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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시작된다

by 안규수 2020. 10. 5.

지난 주말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0^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종교가 되어간다.

 

영적인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지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이다.

혼은 지혜를 구하고, 영은 믿음을 행한다.

 

지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행동하라.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지혜가 한계에 다다른 곳, 그 곳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지혜를 넘어선 곳에 믿음이 있다.

영이 다스리고 있다면,

혼의 지혜 또한 자연스럽게 영적인 믿음으로 확장될 것이다. (오늘의 나눔 본문 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고성준 님의 <카이로스 : 하나님의 시공간> 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고전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육이 약하다는 것은 몸이 허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혼’ 즉 자아가 약한 것을 말한다.

자아가 강한 사람은 ‘육’으로 살게 되고,

자아가 약한 사람(자아가 죽은 사람)은 ‘영’으로 살게 된다.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혼과 육’, 즉 ‘자아’가 성령 안에서 부인되고 약해져야 한다.

 

[눅 9:23]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사역인데,

영으로 하는 사역과 혼으로 하는 사역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고전 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은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사역했다.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은 ‘혼’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바울의 논지는 한마디로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일, 혼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시도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종교가 되어간다.

 

영적인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을 기대하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지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이다.

혼은 지혜를 구하고, 영은 믿음을 행한다.

 

지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행동하라.

최선을 다하라.

그러나 지혜가 한계에 다다른 곳, 그 곳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야 한다.

지혜를 넘어선 곳에 믿음이 있다.

영이 다스리고 있다면, 혼의 지혜 또한 자연스럽게 영적인 믿음으로 확장될 것이다.

 

[고전 2:3,5]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린도에 오기 전 바울은 아덴에 있었다.

아덴의 철학자들과 토론할 때 바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까짓 어쭙잖은 철학? 내가 누군데! 가말리엘의 제자, 당대의 석학 바울이 아니더냐!’

 

그런데 결과는 처절한 실패였다(행 17장)!

논쟁에서 이겼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예수께 돌아오지 않았다.

이 실패의 경험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떠는’ 고린도의 바울을 만들었다.

자신감과 믿음은 다른 것이다.

아주 다른 것이다.

자신감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고,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다.

그렇기에 ‘자신감’은 혼에 속한 것이고, ‘믿음’은 영에 속한 것이다.

자신감이 클수록 혼이 강한 것이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아덴에서와는 달랐다.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떨었다.

자신감? 1도 없었다.

그러면 무엇을 의지하게 되는가?

하나님!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을 구하게 된다.

그렇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 곳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시작된다.

바울의 연약함은 성령님을 의지하게 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땅의 일’을 하지,

할 수 없는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바로 육적인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의 약점이다.

그들은 영적인 것을 구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그런 것이 필요 없다.

 

당신은 하나님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

당신은 성령님이 얼마나 필요한가?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바울처럼 약하고 두려워 심히 떨리는가?

영적인 원리다.

자신에 대해 약하고 두렵고 심히 떨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구한다.

 

카이로스 : 하나님의 시공간. 고성준 / 규장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 잠언 3장 5, 6절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 이사야 26장 3, 4절

 

주님 제가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함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날마다 성령님을 구하고 의지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한비자가 쓴

‘한비자’ 중 ‘외저설우상(外儲說右上)’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추시대 송나라에 술 빚는 솜씨가 견줄 자가 없는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씨는 술 솜씨뿐 아니라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했고 술의 양이나 품질을 속이는 법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절함을 알면서도 그의 집을 찾아와 술을 사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가 만든 술은 전혀 팔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맛이 좋고 친절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애써 빚은 술이 다 쉬어서 버리기만 수차례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지 못했던 장씨는 마을의 양천이라는 현명한 노인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는데 노인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당신이 키우는 개가 너무 사납기 때문입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지나가는 사람만 보면 물어뜯을 듯이 짖어대는데

제 아무리 술이 맛있다고 미친개에게 물릴 것을 감수하고 올 사람이 어디 있겠소?”

주산불수(술집 개가 사나우면 술이 시도록 팔지리 않는다) 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이야기입니다.

진리의 복음이 세상에 제대로 전해지고 있지 않다면

복음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전하는 사람의 문제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복음이 거절당하는 이유가 혹시 나의 실수와 행실 때문이 아닌지 돌아보고 반성하십시오. 아멘!!

 

주님! 삶으로 주님을 전할 수 있는 거룩함을 허락하소서.

거룩한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깨끗한 그릇이 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