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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눈에 대한 기억/정승윤

by 안규수 2017. 3. 22.

눈이 온다. 눈은 어둠 저편에서 온다. 어떤 곳은 일년에 한 번 아주 짧게 온다. 눈이 온다. 죽음 저편에서 온다. 평생에 한 번 아주 짧게 온다. 눈은 희다. 눈은 차갑다. 눈은 순간적으로 부서진다. 눈은 어둠 저편에 대해서 말하지만 누구도 어둠을 알지 못한다. 눈은 나무에 내려 나무 형상이 된다. 가지에 내려 꽃의 형상이 된다. 바위에 내려 바위의 형상이 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이 쪽의 형상일 뿐이다. 누구도 어둠 저 편의 형상을 모른다. 수 천 수 만의 눈송이가 바람 속에 불려와도 단 한 마디도 죽음 저 편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못 한다. 수 천 수 만의 이야기들은 모두 관념일 뿐이다. 삶이 지어낸 관념일 뿐이다. 온 천지에 눈이 내린다. 눈은 공허한 곳에서 오지만 정작 비어있는 곳은 눈이 내리는 이 곳이다. 죽음 저 편은 누구도 모른다. 눈이 얼굴을 때린다. 눈은 빠르게 내 뒤로 사라진다. 우리는 죽음을 몰라도 서로 죽일 수는 있다. 서로 죽일 수는 있어도 정작 죽음은 모른다. 눈이 세차게 얼굴을 때린다. 눈은 영원한 죽음 저편에서 오지만 삶 속에서는 이렇게 짧고도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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