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櫓) / 나태주
아들이 군에 입대한 뒤로 아내는 새벽마다 남몰래 일어나
비어있는 아들방 문앞에 무릎 꿇고 앉아 몸을 앞뒤로
시계추처럼 흔들며 기도를 한다
하느님 아버지, 어떻게 주신 아들입니까? 그 아들 비록 어둡고
험한 곳에 놓일지라도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않도록 주님께서
채금져 주옵소서
도대체 아내는 하느님한테 미리 빚을 놓아 받을 돈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하느님께서 수금해주실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계속해서 채금(債金)져 달라고만 되풀이 되풀이
기도를 드린다
딸아이가 고3이 된 뒤로부터는 또 딸아이방 문앞에 가서도
여전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똑같은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아버지, 이미 알고 계시지요? 지금 그 딸 너무나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오니 하느님께서 그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 밝혀주시고 그의 모든 것을 채금져 주옵소서
우리 네 식구 날마다 놓인 강물이 다를 지라도 그 기도
나룻배의 노(櫓)가 되어 앞으로인 듯 뒤로인 듯 흔들리며
나아감을 하느님만 빙긋이 웃으시며 내려다보시고 계심을
우리는 오늘도 짐짓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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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노(櫓), 거룻배의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때 젓는 것을 말한다. 나는 이 시를 읽고 30년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를 생각하고 마음이 뭉클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다 가신 어머니는 매일 이른 새벽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기도하셨다. 하나 뿐인 아들을 위한 지극정성이었다.
이 시에서 어머니는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을 위해 매일 새벽 시계추마냥 몸을 흔들면서 기도하고 계신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도대체 아내는 하나님한테 미리 빚을 놓아 받을 돈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수금해주실 일이라도 있다는 것인지 계속해서 채금(債金)져 달라고만 되풀이 기도를 드린다'이다. 채금은 ‘책임’의 소리글인데 시인은 채금을 교묘히 돌려놓았다. 아내의 기도를 하나님께 받을 돈 달라고 조르고 있는 형상으로 빗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서 그저 ‘주십시오’하고 메어 달이는 인간들의 속성을 꼬집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의 어머니 기도는 신실한 믿음의 기도이다. 또 한 가지, 채금(採金)은 기도야 말로 깊은 땅굴에서 금을 캐는 것과 같다는 은유이기도 하다. 딸이 고3이 되자 어머니는 똑 같이 새벽마다 딸 방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알고 계시지요? 지금 그 딸 너무나 힘든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오니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 밝혀주시고 그의 모든 것을 채금 져 주옵소서.’
여기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 사랑에 가슴이 매인다. 어머니는 집안의 건강과 안위를 책임지는 거룻배의 노(櫓)인 것이다. 오늘도 쉼 없이 노를 젓고 있는 우리들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이 어머니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음을 이 시의 결미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네 식구 날마다 놓인 강물이 다를 지라도 그 기도 나룻배의 노(櫓)가 되어 앞으로인 듯 뒤로 인 듯 흔들리며 나아감을 하나님만 빙긋이 웃으시며 내려다보시고 계심을 우리는 오늘도 짐짓 알지 못한 채 하루를 산다.’
오늘도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빙긋이 웃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시를 통해 절절히 느낀다.<안규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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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흙의문학상, 충청남도문화상, 현대불교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시와시학상, 편운문학상 등 수상.
시집
「대숲 아래서」「누님의 가을」「막동리 소묘」
「굴뚝각시」「아버지를 찾습니다」
「그대 지키는 나의 등불」「추억이 손짓하거든」
「딸을 위하여」「풀잎 속 작은 길」
「슬픔에 손목 잡혀」「섬을 건너다보는 자리」
「물고기와 만나다」등
산문집
「대숲에 어리는 별빛」 「절망, 그 검은 꽃송이」
「추억이 말하게 하라」
시화집「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송수권·이성선·나태주 3인 시집「별 아래 잠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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