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주말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저는 아는 지인이 한국에서 오셔서
주말 내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었습니다.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니 감사하네요. ^0^
어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0^
하나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내가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영원한 그 나라에
갈 도리가 없기에~
영원한 나라가 내 안에 임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 주셨고
성령님께서 그 길을 따라 내 안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임한 것입니다.
나는 이제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은혜입니다. ^0^
오늘도 유한한 땅에서 '영원' 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에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글의 큰 흐름은 성경적 가르침을 닮은 듯 하여 조심스럽지만 나눠보는 아침입니다.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3년 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境內地)가 종단의 몇몇 사무승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이서 은밀히 강행한 처사며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다.
함께 살던 주지 스님도 다른 절을 맡아서 가고
그 그늘에서 붙어 살던 나는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다른 도량으로 옮겨
차라리 눈으로 보지나 말자고 내심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술술 풀리었다.
그렇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언젠가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그 전까지의 관념이 아주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주지 노릇을 하지 않고 붙어 살 바에야
어디로 옮겨 가나 마찬가지 아니냐
중생들끼리 얽혀 사는 사바세계라면
거기가 거기지 그렇다면 내 마음 먹기 탓이다.
차라리 비리의 현장에서 나를 키우리라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옛사람의 말도 있지 않더냐.
이 때부터 팔려 나간 땅에 대해서도 애착이 가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 사찰 소유의 땅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도들이 희사를 했거나
아니면 그때까지 주인이 없던 땅을 절에서 차지한 것일게다.
그러다가 그 인연이 다해 내놓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경내지가 팔렸다고 해서 그 땅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니고
다만 소유주가 바뀔 뿐이다.
이날부터 마음이 평온해지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었다.
그토록 시끄럽던 불도저며 바위를 뚫는 컴프레서 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들렸다.
그것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을 향해서는 곧잘 베풀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나 자신은 무엇을 얼마나 베풀어 왔느냐
지금 저 소리는 너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 주기 위해 터를 닦는소리다.
이 소리도 못 듣겠다는 게냐.
그리고 그 일터에는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밤잠도 못 자며 땀 흘려 일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몇 사람씩 딸린 부양가족이 있을 것이다.
그들 가족 중에는 지금 입원 환자도 있을 거고
등록금을 내야 할 학생도 있을 것이다.
연탄도 들여야 하고 눈이 내리기 전에 김장도 해야 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보내 주지는 못할망정 살기 위해 일하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게냐.
이처럼 생각이 돌이켜지자 그토록 시끄럽고 골이 아프던 소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렸다.
이때를 고비로 나는 종래까지의 사고와 가치 의식이 아주 달라졌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많은 이웃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
소유 관념이나 손해에 대한 개념도 자연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내 것이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손해란 있을 수 없다.
또 내 손해가 이 세상 어느 누구엔가 이익을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잃은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다.
절에도 가끔 도둑이 든다.
절이라고 이 지상의 풍속권에서 예외는 아니다.
주기적으로 기웃거리는 단골도둑이 있어
허술한 문단속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날마다 소용되는 물건을 몽땅 잃었을 때
괘씸하고 서운한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그러자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한동안 맡아 가지고 있던걸 돌려보낸 거라고
자칫했더라면 물건 잃고 마음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 공수거 空手來 空手去의 교훈이 내 마음을
지켜 주었던 것이다.
대중 가요의 가사를 빌릴 것도 없이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없지 않다.
정말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다.
그러한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화나는 그 불꽃 속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와의 접촉에도 신경을 써야겠지만
그보다도 생각을 돌이키는 일상적인 훈련이 앞서야 한다.
그래서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라고 옛사람들은 말한 것이다.
-법정스님 무소유 중-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신 11: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저명한 가정상담가이자 목사님인 리처드 마이어에게 잭이라는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잭은 자신이 자녀의 신앙을 위해 노력을 하는 데도 달라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자녀들을 주일 뿐 아니라 수요일에도 교회에 보냅니다.
저녁에는 성경을 한 시간 동안 읽게 시킵니다. TV가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기에 볼 수 없게 하고요.
저는 이런 일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철저히 막지만 왜 아이가 엇나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리처드 목사님은 잭에게 그렇다면 스스로의 모습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잭은 한참을 우물쭈물 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회에는 잘 나가지 않습니다. 일이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가서 앉아있기만 해도 힘들거든요.
성경도 따분해서 읽기가 힘들어요.
자녀들이 성경을 읽을 때 저는 거실에서 TV를 보곤 하지만 저는 못해도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리차드 목사님의 잭의 자녀가 좋은 약을 들고 있기는 하지만
잭을 통해 독약을 먹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르침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본입니다.
말씀으로 살아감으로 사랑하는 자녀와 주변 사람들에게 말씀의 본을 보이십시오. 아멘!!
주님,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말씀의 본을 보이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일에 들은 설교말씀을 한 주간 적용하고자 노력합시다. <김장환,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