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하듯 눈이 내렸다. 봄이 제일 먼저 온다는 이곳 해남반도. 기세등등하던 동장군이 밀려나고 봄빛이 완연한데, 때 아닌 눈발이 분분하다가 어느 틈에 개이고, 개었는가하면 잼처 소담한 눈송이가 어지럽게 춤을 추었다. 이십여 명의 남도답사회원들은 해남에서 하룻밤을 묵고 일찌감치 미황사로 향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기에 미황美黃이라 했을까.’
내게 미황사는 색깔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초행인 땅끝 나들이였다. 가는 길의 풍경마저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차멀미대장’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감투가 나를 맨 앞좌석에 앉게 해주었다. 윈도브러시가 정확한 박자로 너른 앞창을 말갛게 닦았다. 버스가 구불구불한 813번 지방도로를 대여섯 구비 돌자 부윰한 아침안개를 덮은 다도해가 차창 가득히 들어왔다.
“우와~꿈꾸는 바다야.”
점점이 우련하게 떠 있는 작은 섬들, 잿빛 바다···. 산골에서 자란 내겐 난생 처음 마주친 몽롱한 풍경이었다. 초면의 바다는 무정했다. 눈이 아프도록 보고 싶어 하는 나그네를 모르는 체 낮으막한 산자락 뒤로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많이 아쉽지는 않았다. 일상을 떠나 땅끝의 낯선 풍물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부듯했다.
버스가 눈 내린 도로에 바퀴자국을 남기며 얼마만큼 달렸을까. 가이드의 구성진 목소리가 지긋이 눈감고 있는 답사회원들의 졸음을 깨웠다.
“오른쪽 2시 방향을 보세요. 남쪽의 금강산이라 부르는 달마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달마산을 가사장삼처럼 두르고 앉아 있는 미황사는······.”
“달마?” 문득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선종을 창시한 달마대사의 왕방울 눈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을 삼켰다. 멀리 아슴푸레하게 보이던 달마산이 점점 가까워지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머. 파이프 오르간! 바위능선이 꼭 파이프 오르간 같아.”
옆자리의 K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점잖게 느낌을 표했다.
“가람과 오르간이라. 좀 색다른 어울림이군요. 내 눈엔 공룡의 등뼈로 보입니다.”
다시 보니 ‘공룡의 등뼈’가 한결 그럴듯한 표현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내 느낌은 흔들리지 않았다. 불현듯 파이프 오르간이 가장 영적靈的인, 초저주파超低周波를 내는 악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귀가 내면의 소리를 들을 때 내면의 꽃이 핀다.”고 했던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시라도 한 줄기 강한 바람이 들쭉날쭉한 바위능선에 부딪쳐 웅숭깊은 가락을 자아낼 것만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신라 경덕왕 8년(749) 8월에 돌로 된 배石船 한 척이 아름다운 범패 소리를 울리며 사자포(땅끝마을) 앞바다에 나타났다. 배는 며칠 동안이나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곤 했는데, 의조화상이 두 사미승과 100여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했더니 육지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으로 된 사람金人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으로 된 함과 검은 바위가 있었는데, 금함에는 여러 경전과 불상과 탱화가 들어 있었다. 검은 바위를 깨뜨렸더니 검은 소가 뛰어나와 금세 큰 소가 되었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서, 나는 우전국(인도) 왕인데 금강산이 일만불一萬佛을 모실만하다 하여 불상들을 싣고 갔으나 이미 절이 많이 있어서 봉안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던 길에 금강산과 비슷한 이곳을 보고 찾아왔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흥왕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의조화상이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나섰더니 소가 달마산 중턱에서 한 번 넘어지고 또 일어나서 한참 가다가 크게 울며 넘어지더니 일어나지 못했다. 의조화상은 소가 처음 멈췄던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절 이름을 미황사美黃寺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매우 아름다워 ’미美‘ 자를 넣고 금인의 빛깔에서 ’황黃‘ 자를 딴것이다.
가이드는 창건설화를 정리하듯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나라 불교는, 북방전래설이 통설입니다.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우리나라 불교의 남방 해로전래설海路傳來說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달마란 법입니다. 달마산 미황사는 인도에서 직접 불법이
전래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박수가 터졌다. 한 숨을 돌린 가이드는 미황사가 망한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 또한 창건설화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절로 들어가는 길이 한 가닥 숲 사이로 보일 뿐 구멍가게 하나 없이 한적했다. 버스 문이 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차디찬 공기가 밀려들었다.
나는 사진에 입문하면서부터 ‘우리 옛 건축에 담긴 표정들’을 기록하느라 수많은 절집을 찾아다녔다. 사람들이 ‘때 묻지 않고 사랑스런 절집’으로 미황사를 꼽는가하면 ‘참 좋은 곳을 다녀왔다’는 자랑을 참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선뜻 미황사를 찾아가지 못했다. 우리나라 육지의 절 가운데 최남단인, 하룻길로는 벅찬 천리의 먼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찌된 일인지 꼭 가야할 때를 골라 미황사가 나를 부르리라는 엉뚱한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느긋하게 인연이 닿기를 기다린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주차장을 걸어 나오자 경사가 만만찮은 오르막길이 숲을 가르며 앞장을 섰다. 싸락눈을 동반한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산자락을 짙푸르게 덮고 있는 동백숲이 깊고 둔중한 파도 소리를 내며 물결쳤다. 얼핏얼핏 들리는 소리는 궁고소리인가?
