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장미꽃이 피어난다 해도
어찌 가시의 고통을 잊을 수 있을까
해도
장미꽃이 피기만 한다면
어찌 가시의 고통을 버리지 못하리오.
눈먼 손으로
삶을 어루만지며
나는 가시투성이를 지나
장미꽃을 기다렸네.
그의 몸에는 많은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 송이의 장미꽃도 보지 못하였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김승희 (1952~)
장미의 계절, 오월이 왔다. 꽃 중의 꽃, 장미를 노래한 시인은 많이 있었지만, 김승희 선생의 ‘장미와 가시’처럼 내 가슴을 때린 시는 없었다. “눈먼 손으로” 삶을 만진다는 발상이 독특하다.
욕망에 눈이 멀어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들. 무한경쟁의 정글에 살다 보면 크고 작은 가시에 찔리게 마련. 금방 잊고 다시 먹고 자고 가시투성이의 온몸에 기름을 바르며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장미꽃이 피기만 하면 고통을 잊을 텐데. 꽃을 피우느라 눈이 멀어….
내가 나를 찌를 때가 가장 아팠다. 남이 찔러서 생긴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데, 내가 나를 찌르면 시간이 지나도 치유가 되지 않는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아파해야 괜찮아질까.
삶의 가시에 깊이 찔리지 않은 어린 것들, 상실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것들은 행복하여라.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루한 일상을 감사히 받아들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