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지나온 과거를 돌아 보면,
모든 것이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며 놀라운 축복이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은감축~ ^0^
결코 녹록치 않은 베트남 생활이었지만~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한마디로 제 삶을 정의해 본다면~
바로 "은감축" 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네요!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유기성 목사님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많은 성도들과 크리스천 청년들이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지
그것에 대하여 좌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꿈과 소원에 대하여 아무 반응이 없으시고
자신들이 겪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리 기도해도 침묵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적 갈등은 삶의 목표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나 환경에 쉽게 낙심하는 이유는 사람이나 환경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살았기 때문이고,
성공이나 성취욕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목표를 가난에서 벗어나 부유하게 되고, 낮은 지위에서 벗어나 높은 지위를 얻고,
실패에서 벗어나 성공하는 데 둡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며 또 기도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과 시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삶의 목표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남보다 더 부유하게 되고,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 가난은 싫고, 낮은 자리는 자존심 상하고, 고난은 두렵기만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리 기도해도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목표는 가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아는 것입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가난할 때 우리의 문제는 속히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부유하게 될 때 부유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부유해지면 반드시 타락하게 됩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경우입니다.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도,
우리의 문제는 그 어려움에서 속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련의 때를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낮은 자리에 가라고 하면 갈 수 있겠습니까?
더 가난하게 된다고 해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면 아직 인생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준비도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과 온전히 동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할 때에도 가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가난이나 낮은 자리가 힘들고 고생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난하게 사는 법, 낮은 자리에서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자입니다.
정말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삶의 목표임을 깨닫고 나면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매 순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떤 형편에서도 능력 주시는 주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주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니 가난해도 부유해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더 아는 것, 주 예수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요 목적이 되면
그 어떤 사람이나 환경, 낙심이 되는 형편이나 실패에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는 자는 어떤 형편에서도 날마다 흥분이 되고
기대가 되고 마음이 설레게 됩니다.
주님이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잠에서 깰 때,
우리는 자신이 처한 형편에서 주 예수님과 새 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형편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주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은 어디까지 배우셨습니까?
예수와 하나가 되라, 유기성 / 규장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후서 3장 5절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편 14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장 17,18절
하나님, 삶의 목표를 세상적 가치와 성공에 두고 살았던 저의 어리석음을 회개합니다.
제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기 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형편에서도 능력 주시는 주 예수님 안에서 거하며 주님을 더 알아가며
주님과 온전히 연합하는 것만이 내 삶의 유일한 이유요 목적이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딤전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한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있던 일입니다.
중요한 시합의 결과가 좋지 않아 감독님이 화가 나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었습니다.
˝다들 벌 똑바로 서고 있어! 내가 올 때까지 꼼짝 말고 있어야 된다!˝
그러고는 볼 일을 보러 나갔는데 아이들을 벌세운 것을 잊고 바로 퇴근을 해버렸습니다.
무서운 감독님이었지만 너무 오랜 시간 오지 않자 분명 잊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한 아이만은 끝까지 자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녀가 걱정된 부모님이 감독님께 연락을 했는데
그제야 생각난 감독님이 부실로 들어와 아이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평발이라는 최악의 조건까진 가진 이 아이는 이렇듯 모든 훈련을 성실하게 참여했고
나중에 ´두 개의 심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명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박지성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성실은 미련한 게 아니라 구하는 것을 얻게 도와주는 지혜입니다.
성실은 재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맡은 사람이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주어진 하루에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누가 보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주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게 하소서.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는 사람이 있든 없든 최선을 다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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