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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그리움, 추억의 베트남

by 안규수 2013. 2. 20.

  

  또 한 해를 보낸다. 언제부턴가 마음 깊은 곳, 커다란 그리움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움이 화살되어 구랍 31일 일주일 정도 여정으로 베트남으로 떠났다. 호치민시(구 사이공)에 거주하는 큰 아들 초청에 의해서다. 나와 아내, 귀염둥이 손자 지승이 경민이와 함께였다. 이번 여행 목적은 백마부대 28연대가 주둔한 중부 투이호아를 찾아보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만을 살다가는 인생길 삶의 마디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을 안고, 죽기 전에 반드시 찾아보고 싶었던 곳, 나의 젊음을 찾아 이곳에 왔다. 우리를 안내한 30대의 젊은이에게 한국군 주둔지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꿈에도 그리워하든 베트남 중부 투이호아, 사십여 년 전 내 젊은 청춘을 바친 곳이다. 백마부대 28연대 3중대에서 15개월을 복무했다.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생과 사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었다. 산하는 그대로 인데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만큼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부대가 주둔한 투이호아 해변에는 신도시가 들어서 있다.

  백사장, 거친 파도가 거칠게 울부짖고 있는 푸른 바다 수평선 너머 그곳에는 끝도 없는 그리움이 손짖 하고 있었다. 고향집 어머니와 아내, 가슴이 저려오는 그리운 얼굴이 마을 어귀에서 어서 오라고,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꿈을 밤마다 꾸었다.

  무심한 세월은 그때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태고의 모습 그대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리움이 이승의 영욕들이 바람처럼 스러지고, 새로운 피안의 세계로 녹아드는 듯하다. 단 하나 미군부대 내에 있던 벽돌로 건축한 성당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작전을 마치고 찾았던 연대 휴양소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포격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래사장에서 세찬 바람에 파도가 넘실대는 남지나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허허로움을 감출수가 없다. 내 마음속에 내재된 원초적 슬픔 같은 것이 일렁인다.

  젊음이여 다시 오라, 아련한 추억에 자리를 쉽게 떠날 수가 없다. 사단작전 중 전사한 전우들, 악명 높은 K개곡에서 베트콩의 야간 기습을 받아 바로 내 옆에서 잠자다 전사한 선임하사 K중사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젊음의 순수했던 열정 하나로 역사의 제단에 몸 바친 그 꽃처럼 곱고 푸른 원혼들에게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흐른다. 소리 내어 울고 싶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그날의 추억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때의 그 해변에서

계사년 새해 아침 붉게 떠오르는 태양( 바로 앞 사이공 강이 흐른다.)


봉타우 클라우디 레이크 유원지



아들과 손녀 혜림이(호치민에서 영국계 국제학교 재학중이다.)

나와 아내

호치민시 벤탄시장


호치민시 중앙 우체국 앞에서

중앙우체국 안 여행상품 가게

호치민시 통일궁 (구 월남 대통령궁)

호치민시 전쟁기념관(미군이 버리고 간 헬기와 탱크)

그 유명한 구찌터널 입구에서 지승이, 이 터널 길이가 무려 250키로로 거미줄 처럼 얽켜 있어 난공불락의 요세다. 전쟁이 끝난 뒤 공개되서 알았지 미군도 이 요세의 실체를 몰랐다고 한다.

파괴된 미군 탱크 전쟁의 참혹상, 어찌 되었던 전쟁은 피해야 한다.

구찌터널 부근의 휴게소, 이곳에서 베트남 고구마를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 고구마가 전쟁 중 베트콩의 주식이었단다.

투이호아 동물원

투이호아 불교사원  나무가  기이하다

                                                     베트남 전통 사원

아들과 두 딸들 

아들 내외

 불교 사원인줄 알고 내부를 들어다 보니 우리나라 성황당 같은 곳이다. 투이호아를 지켜주는 신이 살고 있다나.

                        다비아산의 큰 바위/원통같은 수직 절벽 위로 우둑 솟아 있다.연대 포병부대

                        가 아침이면 저 바위를 향해 포 사격 훈련을 했다.

                        이 산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 부대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적 척후 진지를 파괴

                        하기 위한 연대작전을 벌렸고 나도 한 번인가 참전한 기억이 있다.

                        밀림에서 작전시 병사들이 겪는 제일 큰 고통은 목 마름이었다. 개곡물은 

                        마실수가 없고 오직 미군 시누크가 공수해온 물 뿐이었다. 전투기 심해 지면 

                        헬기가 뜰수 없기 때문에 말로 형언키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짱 해변에서 큰아들, 혜림이.지금은 휴양도시로 변모해 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란다.

부산을 출항한 수송선이 나짱(나트랑) 부두를 통해 나는 이 땅을 밟았고, 떠났었다. 남지나해를 거치는 항해는 대략 일주일 쯤 걸리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혜림이, 지승이, 경민이(자랑스러운 손주들)

나와 큰아들 종훈이(한국투자신탁운용 베트남 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아들이 한 살 때 파병되었다.

             모두들 살포시 웃는 모습이 이쁜데, 아들은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더 운치가 있다. 

나짱 성당 앞에서 아들 가족,딸만 둘이다.

나짱 성당 앞에서 우리 가족

나짱 담시장에서

나짱 아이 리조트(진흙 머드 스파가 좋았다.) 뒤로 보이는 외국인은 러시아인들이다. 나짱 유일의 온천이다.

나짱 참파 리조트에서 저녁 식사전, 웃지못할 일은 뒷편에 서 있는 경민이가 물이 빠지고 나서  저녁을 먹지 않았다.(쪽팔려서 그랬다나)

 호치민시와 사이공 강, 이곳은 베트남 부호들과 외국인 거주지역이다. 이번 여행에서 무엇 보다도 좋았던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들 가족을 만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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