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어제는 Life Plan을 작성하면서
제 미래를 다시 한번 계획해 보는 유익한 시간을 보낸 듯 합니다.
제가 어제 생각해 본~ 제 인생의 비전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저의 모든 것을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삶을 사는 것" 이구요. (선한청지기의 삶, 영원한 삶)
제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좌우명은
"사람이 일보다 소중하며, 영혼이 물질보다 소중하다" 이구요.
그리고 제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관점" 인 듯 합니다. ^0^ 자주 바뀌긴 하지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은 김동호 목사님의 <페이스북>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존 칼빈이 쓴 《기독교 강요》의 첫 장 제목이 기가 막힙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나 자신을 아는 지식은 동일하다.”
어떻게 젊은 청년의 때에 이 같은 놀라운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는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칼빈의 말처럼, 하나님을 알면 나를 알 수 있습니다. 거꾸로 하나님을 모르면 절대로 나를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박사라 해도,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이라 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나’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참 감동적으로 본 영화 중에 <마이웨이>라는 남아프리카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로, 지금은 잘나가는 건설회사의 사장입니다.
주인공은 아들들을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엄격하게 교육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교육에 염증을 느낀 아들들은 점차 아버지와 멀어지고,
가장 기대를 걸었던 셋째 아들은 사고로 죽고 맙니다.
산산이 부서진 인생 앞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는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로 합니다.
나이가 50대쯤 되어 다시 연습하여 출전을 하려니 마음은 저만큼 뛰어가고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경기 당일, 뛰다가 페이스 조절이 안 되어 쓰러집니다. 그러면 또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서 흙 범벅, 땀범벅이 된 채 끝까지 뜁니다.
인생은 방황할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달려 나갈 때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달리는 주인공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화면 가득 잡혔는데,
그 얼굴에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달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때 유명한 ‘마이 웨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때 저는 손을 딱 마주 잡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게 인생이다! 인생은 경주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방황하는 인생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진짜 아름다운 것은 목표를 붙잡고 끝까지 경주하는 인생입니다.
인생은 방황할 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푯대를 향하여 달려 나갈 때 아름답습니다.
사람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경주를 하려면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니 목표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다 성공합니까? 다 박사 됩니까? 다 부자 됩니까?
그런 것들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별로 상관없습니다.
세상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고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아무리 많은 부와 권력을 쥔다 해도 하나님 없이는 결코 나를 알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하면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돌아오면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그러면 ‘뭐하고 온 건가’ 싶어집니다. 당연합니다.
여행 간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심각한 질문에 뛰어들 때는 가장 먼저 “나를 창조하신 분이 누구인가?”를 기억하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니 나를 찾기 위해서라면 여행을 떠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붙잡아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 알고 느끼는 만큼 나에 대해 알게 됩니다.
칼빈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페이스북, 믿음의 책: 로마서 이야기, 김동호 / 규장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 고린도후서 3장 5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에베소서 2장 10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사도행전 20장 24절
창조자되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제 인생의 목표를 깨닫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도하심에 따라 걷는 인생길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쌍둥이 아이를 임신한 산모가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아이가 건강한지 초음파 검사를 하는 도중에 의사가 깜짝 놀라 말했습니다.
“어쩌면 아이가 오늘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서 준비하세요.”
그렇게 임신 27주차에, 7개월도 되지 않은 채로 쌍둥이가 갑자기 태어났습니다.
언니인 썸머는 그나마 800g정도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동생인 릴리는 300g이 조금 넘게 태어나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의사도 릴리는 어려울 것 같다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부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의사의 말처럼 릴리는 날이 갈수록 점점 연약해졌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를 기적을 바라며 자매를 같은 인큐베이터에 넣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썸머는 릴리를 꼭 안아주었고,
그 순간부터 릴리의 체력이 기적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랑의 행동으로 동생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고,
쌍둥이 자매는 무럭무럭 자라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랑으로 서로 연합할 때 생명이 살아나고 복음이 전파됩니다.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연약한 지체를 사랑으로 품으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나의 행동이 누군가를 살리는 사랑이 되게 하소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서 그에게 뭔가를 베풉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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