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하노이에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하노이는 따스한 봄날씨네요~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이 찬양의 가사처럼
두려움과 한숨의 연속인 우리네 삶이지만~
두려움이 '기도' 가 되고
어제의 한숨이 오늘의 '노래' 가 되는 복된 하루 복된 인생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에는 이찬수 목사님의 <아이덴티티; 예수안에 있는 자> 라는 제목의 글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내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에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성경구절이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나에게는 이 말씀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행할 수 있다니,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어떤 전제가 주어지는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기도할 때 이런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놀랍도록 부요하신데 우리는 영적으로 왜 이렇게 가난한가?
아버지께서 내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 같은 놀라운 하늘 창고의 열쇠를 맡기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빈곤한가?
기도의 열쇠를 소유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은,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놀라운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자주 부르는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가사 첫 줄에서 “딴 근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근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광풍이 안 불고 늘 봄 날씨같이 평온해서 딴 근심이 없는 게 아니다. 두려움이 있고 근심이 있다.
그런데 왜 근심이 없다고 말하나?
십자가 밑에 나아가 그 짐을 풀어버려서 이제는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 밑에서 짐을 푸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인가? 2절 가사를 보자.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나는 우리 인생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두려움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전날의 두려움이 변하여 오늘의 두려움이 되고, 오전의 두려움이 변하여 오후의 두려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두려움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도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노라고 노래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날마다 기도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날마다 두려워하면서 살든지 말이다.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앞에 기도하자.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하자.
기도는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또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이다.
영이 살아나지 않는데 공부 잘하는 것이 무슨 대수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분명 놀라운 기적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기적은 아무것도 없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덤볐다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은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조건이 별로 안 좋아도 골리앗을 향해 도전했던 다윗처럼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가 도전하는 자녀로 키우고 싶지 않은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런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중보기도로 승화시켰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이웃을 향한 사랑을,
성도를 향한 사랑을, 자녀를 향한 사랑을 주님 앞에 드리는 기도에 담아 올려드리자.
아이덴티티: 예수 안에 있는 자! 이찬수 / 규장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장 2,3절
놀랍도록 부요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늘 창고의 열쇠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에 두려움의 고리가 끊어지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하신 것 같은 일과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놀라운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신 11: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 외곽의 작은 항구도시 깔레가 영국군에게 포위된 적이 있습니다.
에드워드 3세가 항복을 하면 모두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깔레가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군대를 조직해 끝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다 식량이 바닥나서 결국 항복했는데 뜻밖의 저항에 고생을 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마을을 위해 죽을 사람 6명이 나와라. 한 명이라도 모자라면 전부 다 죽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머뭇거리고 있는데 깔레에서 가장 돈이 많은 생피에르가 담담히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 고위 관료와 상인, 법률가 등 고위 관료와 귀족들이 나와 6명을 채웠습니다.
다행히 임신을 한 영국 왕비의 만류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고 이 6명의 특권층은 깔레의 영웅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지금까지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여러 나라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명예’에는 ‘책임’이 있다는 뜻이 ‘노블리스 오블리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명예를 누리는 성도들은 마땅히 하나님이 명령하신 책임 또한 다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책임을 다하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그리스도의 자녀로써의 명예를 누리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주신 좋은 것들을 이웃과 나누며 살게 하소서.
알고 있는 어려운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도웁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아들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2) (0) | 2019.03.29 |
---|---|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 (0) | 2019.03.28 |
믿음, 소만, 사랑 (0) | 2019.03.21 |
하나님의 슈퍼 영웅으로 살라 (0) | 2019.03.20 |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라 (0) | 201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