가이드가 전해 준 설화가 떠올랐다. 150년쯤 전만해도 미황사는 스님이 40여 명이나 있고 재산도 많은 큰 절이었다. 당시 절에서는 큰 중창불사를 벌이려고 스님들이 궁고(해남지방에서 농악을 이르는 말)를 꾸려 해안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어느 날, 설쇠 맡은 스님이 어여쁜 여인의 유혹을 받는 꿈을 꾼 후 불길한 생각이 들어 그날은 쉬자고 했으나 주지스님이 듣지 않았다. 그들은 완도·청산도로 가던 뱃길에 폭풍을 만나 설장고 맡은 스님 하나만 빼고는 모두 떼죽음을 당했다. 남은 것은 절에 있던 노스님 몇 분과 궁고 꾸리느라 투자한 빚더미뿐, 미황사는 그만 폐사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비바람이 치는 날에는 바다에서 궁고치는 소리가 들린다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부처님은 왜 절을 중창하려는 스님들을 수장水葬했을까. 법이란 건물의 웅장함이나 신도들의 숫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을까. 그들의 염원은 컸지만 법은 화려한 단을 쌓기에 앞서 가난한 민초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었음을 간과했나보다. 갈수록 바람이 드세졌다. ‘싸그락 싸그락 싸락싸락···’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싸락눈이 길섶에 무리지어 늘어선 키 작은 산죽山竹잎새를 마구 두드렸다. 귀가 시렸다.
여느 절처럼 미황사도 중창불사가 한창이었다. 비바람에 단청이 다 지워져 나뭇결을 그대로 드러낸 대웅보전이 막돌을 쌓아 올린 높직한 기단 위에 기품 있게 앉아 나그네를 맞았다. 훌쩍 기단에 올라서서 대웅보전의 앉음새가 베푸는 편안함에 젖어들다가 무심코 배흘림기둥 주춧돌에 눈길을 주었다.
“어? 이게 웬일이야. 바닷게와 거북이가 여기까지 올라왔네.”
놀라웠다. 연꽃문양의 주춧돌에 거북이는 몰라도, 바닷게와 물고기까지 천연스레 돋을새김 된 것은 어느 절에서도 본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답사회장이 대웅보전 안에서 나를 불렀다. 질박한 외부와는 달리 곱게 단청丹靑을 올린 내부는 화려한 공포栱包며 학과 모란, 제불도와 여러 나한들의 그림이 가득해서 황홀하단다. 일행들이 화려한 법당 안을 탐닉하는 동안 나는 비바람에 쓸리고 마모된 주춧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이미 게와 거북이에 빠져 있었다. 눈을 감았다. 잡다한 생각을 내려놓았다. 바람결에 비릿한 바다냄새가 실려 왔다. 오랜 옛날 바다생물을 대웅전 주춧돌에 새긴 석공의 소리가 들렸다.
“귀 기울여 내면의 소리를 들어 봐. 돌배에서 울리던 범패소리와 경전과 불상을 지고 가던 소의 울음소리를 들어 봐. 그리고 지금도 바다 속에서 미황사의 중창불사를 염원하는 스님들의 궁고치는 소리가 어떤 빛깔로 울리는지 귀 기울여 봐.”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일행들은 때 아닌 눈이 오락가락하고 바람까지 유난한 오늘 날씨를 ‘고약한 날씨’라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나는 가장 알맞은 날씨에 미황사에 왔음을 자축했다. 차창으로 다가서는 달마산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보일 때부터 품었던, 바위능선에서 오묘한 소리가 울려나오려면 바람이 불어야 했다. 더 세게 불어야 했다. 보란 듯이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숨소리를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바위능선에서 낮고 장중한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 소리는 언젠가 중세의 고색창연한 수도원에서 들었던 그레고리안 성가였다. 스님들의 웅혼한 예불송禮佛頌 이었다. 마음이 평안해 졌다. 혼자듣기엔 아까웠다.
“저 소리를 들어 봐요, 저 소리···.”
옆 사람은 잠시 귀를 기울이더니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바람소리 말이요?”
“················”
미황사는 색깔의 절집이 아니라 소리의 절집이었다. 미황사는 ‘보러’ 와야 하는 곳이 아니라 ‘들으러’ 와야 하는 곳이었다. 세상은 자연음, 저음이 갖는 묘약으로 가득한데 그동안 내가 귀를 막고 살았구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화창한 날엔 아름다운 경치가 눈을 기쁘게 하지만 오늘 같이 바람 불고 음울한 날엔 오묘한 소리가 마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나는 끝내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내가 깨달은 진리는 화려한 법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서 있는 미황사는 바다생물까지도 불원천리 기어와 문밖에 엎드려 해탈하는 곳이었다. 바닷게와 거북을 여기까지 불러낸 것은 아름다운 소리, 진리의 소리, 달마의 소리였다. 내 귀에는 공중에 울리는 소리만 들리지만 대웅보전 주춧돌이 된 저들은 땅과 바다와 공중의 모든 소리를 빠짐없이 들으리라. 나는 잠깐 듣고 가지만 저들은 수수 백 년을 묵묵히 엎디어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자연의 독경소리에 성불하였으리라.
다시 한 번 달마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에서 범패소리가 들렸다. 소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그 아름다운 소리는 법이요 진리인 달마였다.
주춧돌에 새겨진 거북이 상,이것을 바라본 작가의 심미안이 절절이 글 속에 나타나 있다.
바닷게와 물고기들 어찌 이곳까지 올라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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