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박 춘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 앉아 심호흡을 하고 중얼거린다. ‘오늘 하루를 맑고 밝은 생각으로 지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종교를 가진 것도 아닌 처지에 종교인 흉내를 내는 것이다. 느닷없는 욕심 탓에 일상이 가진 나름의 평정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을 이겨내지 못하는 심약한 성질이 구한 궁여지책이다.
감히 간덩이가 부었지 코로나바이러스란 녀석이 세계를 상대로 시비를 걸어왔다. 이 녀석이 말썽을 부리기전까지 내 일상의 안팍은 평화로웠다. 아침 집안일을 대충정리하고 도시락 챙겨들고 가방 둘러매고 도서관가고, 해가 설핏 해지면 퇴근하면서 픽업하러오는 아내차를 타고 귀가했다. 아내는 가게에서 생긴 이런저런 일들을 푸념도하고 자랑도하고 으스대기도 했다. 나는 그날 읽은 책이나 산책 중에 무심코 떠오른 생각들을 말한다. 코로나로 도서관이 2월 중순부터 무기한 문을 걸어 잠그자 평화로운 내 일상도 끝났다.
아침이면 초등학교 1학년생 마냥 신이 나서 현관문을 나섰는데 이제 오갈 데가 없는 것이다. 코로나 전에는 하루 온종일 외부와 전화한통 없어도 좋았고, 누구하고 말 한마디 안 해도 뜨거웠고 흐뭇했다. 책 보고, 감상문도 써보고, 머리 아프면 공원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멍때리고,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식탁에서 저녁을 먹다 무슨 말인가 끝에 아내가 “돈도 못 벌면서... 큰 소리는 혼자 다친다.”고 한 주먹(?) 날리며 고소하다는 듯 깔깔 웃었다. 그래 내가 큰소리쳤다. “안되겠다. 도서관도 문 닫아 못가고 집에 갇혀 있으니 내일부터 주식투자 방법을 바꿔 단타를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두고 봐!” 이게 일상을 송두리째 망치게(?)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마 아내는 은근히 기대했을 것이다. 남이 알면 우스울 정도로 적은 금액이지만 주식투자한다고 떠버린지 어언 이십여 성상이니, 속으로 서당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혹시나 했을 것이다.
분명 ‘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지 얼마나 성질이 못됐으면 사내를 저리 면박하는가.’고 괘씸할 수도 있겠다. 생각보다 내 아내는 세상에 드물게 사리분별이 밝고 사려 깊은 사람이다. 아내를 위해 변명을 좀 해야겠다. 아내의 하소연(?)은 가계家系의 내림 탓인지도 모른다. 전설은 저 멀리 6대조부터였을 것이다. 일찍 혼자되신 할머니가 그 외진 벽촌에서 천석을 이룬 부를 이루셨다고 한다. 그 탓인가. 후대들은 할머니의 음덕을 음복飮福하며 살아오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끔 스치든 생각이다. 가깝게는 선친께서도 돈은 집에 들여놓으셨지만 돈의 행방과는 무관해하신 분이었다. 필요하면 달라고 하고 없으면 안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 집 돈의 질서다. 어머니도 평생 그러하셨고 내 안사람도 처음부터 그렇다. 생색은 바깥 몫이고 고생은 안의 차지인 셈이다. 그러니 남이 보면 말이 과해 보이겠지만 실은 코로나로 갇혀 지내는 내가 풀죽어 지낼까봐 한껏 치세워주려 응원하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으로 주식시장이 벼락을 맞았다. 사두었던 놈들이 반 토막이 났다. 게을러터진 탓도 있지만 그놈의 가치투자 신봉이 요 모양 요 꼴을 만들었다. 일찍 손절매하고 현금을 쥐고 있었다면 저가에 매수해서 큰 수익을 보았을 것이다. 사후약방문이다.
일찍이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화식열전’편에 ‘물건 값이 싸다는 것은 장차 오를 조짐이며. 값이 비싸다는 것은 장차 내릴 조짐이다.’고 적어 놓았다. 묵가「墨家」의 묵자墨子도 ‘시장은 내일도 열리니 물건을 사야할 때에는 가장 값이 싸게 변했을 때를 기다려서 사야한다.’고 당부 했다. 세상에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주식투자의 요령을 설파한 사람은 어떤 시대에도 없다. 그레이엄이나 버핏의 가치투자에 대한 해석은 무시무시하다. 세상과 경제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논리적인 서구인과 동양인의 관조적 방식의 차이다. 사마천의 말마따나 실컷 떨어졌으니 이제 남은 일은 오를 일만 남은 것은 확실하다.
그동안의 내 주식투자성적은 그저 그렇다. 한 종목을 사면 세월아 네월아 모셔두는 것이다. 주식투자정석이라고 하는 내재가치가 낮게 평가된 종목을 선취하고 적정 가치로 평가 받을 때까지 가지고가는 전략이다. 그러니 주식시장을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두 번 기웃거리고 마는 방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실은 신경을 주식에 소모하는 것이 너무 힘겨웠던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단타는 하루단위에도 이익이 나면 매수 매도해야한다. 그야말로 투쟁이다. 오로지 돈(주식시장흐름)에 온 신경을 매달아 놓는다. 돈 이외의 것은 모두 작동불능이다. 주식시장이 마감되면 기력이 빠져서 흐물흐물해진다.
이제 여태 안하던 짓을 한다. 경제신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고 작은 활자가 드러내는 의미를 추적한다. 코로나 전에는 요놈이 3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를 궁리 했지만, 오늘은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는 어떤 종목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오르내리면 이 녀석(세력)들이 일삼는 장난(?)에 끼어들 것인가 곧바로 결정하고 추이를 쫒는다. 다만 얼마라도 수익이 나면 즉시 매도를 결정한다. 문제는 다만 얼마라는 손익계상일 뿐 그것이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 것인지, 정상적인지 비정상적인 짓인지 무관하다. 머릿속에서는 세상이 돈으로 돌아간다. 아! 저놈을 샀더라면 돈을 더 먹었을 텐데, 아이쿠 이놈이 아니었네, 망했다!
세상에 이치가 어느 한곳에 적합하면 다른 한 곳에는 적합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돈이란 놈이 선함과 무욕의 청정함과 이타적인 헌신과 책 읽고 글 쓰는데 적합할 리가 없다. 이기적인 자기증식욕구와 남을 오불관언하는 습성은 당연한 것이다. 돈의 본래의 성질이 그렇건대 본성에 벗어나기를 희망하는 것은 말 그대로 희망이다. (일찍이 성경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나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적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돈을 벌려고 맹렬하게 단타를 일삼는 노릇이 정상적인 일상이 될 리 만무하다. 주식시장이 마감되는 오후 3시 30분까지 생각은 오직 돈에 목을 매고 있다. 시장이 마감되면 또 잔영이 남아 머릿속에 빨갛고 파란 숫자만 오르내린다. 책을 읽어도, 글을 생각해도 머릿속은 콩밭에서 얼씬댄다. 책 읽고 글 쓰고 잠자는 짓으로 보내든 하루가 꿈같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며칠 안 되어 덜컥 겁이 났다. 등줄기가 오소소한 것이다. 이러다 다시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것 아닌가, 설령 돌아가도 초심 같은 단정한 생각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진 것이다. 그 탓에 궁여지책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바른 자세로 앉아 ‘오늘 하루도 밝고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게 이끌어 주십시오.’하는 것이다. 일상은 무위無威하지만 천하장사로 힘이 센 놈이어서 의지해 보려는 것이다.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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