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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하나님의 길에 우연은 없다

by 안규수 2017. 9. 24.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이번주는 하노이를 조금 일찍 다녀와서 호치민에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어제 밤에 하노이의 지인으로부터 추석이라고 깜짝 선물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힘들어 할 수도 있는 여건이지만 
늘 밝게 감사하면서~ 나누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그 후배가 바로 제 스승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그녀와 가족을 축복하며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도 토저 목사님의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자기 위로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경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들로 인해 반대에 부딪히거나 핍박을 받는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영성 때문에 우리에게 분개한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성격 때문에 그들이 우리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대적하고, 
육체를 따라서 난 자가 성령으로부터 난 자를 박해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 때문에 스스로 피곤한 상황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지 말고 자신을 고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들을 짜증나게 하는 좋지 않은 기질적 특징을 
성경 구절 뒤에 교묘히 숨기려고 해봤자 문제 해결만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인생의 묘한 사실들 중 하나는 상스러운 죄들이 정신적인 죄들보다 
종종 덜 불쾌감을 주고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세상은 술고래나 대식가나 미소 짓는 허풍쟁이는 참아줄 수 있지만, 
외적으로는 경건의 모습을 보이면서 미묘한 죄들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는 격하게 분노한다. 
정작 본인은 이런 죄들을 죄라고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이런 죄들은 육체의 죄들보다 더 악한 것일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마음속 깊은 곳으로 파고들수록 그 힘이 더 커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인 죄들이 육체적인 죄들보다 더 나쁘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죄와 각각에 상응하는 두 부류의 죄인들에 대해 
주님이 취하신 태도는 이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분은 세리와 창기의 친구이셨지만 바리새인들에게는 적이셨다.

모든 죄는 사악한 것이므로 용서받아 정결하게 되지 않으면 영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 사악함의 정도를 볼 때 정신적인 죄들은 비길 데 없이 악하다. 
문제는 종교인들이 이런 죄들을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조심성 없는 죄인은 자기의 속마음을 쉽게 겉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마음속의 도덕적 긴장을 노출시키지만, 종교적 죄인은 그렇지 않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겉으로 나타내는 사악한 행동들을 비웃으면서 자기의 죄를 
자꾸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몰아넣고 꾹꾹 억누른다. 
그렇기 때문에 ‘악명 높은 비호감’이 많은 종교인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왜 우리를 싫어하는지, 왜 우리의 복음 전도를 그토록 거부하는지를 안다면 
우리 중 어떤 이들은 크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 이유가 우리가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깊은 기질적 악함 때문은 아닐까? 
교만, 사랑 없음, 경멸, 자기의(自己義), 신앙에 대한 속물적 우월의식, 헐뜯기….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경건한 미소와 인위적 농담의 가면 뒤에 용의주도하게 억제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접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느낀다. 
그들은 자기들이 왜 우리를 미워하는지 알지 못한 채 거의 무의식적으로 미워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높은 영성 때문에 미움 받는다고 착각한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자기 위로인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깊이 살피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핍박받는 것이 모두 우리의 잘못 때문이라고 단정하지는 말자.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를 미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복 있는 자이다!

중요한 것은 속단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훌륭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므로 겸손해야 한다. 
언제나 겸손이 최선의 길이다.

하나님의 길에 우연은 없다, A. W. 토저 / 규장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 로마서 15장 1, 2절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빌립보서 2장 3절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절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대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시고 
입에 말을 넣어 주시어 말 실수로 인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세요.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시 90: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 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국내의 한 아웃도어브랜드에서 엠브레인이라는 조사기관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측정하는 조사를 했습니다.
각 세대별로 200명을 선정해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평균을 내는 방식의 조사였습니다. 
조사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마음의 온도는 -14도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의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위: 취업준비생, -17도
2위: 고3 수험생, -16.6도
3위: 직장인, -13.8도
고3 수험생이 대학을 가서 취업준비생이 되어도, 
취업준비생이 직장 인이 되어도 마음의 온도는 여전히 영하의 추운 온도였습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슬펐던 것은 모든 계층이 “앞으로 온도가 더 따스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는 더 풍요로워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궁핍해지고 있습니다. 
내 면의 부족한 사랑을 채워줄 주님을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이 마음의 만족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고 따스하게 해주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주님께 더욱 의지해 마음의 온도를 높이고, 그 따뜻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달하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주님 안에서 보호를 받고 있음을 알게 하소서.
마음의 추위를 느낀다면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 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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