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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거기에도 비는 내리는가/ 김종완

by 안규수 2014. 9. 17.

 


 TV나 사진을 통해서 오체투지하면서 성지 랏사로 가는 티벳불교의 신자들을 자주 본다. 그때마다 그들의 신앙심에 놀라면서도 가슴 한 쪽이 막히는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얼마 전엔 「차마고도」라는 TV프로에서 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수 개월에 걸쳐 오체투지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난 ‘어쩌라고?’하는, 누구를 향해서인지도 모를 질문을 하고 말았다.

 

왜 저렇게까지 몸을 학대해야만 하는가?

성스러운 곳에 다다르기 전에 육체의 죄를 씻는 씻김의 의식일까?

만약에 그런다면 저 순박한 사람들이 지었다는 죄는 어떤 것일까?

 


 



정치적 주권은 중국에 빼앗기고, 경제권마저 중국에 의하여 심각하게 침식당하는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 어떤 저항의 몸짓도 없이 다만 개인의 구원에만 매달리는 저들이 지었다는 죄라는 것이 과연 죄이기라도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저들의 믿음으론 아마 윤회의 사슬을 끊지 못하고 다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한 순례자가 말했다. 궁극은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 윤회의 과정에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게 너무 힘든 일인데 이생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잡았다는 거고, 그런데 이생은 너무 짧고, 그래서 진리를 찾을 시간이 너무 짧아 낭비할 시간이 없고, 이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 깨닫기 위해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도록 빈다고 했다.

 

그들은 이승에 살고 있어도 이승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이승은 생명의 바다에 바람이 불어 선뜻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찰나의 물결에 불과했다.

 



 

 

난 그 확신에 찬 말들을 들으며 인간의 신념이라는 것이 정말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보이는 만큼의 세상을 하나씩 갖고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산다. 그 세계는 이승의 세계만이 아닌 사후의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어떤 이에겐 사후의 세계가 더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엔 이승과 저승이 하나로 연결된 각자 다른 65억 개의 세계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나름의 완벽한 세계를 하나씩 갖고 산다는 게 신기하기만하다.

 

지난 늦가을부터 올봄까지 선배문인들의 부고가 연이었다. 지금도 탄생은 어디에선가 계속되고 있고, 그것은 통계적으로 보아도 죽음보다 훨씬 자주 일어나지만, 나에겐 어느덧 탄생의 소식보다는 부음이 더 자주 들린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선배들의 전송을 책임지는 세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얼마 있지 않으면 그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이제부턴 조금씩 죽음에 친숙해져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실 나에게도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낀다. 가끔 띵하고 어지러워 비틀거릴 땐 희끗희끗 죽음의 모습을 보곤 했다.

 

지난 겨울 난 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예외 없이 모두가 가는 것이고, 내 차례가 그렇게 멀지 않다는 걸, 죽음은 불현듯 손님이 찾아오듯, 길을 가고 있는데 아는 사람이 어깨를 툭 치듯 그렇게 찾아올 거라는 예감을 하고 있었다. 자연히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뒤돌아봐졌고 내가 살아온 삶이 지지리도 궁상맞고, 볼품없이 일그러져 있다는 걸 새삼 발견하고는 ‘젠장, 겨우 이거야’라며 당혹했었다.

 





 


4월 어느 날이었다. 옥상의 정원엔 철쭉이 만발했고,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종묘엔 벚꽃 등 봄꽃이 만발해 있었다. 난 둔감한 사람이어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다가 봄꽃이 만발한 다음에야 허둥지둥 봄을 느끼고, 쏟아지는 듯한 생명의 찬가에 몸을 떨곤 했었다. 무료하고 건조하고 답답하기 만한 세상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변할 수 있는가를 신기해하며 그때서야 겨울의 긴 칩거를 털고 며칠간 봄꽃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그 꽃들이 서둘러 지고나면 또 내 한해는 사라져버렸다는 아쉬움에 싸이곤 했었다. 하지만 난 그날 ‘또 봄이 온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구만’ 이라고 궁시렁거렸을 뿐이다.

 

“올해 처음 본 것도 아니잖아. 보면 뭘 해. 또 잊고 말 걸.”

 

난 옥상에서 내려와 날 내 방에 다시 가두었다. 그리곤 그만 시들해져 버린 내 삶을 되작거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는 하지만 난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래오래 살아서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몽땅 다 감내하다가, 정작 자기 차례가 되어 문상객들이 “이 정도 살았으면 너무 오래 살았제. 호상이어.”라며 뒤늦은 출발을 탓한다면 이 얼마나 쓸쓸할까? 그러다 한 생각이 떠올랐다.

