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아랫장을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순천만까지 걸어가기로 한 것이다. 낯선 길을 걷는 동안 황홀한 상념들이 오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순천만, 어디로 갑니까?”
“동천(東川) 따라 ‘시오 리만 가면 됩니다.”
오이 장수 아줌마의 서글서글한 대답이다. 물 대신 오이가 준비되었으니 걸을 준비는 끝난 셈. 햇빛을 가릴 밀짚모자는 오전에 샀고, 운동화에 간편복이니 말이다.
풍덕교는 장터 옆에서 동천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나는 다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물을 따라 방천길을 걷는다. 초입은 잘 가꾸어 놓은 꽃길이다. 터널의 꽃그늘을 빠져나가, 이내 도로로 이어진다. 도로가 되어버린 방천길엔 차들이 씽씽 질주하고, ‘순천만 6Km’란 이정표만 둥그렇다. ‘이 길로 걸어갈 수 없어....’하는 것만 같다. 걸어보려던 방천길은 차들에게 내주고 둔치의 보행로를 따라 걷기로 한다. ‘응, 시오 리 길이네.’ ‘무진 기행에서 하인숙이 걸었던 방죽길도 시오 리였는데....’ 묘한 기대감이 인다.
동천과 함께 도란도란 흐르는 시간이다. ‘시간이란 마음의 삶’이라 했던가. 동천은 순천시 서면(西面) 청소리 송지봉에서 발원하여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칠십 리 물길. 물은 발원지에서 태어나는 것인가? 물에게 바다는 또 무엇일까? 방천길과는 무슨 관계이며, 길의 이쪽과 저쪽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아줄까? 그리고 저만치에서 발달한 습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어린아이처럼 묻고 또 물으며 한참을 걸으니 넓은 둔치엔 보리밭이다. 보릿가실*이 한창으로 콤바인도 ‘털털털’ 더위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알곡을 토해낸다. 보릿대는 곤포(梱包)가 되어 마소의 사료로 저장되고, 땅에 덜어진 낱알은 비둘기들이 쪼느라 바쁘다. 분주한 보리밭을 지나자 보행로는 홀로 풀숲으로 자취를 감춘다. 걷는 사람은 없고, 기계소리도 멀어진다. 나른한 오후, 후덥지근한 날씨다. 동천도 별말 없으니 휘휘하기까지 하다.
이때다. 날렵한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한 쌍의 싱싱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적막하기까지 하던 분위기가 확 바뀐다. 때맞추어 한 점 바람이 ‘휘익!’ 스치는 것이 아닌가. 동천엔 물결이 살랑거린다. 햇살이 물결 속으로 투과하여 빤짝빤짝 빛난다. 별들이 금새 솓아진 것일까. 물낯은 간지러운 모양이다. ‘천천히, 천천히!’ 훼방꾼이 된 바람은 흐르는 물을 거슬러 불면서 속삭인다.
물은 바람을 만나면 바람과 놀고, 어쩌다 그늘을 만나면 그늘에서 쉬어가고, 햇볕이 내리쬐면 수온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품안에 붕어도, 메기도 기르고, 수초도 기르며 흐른다. 말없이 만물에게 수분을 대어주고, 농사도 짓게 하고, 마실물의 수원이 되기도 하고.....한 자리에 머무는 일 없이 흐르면서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물가에 피어 있는 노랑 달맞이꽃에 눈을 팔기도 하고, 심어 가꾼 관상용 붉은 꽃양귀비도 본다. 자연과 인공을 대신하는 꽃 같기도 하다. 동천은 생태 하전으로 가꿔졌지만, 완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기에는 세월이 지나야 하겠다.
조용히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물도 때로는 광란(狂亂)으로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범람하여 논밭과 집들을 삼키기도 했고, 방천길을 무너뜨려보았다. 사람들은 성난 붉덩물과는 말하지 않았다. 성난 물과 맞서면 다친다는 지혜를 가지고 있는 농부들은 물의 뜻을 읽었던 것. 얼마나 지났을까, 붉덩물은 자정(自淨)으로 맑은 물이 되었다. 그때에 ‘이쯤 넓혀 쌓으면 되겠지.’ 짐작하며 다시 이었다.
그렇다면 방천길은 물과 사람이 만들어 가는 합(合)의 상징물인 셈이다. 서로 밀고 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을 보게 된다.
만물은 무엇이나 그 하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나 보다. 너와 내가 주고 받는 보이지 않는 힘 때문에 현상은 늘 변하는 것 아닐까.
이제, 방천길도 한 구부뎅이*를 돌아서야 한다. 걸어가는 길에 ‘굽이’가 없다면 삶이 얼마나 싱거울까. 굽이굽이 돌아가는 삶에서도 무지개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지칠 줄 모른다. 굽이돌아 맞이한 신천지에 동천은 갈대를 키우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던 갈대가 싱싱한 숲을 이루어 동천의 호흡은 길어지고, 폭은 넓어졌다. 여기저기 모래섬도 드러나고, 숲이 형성되기도 했다. 백로 한 마리, 물속을 들여다보며 가느다란 다리로 김 모가지를 힘겨워하며 먹이를 찾고 있다. 동천이 바닷물과 만나는 어름이다. 바닷물은 벌써 이무기처럼 고개를 흔들며 갈대숲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여기는 순천만 입구요.’말하며 만(灣)을 형성 한 것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갈대숲이 출렁인다. 키를 훨씬 넘는 갈대숲에 묻히면 누구도 함께 흔들려야 할 것만 같다. 어석어석 성숙한 여인의 모습이다.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도 떠올려보았다.
세상에 울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저쪽에서 이사천이 울면서 흘러든다. 순천을 대표하는 ‘이수(二水)’는 동천과 이사천. 두 물은 합수하여 순천만으로 흘러든다. 냇물은 바다에 이르면 생을 마감하는 것일까, 또 다른 생을 시작하는 것일까? 발원하여 흐르고, 무엇과 만나고, 바닷물이 되고, 다시 구름이 되고, 비가 되고..........
나는 출발하자마자, 차들에게 내어준 방천길로 다시 올라설 수 있었다. 시야가 넓어진다. ‘산다는 것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일까? 아니, 느낌을 쌓아가는 과정인가?’ 생각해본다. 어느새 얼굴에 닿은 바람의 감각이 다르다. ‘무진의 안개’를 연상시키던 만연채 문장 같은 물길이 이어진다. ‘하늘이 내린 정원, 순천만!’ 걸음을 멈추고 눈을 멀리 던져본다. 갈대숲이 햇살을 받아 황홀하다. 걷다보니 이런 비경(秘境)도 만나는 것을............
*보릿가실 ; ‘보리가을’의 방언(전남)
*구부뎅이 ; ‘굽이’의 방언(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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