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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호질(虎叱)을 다시 읽으며

by 안규수 2017. 10. 13.

돌이켜보면 지난 8월, 이 지면에 썼던 칼럼이 참으로 부끄럽다. 소설 ‘돈키호테’ 서문에서 제목을 빌린 ‘한가로운 독자에게’라는 졸문이다. ‘고작’ 일부 판`검사의 탐오! ‘조그만’ 팩트가 틀린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이따위 ‘소소한’ 것들이 글감이었다니…. 한가한 데다가 한심하기까지 했음을 고백한다.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어리보기라 지금 시국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도 알 리 없다. 전임 청와대 비서실장 말마따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에 우두망찰할 뿐이다. 이미 2년 전에 이 사태를 족집게처럼 예언했다는 어느 드라마 작가의 안목이 부럽기만 하다.

그런데 참담한 오늘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내다본 글은 200여 년 전에도 있었다. 실학자였던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이다. 귀신들이 산중지왕(山中之王), 호랑이에게 저녁 식사거리로 의원`무당`선비를 추천한다는 대목이다.

등장인물만 봐도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이 넘쳐나는 2016년 대한민국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피지도 못한 꽃송이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절규하던 ‘세월호 7시간’이 비선(秘線) 의사들의 묘약으로 다시 주목받는 세상이다. 사교(邪敎) 교주의 딸이 정부를 쥐락펴락해온 샤머니즘 천지다. 선비인 체하며 ‘진인사 대청명’(盡人事 待靑命)만 외치는 폴리페서`고관대작들의 몰염치 시대다.

소설에서 호랑이는 창귀들의 꾐에 빠지지 않는다. 의원에 대해서는 ‘그럴싸하게 포장해 사람들에게 약으로 시험하는 자들이라 고기가 향기로울 리 없다’고 거부한다. 무당을 두고서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수많은 사람을 죽게 하니 고기에 독이 있을 것’이라며 화를 낸다. 위선자의 전형인 선비에게는 ‘다급해지니 낯 간지럽게 아첨하는 걸 어찌 듣겠느냐’며 가까이 오지도 말라고 꾸짖는다.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한 후세 사람들을 보면서 연암이 무슨 생각을 할지 자못 궁금하다.

어쩌면 호랑이의 질타처럼 인간은 영원히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지 모르겠다. ‘천명을 알기에 흉악한 무당이나 의원의 간사한 행동에 혹하지 않고, 세속의 이해에 이끌려 병들지 않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까 봐 두렵다.

하기야 최악의 막장 드라마보다도 더한 악몽이 연일 이어지는 작금의 세태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국가수반의 해피엔딩을 보지 못한 불쌍한 국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자괴감 타령이나 늘어놓는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겠지만, 몇 년 뒤 또다시 통곡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무한 루프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가 달라지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권력욕에 눈먼 정치인, 곡학아세에 바쁜 교수, 사익 추구에만 골몰하는 관료, 더 타락할 여지가 있을지조차 의문인 기업가를 비난하는 데 그쳐선 곤란하다. 세월호 오보로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취급을 받아온 언론 역시 구린내 진동하는 어둠 속에서 기회만 엿보는 제2, 제3의 최순실을 찾아내는 데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다시 엄혹한 겨울이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던 가로수 이파리는 화려한 마지막 찰나를 마감하고 초라한 낙엽이 되어 길바닥을 뒹군다. 애잔한 그 모습에 마음이 스산하다.

그러나 천명을 다한 낙엽들은 새 생명의 자양분 구실을 할 것이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어야 한다. 국격을 짓뭉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조차 우리 구태를 벗어던지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다. 내년 봄에는 웃음기가 사라진 국민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넘쳤으면 좋겠다.

‘말이안통하네트’ 혹은 마리오네트(marionette`꼭두각시) 혹은 시민혁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길을 걸을지도 모를 사람이여! 이젠 안녕

                                                                               < 매일신문  이상헌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