 

‘죽음이란 삶이 끝난 다음에 비로소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삶이 태어나면서 죽음도 함께 태어나는 거야. 죽음도 삶과 함께 성장하는 거지. 사람은 삶만 사는 게 아니라 죽음도 함께 살아. 스무 살에 죽으면 스무 살만큼 자란 죽음을 사는 것이고, 팔십에 죽으면 팔십만큼 자란 죽음을 사는 거야. 그렇다면 살아서 사는 만큼 성숙할 수 있다면, 팔십 살의 죽음은 스무 살의 죽음보다 더 성숙한 죽음을 죽는 거야.’

 

이렇게 죽음의 성장을 생각하게 되자 갑자기 삶이 비장해져 코가 맹맹해졌다. 그때 내 눈을 확 끄집어들이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쳐 온 벽에 걸린 캘린더의 그림이었다. 선명한 오방원색으로 그려진 우리 산천이었다. 저걸 언제 어디에서 보았더라? 보았을 리 없었다. 분명 우리 산천이지만 결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자연이었다. 그림은 문명 이전, 오직 자연과 인간이 함께 조화롭게 살았던 신화 세계의 충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가 저런 그림을 그렸단 말인가? 달력 가까이 가서 화가 이름을 확인했다. 오승윤이었다. 아 그 사람! 그는 작년(2006년) 1월 “예술은 나의 목적이었다. 사회는 너무 냉혹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8층 아파트 창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오승윤의 자살을 기억한 것은 그의 그림을 알아서가 아니라, 예술만을 순수하게 추구했던 한 화가가 세상의 냉정함에 상처입고 자살했다는 사건을 이야기로 기억했던 것이다. 감흥 없는 사실로의 기억이었다.

 

그가 그린 세계는 강가엔 개와 오리가 노닐고, 산 밑엔 몇 가구뿐인 동네가 있고, 동네 앞에는 들이 있고, 뒤로는 산들이 있고, 산엔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새들이 살고 있고, 하늘엔 새눈 같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있고…, 화면 전체가 마법의 공간이었다. 오방색의 화려함으로 땅에 물을 흘려 강을 만들었고, 강은 넉넉한 뜰을 품었고, 하늘은 허허로워 마음껏 별들을 뿌렸다. 작가는 새로운 우주를 창조했다. 그런데 그의 그림엔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어떤 공격성도 무화되어 버린 한없는 평화의 세계를 그려놓고 왜 그는 거기에 사람을 그리지 않았을까? 난 한탄하듯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인터넷을 뒤져 오승윤의 그림을 찾았다. 충격에 몸을 떨게 하는 그림들이 있었다. 그는 앞에서 내가 보았던 그 세계를 그대로 화면 가득 그려놓고는, 한 가운데 겹쳐 놓듯 사람을 그렸다. 그 사람은 소를 몰고 가는 농부의 모습도 아니고, 천진하게 놀고 있는 아이도 아니었다. 성숙한 여인의 누드화였다. 여인은 육감적이면서도 성스러운 빛을 내었다. 난 숨이 컥 막혔다. 그는 삶을 지극히 사랑했구나!

 

그는 세상이 살아있는 것들로 꽉 차있음을 보았다. 그의 산은 광물의 산이 아니라 살아서 꿈을 꾸는 생명의 산이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창조 되었는지를 알았다. 우리에게 삶을 알려거든 명상하지 말고 저 생명의 가락에 함께 춤을 추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저 생명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을까? 그는 물신에 의하여 왜곡되고 죽임을 당하는 생명들을 보면서 어떻게 감내하며 살았을까? 그의 하루하루가 삶이었을까 아니면 죽임이었을까? 파괴된 불모지에서 생명의 세계를 보고 만 자기의 눈을 차라리 저주하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건 이승이 아닌 저승 세계야!”

