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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예수 안에 있는 자

by 안규수 2017. 3. 22.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이찬수 목사님의 <여전히 절망 가운데 살고 있는 이유> 라는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성령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성령충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그가 어떤 신비로운 은사를 발휘해서가 아니라 마음의 눈이 밝아지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엡 1:17-18)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비극은 마음의 눈이 어두운 데서 기인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교회를 들락거린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행하는 중직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너무나 무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구해야 한다. 

“성령님, 내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옵소서!”

성경에 보면 마음의 눈이 밝아진 사례가 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 이야기가 바로 그 경우이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5,16)

사실 이것이 얼마나 가슴 아픈 상황인가? 
여기 등장하는 제자들은 평소에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과 함께 호흡하던 사람들이었다. 
더군다나 19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던 현장에 함께 있었고,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했다.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눅 24:19)

21절을 봤을 때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

그런데 이렇게 오랫동안 주님과 동행했고, 주님을 인정했으며, 
또 주님에게서 나타날 놀라운 능력을 기대하고 바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 알지 못했는가? 성경은 그 이유를 단적으로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 그들 내면에 드리워져 있던 
좌절감과 아픔을 일시에 해결하실 수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 곁으로 오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17절에 보면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라고 되어 있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슬프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래 다닌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은가? 
모태신앙은 또 얼마나 많은가? 엠마오로 향하던 그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가까이서 경험하며 오랜 시간 교회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그 문제를 해결해주실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 여전히 낙심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무지했던 두 제자가 나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는데,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눅 24:30,31)

이 구절에서 ‘그들의 눈이 밝아져’라는 부분을 원어로 보면 수동태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석하는 게 옳다. 
“예수님이 눈을 밝혀주시니 눈이 떠졌더라.”

예수님이 눈을 밝혀주시니 눈이 떠졌더라
원어로 보면 제자들의 눈이 밝아지게 된 이유와 주체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바로 그 주체가 되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 속에 우리가 믿어야 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불교는 어두워진 눈을 인간의 고행과 노력으로 밝힐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고행과 노력으로 득도하여 눈을 밝히려고 애쓰는 자들이 아니다.

오늘도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눈을 밝혀주시는 주님, 
무지몽매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같은 우리 인생 속에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임하셔서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는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의 눈을 밝혀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아이덴티티: 예수 안에 있는 자, 이찬수 / 규장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언 9장 10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야 9장 23,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에베소서 1장 17-19절

성령 하나님, 무지몽매한 인생 가운데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임하셔서 제 눈을 밝혀주소서. 
그리하여 절망 가운데 있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주 예수님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과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깨닫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검색엔진 ‘익사이트’의 조지 벨 회장에게 어느 날 두 명의 프로그래머 가 찾아왔습니다. 
두 청년은 자신들이 만든 검색엔진을 설명하고 8억 원에 팔겠다고 제안했지만 벨 회장은 고심 끝에 거절했습니다. 
벨 회장 이 거절한 검색 엔진은 ‘구글’이었습니다.
일본의 미즈호 증권의 한 고객이 주식 1주를 61만 엔에 팔아달라고 주문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중개인의 실수로 61만주를 1엔에 팔아버렸 습니다. 
이 손해로 고객에게 보상한 액수만 3천억이었고, 회사의 신뢰도도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입사를 원했던 2명의 지원자를 자격 미달로 탈락시켰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이들이 개발한 ‘왓츠앱’이라는 회사를 20조원을 주고 인수했습니다.
2009년에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7천 500개나 구입한 제임스 하웰은 
몇 년 동안 쓸 일이 없자 컴퓨터에서 삭제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트코인이 나중에 급격히 값이 올라 72억 원에 달하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에서 꼽은 사상 최악의 실수 중 몇 가지를 나열한 것입니다.

인생에서의 최악의 실수 중 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 
그리고 믿은 뒤에 다시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 나님을 향한 믿음을 어떤 순간에도 잃지 말고 더 깊이 나가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최고의 행운임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을 떠나는 최악의 실수를 하지 않게 깨어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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