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모양이 나비가 날아오는 듯
복을 한아름 안고 우리 집으로 시집 온
'호접란(蘭)'
묵은 꽃대궁이에 싹이 돋더니,
뭔가를 움켜쥘 듯 연초록 뿌리가 허공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뻗고 있었어요.
이윽고 꽃대궁이가 말라 비틀어지자 새처럼 날아오르려는 것을
살짝 떼다가 화분에 옮겨 심었지요.
그 뿌리 중 하나 끝이 팥알만치 부풀어 있었습니다.
뿌린지 꽃망울인지 미심쩍었지만
혹시나 하고 그것만 살짝 내놓고 지지대를 세워줬 더니,
조금씩 부풀어 지지난 금요일엔 강낭콩만 했죠.
그런데 오늘 아침,
햇살이 얼굴을 내밀기 전 베란다에
선명하고 신비한 향이 가득 차 있었어요.
뭐지?
창가 화분에서
호접란이 아, 저 혼자 꽃을 피웠네요.
마법의 순간.
이 꽃을 보자마자, 한 소녀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밤, 꿈 속에서 만난 그 소녀였습니다.
10여 년 전 귀밑 애기털이 보송보송했던 소녀가 어느새 중년 부인이 되서
내 앞에 나타나 미소를 띄고 다소곳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완숙미가 넘 아름다웠고 맑은 눈 빛은 푸른 호수 같았어요.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 호접란이
노오란 잎새를 벌리고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
수더분한 꽃봉우리와 은은히 풍기는 향이
영락없이 그 소녀를 닮았습니다.
'저 꽃봉우리 보셔요.
그녀 입술을 꼭 닮았어요.'
내 서재로 옮겨 놨더니,
호접란 꽃, 향를 솔솔 풍기며 날 보고 방긋 웃고 있어요.
.
꽃이 내 곁에 있는 한,
긴긴 밤
잠을 이루기는 벌써 틀린 것 같아요.
어쩌죠?
저 꽃향이 내 마음을 도둑처럼 훔쳐가서....
또 꿈속에서 그녀를 만나기를 기다릴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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