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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난(蘭), 그 신비로운 향(香)에 취하다

by 안규수 2013. 10. 17.

꽃 모양이 나비가 날아오는 듯

복을 한아름 안고 우리 집으로 시집 온

'호접란(蘭)'

 

 

묵은 꽃대궁이에 싹이 돋더니, 

뭔가를 움켜쥘 듯 연초록 뿌리가 허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뻗고 있었어요.

이윽고 꽃대궁이가 말라 비틀어지자 새처럼 날아오르려는 것을

살짝 떼다가 화분에 옮겨 심었지요.

그 뿌리 중 하나 끝이 팥알만치 부풀어 있었습니다.

뿌린지 꽃망울인지 미심쩍었지만

혹시나 하고 그것만 살짝 내놓고 지지대를 세워줬 더니,

조금씩 부풀어 지지난 금요일엔 강낭콩만 했죠.

 

그런데 오늘 아침,

햇살이 얼굴을 내밀기 전 베란다에 

선명하고 신비한 향이 가득 차 있었어요.

 

뭐지?

창가 화분에서 

호접란이 아, 저 혼자 꽃을 피웠네요. 

 

 

 

마법의 순간.

이 꽃을 보자마자, 한 소녀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만난 그 소녀였습니다.

10여 년 전 귀밑 애기털이 보송보송했던 소녀가 어느새 중년 부인이 되서

내 앞에 나타나 미소를 띄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완숙미가 넘 아름다웠고 맑은 눈 빛은 푸른 호수 같았어요.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 호접란이

노오란 잎새를 벌리고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

수더분한 꽃봉우리와 은은히 풍기는 향이

영락없이 그 소녀를 닮았습니다. 

 

'저 꽃봉우리 보셔요.

 그녀 입술을 꼭 닮았어요.'

 

내 서재로 옮겨 놨더니,

호접란 꽃, 향를 솔솔 풍기며 날 보고 방긋 웃고 있어요.

 

꽃이 내 곁에 있는 한,

긴긴 밤

잠을 이루기는 벌써 틀린 것 같아요.

 

어쩌죠? 

저  꽃향이 내 마음을 도둑처럼  훔쳐가서....  

 

또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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