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너그러웠던 고향 마을에는 오래된 초가삼간 옛집이 있었다. 나를 키워낸 산과 강은 멀리 휘돌아 누리에 가득차고, 뜰 안에는 늙은 감나무가 담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 있었다. 늦가을이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찾아오면 가랑잎 누운 자리에 그리움이 덧쌓이곤 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새 주렁주렁했던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에 잘 익은 감이 몇 개가 남았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손차양을 하고 고개를 들어 큰 소리로 “그건 까치밥하게 그만 따고 내려와라” 하시었다.
탐욕이 닿지 못한 나무 우듬지 꼭 잡고
빠알간 홍시 몇 개 우주를 흔들며 무위의 춤을 춘다
어느 허기진 마을 주민들 주름살 펴지겠다
언젠가 나도 누굴 위해 붉은 심장 하나
허공에 내 걸 수 있을까.
-까치밥- 필자의 졸시
입동立冬무렵이면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곱게 물들었던 낙엽마저 지고나면 온 산야는 쓸쓸하고 동지섣달의 詩에서는 찬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들녘에서는 보름달을 가로지르는 기러기 떼의 날개 짓 소리가 하늘 가득 했다. 산등성이엔 줄기 끝에 화사하게 피어난 억새의 솜털 무리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쉼 없이 색깔을 바꿨다. 나무 가지 끝에 내 건 등불인양 저녁노을 펼친 채 빠알간 홍시가 무위의 춤을 추었다. 날이 추워 눈이 쌓이고 모이가 부족하면 까치나 텃새들이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다.
찬 서리에 익고 첫눈이라도 살짝 쌓인 까치밥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럴 땐 배고픈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이 생겨나 좀 더 많이 남겨둘걸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겨울을 나는 새들을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이 아니었는데도 동네 사람들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고, 가짐보다는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말 해주는 의식이었다.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까치밥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아 하루 두 끼조차 힘들었던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텃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산이나 들에서 일을 하다가 새참을 먹기 전에 ‘고수레’하면서 음식을 조금씩 뿌렸다. 원래 귀신에게 바치는 전해 내려오는 관습이었으나 산짐승이나 들짐승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나누어준다는 의미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농경사회로 출발한 우리 민족의 나눔에 대한 미덕을 조상들의 정신세계에서 엿볼 수 있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조선조 우리나라에서 나눔으로 존경받는 최고의 부자로는 경주 崔부자와 구례의 柳부자를 꼽는다.
몇 년 전에 민속자료 제 27호로 지정되어있는 경주 교동 최 씨 고택을 방문하여 뜻 깊은 가훈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내용 몇 가지를 들어보면,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매입하지 말고, 집으로부터 사방의 100 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또한 나그네는 귀천을 가리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며, 절대 진사進士 이상 벼슬을 하지마라. 등이었다. 즉 욕심을 부리지 말고 서로 도우며, 베풀면서 살아가돼 권세에 휩쓸리지 말라는 교훈이었다.
전
남 구례 운조루雲鳥樓는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산다는 의미로 柳이주가 살던 99칸의 집이었다. 그의 곳간 뒤편에는 누구라도 쌀을 마음대로 가져 갈 수 있는 뒤주가 놓여 있었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베푼 구휼미救恤米였다. 뒤주의 하단부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 놓고 여닫는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를 써놓았다. 즉 다른 누구라도 능히 이 구멍을 통하여 열고 닿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특이한 점은 주인의 얼굴과 대면하지 않게 곳간 채 뒤편에 뒤주를 놓은 것이다. 베푸는 입장에서는 선을 행하는 일이지만 받는 이의 처지에서는 부끄럽거나 자존심을 상할 경우가 있기에 생각한 배려라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명절이나 되어야 고기 몇 점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작은 생명을 챙기며 살았으니 우리 민족의 나눔은 태생적인 자비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나눔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라고 생각된다. 비록 작은 것이라도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물다보면 자기 위안도 얻게 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가. 나도 까치밥 같은 나눔을 남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앞으로 좋은 글을 써 먼 훗날 누가 읽고 난 후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빙그레 미소라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필은 이미 생활자체와 분리될 수 없는 밀접한 삶의 반영이자 철학임을 표현한 <향 싼 종이에선 향내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선 비린내 난다>의 작가 원종성은 까치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나저나 나이가 들고 늙어지면 곶감이 되어야 할 텐데, 그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단내를 풍기며 살아온 껍데기가 너무도 단단한 탓이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속을 드러낼 용기 또 한 갖지 못한 까닭이다. 그럴 바에야 감나무 끝가지에 높이 매달린 까치밥이라도 되어야겠다. 꼭지 위에 하얀 첫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아직도 갈 길이 먼 나그네가 올려다보며 이렇게 옲조릴게다. 아! 참으로 꼽다”고...
철학을 모르면 ‘나’를 모르고, 과학을 모르면 ‘물질세계’를 모르고, 예술을 모르면 아름다움을 모르듯이 나눔을 모르면 가슴 뿌듯한 만족감도 못 느낄 것이다. 신이 베푼 자연은 인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도 함께 공유해야하는 우주 공간이다. 남을 배려하는 나눔의 마음인 까치밥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할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유산 이라고 생각된다. <현실펜에서 모셔 온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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