나는 그때 저승을 퍼뜩 본 것 같았고, 이젠 저승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나의 혼신을 다해 나의 저승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살다가 가는 곳이 그곳이고 보면, 내가 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내 삶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1. 흔한 비유로부터 생각을 시작했다. 하늘로부터 비가 떨어졌다. 그것은 비의 탄생이다. 그 비는 흘러 냇물에 이르고 강에 이르고 바다에 이르러 드디어 증발했다(중간에 증발하기도 하겠지). 그것은 비의 죽음이다. 그러나 하늘 쪽에서 본다면 그 수증기로의 증발은 새로운 탄생이다. 그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기단이 되고 그리하여 어느 날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질 때 그것은 구름(수증기)의 죽음이다. 곧 비의 탄생이다. 탄생이 곧 죽음이고 죽음이 곧 탄생이다.

2. 살았던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죽어 모두 어느 곳으론가 가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도착하는 곳은 분명히 있다. 그곳이 저승이다. 그렇다면 저승은 이승의 짝이다. 이승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승은 분명히 있다(땅의 비가 죽어서 가는 곳이 하늘이듯).

 

3. 저승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있기는?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우주 어디에 저승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가 저승이다(땅에 사는 사람에게 하늘 또한 활동 공간이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공간이 아니라면 그 먼 곳까지 어떻게 찾아 갈 것인가? 하지만 이승과 저승은 서로 교통될 수 없는, 서로 완전히 다른 계(界)이다. 이승이란 보이는(可視) 몸에, 보이지 않는(不可視)영혼이 깃드는 곳이라면, 저승이란 보이는 영혼에 보이지 않는 몸이 깃든 곳이다(비와 수증기는 똑 같은 물이나 그 모양이 다르다). 저승은 죽은 자들의 죽음의 공간이 아니다. 그 곳은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비의 삶이 있듯, 구름의 삶도 있다).

 

4. 저승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할까? 나무는 씨앗을 맺는다. 씨앗 속에는 온전히 나무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리고 씨앗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씨앗으로의 삶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알맞은 온도와 습도를 만나 썩어야만 발아가 되고, 그래야만 성장하는 나무로서의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성장의 과정에서 온갖 풍상을 겪으며 환경에 적응하며 산다. 이 적응을 통해서 나무는 성취의 기쁨을 느끼고, 진화되는 삶의 기쁨을 누린다(知가 能이 되고, 質이 量을 얻고, 性이 相을 이룬다). 그리고 진화된 만큼의 삶의 요소를 그대로 간직한 새로운 씨앗을 열매 맺는다. 씨앗의 자질은 어미나무가 나무로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결정된다. 씨앗에겐 어떤 선택권도 없다. 조악스럽지만 씨앗의 삶을 저승으로, 나무로서의 삶을 이승으로 비유해 본 것이다. 삶의 궁극이 진화해 가는 것이라면 그 진화는 오직 이승에서만 가능하다. 이승이란 한 생명이 진화할 수 있는 최고 기회라는 깨달음은 옳은 것이다. 우리가 전생(前生)이라고 말할 때, 저승에서 나는 하느님 곁에 있었다든가 옥황상재의 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황족이었다거나 어부였다든가 하는, 이승에서의 전생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진화되는 진정한 의미의 삶은 이승에서만 가능하다.

 

5. 저승은 이승의 거울이다. 사람들의 이승의 삶이란 게 각자가 자기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자기가 보는 것만큼 살듯이, 저승의 삶도 자기가 그려 놓은 저승에서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산다. 그런데 저승의 삶은 씨앗의 삶이라고 했다. 씨앗은 바로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했다. 그럼 자기의 저승은 바로 이승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결정된다. 즉 사람은 이승에서 자기의 저승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승윤은 이승에서 모든 생명이 억압 받지 않고 자유롭게 발현되는 생명의 궁극을 보았다. 그러나 이 땅엔 생명성이 온전히 구현된 세계란 없다. 이제 그가 찾아갈 곳은 물질성이 완전히 부정된 영혼의 세계, 저승 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살아서 자기의 저승을 완성 지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땅에 살면서도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 땅에 그림으로 저곳을 전하는 무당이었다.

 

오승윤의 저승을 구경한 덕분일까. 나의 저승은 음습하고 무서운 세계가 아니라 존재의 원형이 온전히 간직된 아름다운 세계가 되었다. 그러자 죽음은 음습한 곳으로의 전락이 아니라 존재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고향으로의 귀환이 되었다. 죽음을 이별 이상으로 슬퍼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런 사유의 과정을 거쳐서 그 우울의 늪을 빠져 나왔다. 오승윤은 자살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집으로 서둘러 돌아간 거였다.

 

“어이, 거기에도 비는 내리는가?”

 


                                                       2007.10.16. 02시 200×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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