결과였다.
나는 성령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오징어젓갈을 밥 한 숟갈 위에 올려 입안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아, 맛있다. 이렇게 물 말아서 오징어 젓갈에 먹으니 없던 입맛이 돌아오는 거 같애. 아, 정말 맛있네.”
저녁 설거지까지 끝내자 그간 딱딱했던 내 배에서 꾸륵꾸륵 몇 번 소리가 나더니 나를 괴롭히던 이상한 복통이 괜찮아졌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씀이 이런 걸까 싶었다.
나는 서랍에 있던 수면제와 항우울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앞으로도 내가 살려고만 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의지를 내기만 하면,
이 약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서였다.
실제로 그날 나는 약을 먹지 않고도 잠을 잘 잤고,
그 후로 다시는 항우울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족 모두가 휘청대던 그 계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맨 처음 하신 일은 피폐해진 내 마음을 완벽히 풀어주신 일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향한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시며 우리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셨다.
하늘 저 멀리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 나와 함께 계시는 분,
그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그분은 폭격을 맞아 이리저리 휩쓸리는 그 처절한 난파선에 같이 타실 수밖에 없으셨다.
내 아픔 아시는 분,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니까.
그러면 됐다.
나를 다 아시고 나의 상황을 다 파악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더는 두려워 떨 이유가 없다.
나는 이제 그분을 의뢰하여 분연히 일어서리라 다짐했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방황하던 내 마음은 그날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마음 안에 완전히 닻을 내렸다.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 한근영 / 규장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 시편 40편 1-3절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6절
나의 보호자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찢기고 상하고 넘어진 못난 나, 세상에서 볼 땐 초라하기만 한 저도 하나님 품 안에선 완벽히 수용될 수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돌보시는 그 주님과 함께 영원히 동행하겠습니다.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힘을 얻고 한 걸음 한 걸음 떼겠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뉴욕 헤럴드신문사의 기자이자 탐험가인 헨리 스탠리는 중앙아프리카를 탐험하고 있었습니다.
나일강의 근원을 밝혀내고 몇 달 전부터 연락이 끊긴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스탠리가 중앙아프리카에 도착하자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여전히 원주민들과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0살이 넘고 말라리아까지 걸려 본국으로 편지를 보낼 여력이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안식년도 없이 30년 동안 오지에서 헌신한 위대한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턴을 존경한 스탠리는
이제라도 영국으로 돌아가 쉴 것을 권했으나 리빙스턴은 오히려 스탠리와 함께 탐험을 떠났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스탠리가 숨진 리빙스턴을 발견했을 당시 리빙스턴은 침대에서 기도하는 자세였다고 합니다.
리빙스턴이 세상을 떠난 해, 자신의 생일에 적은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나의 예수여, 나의 왕이여, 나의 생명이여, 나의 모든 것이여, 오늘 다시 나를 바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리빙스턴의 묘비에는
“30년 동안 중앙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로지 헌신한 사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할 수 있습니다.
크신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나를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주님을 위해 사는 크리스천이 되게 하소서.
오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님들에게 기도와 선물을 보냅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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