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저는 오늘 오전 호치민에서 업무를 마치고 하노이로 올라가 업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호치민의 건조함과 하노이의 다습함이 무척 대조적이라...
다른 하노이의 맛이 기다려지네요. ^0^
함께 일하던 어떤 후배가 제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팀장님은 늘 지는 게임을 하실 수 밖에 없어요. 모든 패를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이 말을 오래 오래 되씹으며...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비지니스를 하면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0^
오늘은 방선기 목사님의 <세상 속에서 십자가를 지라!> 라는 칼럼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흉내를 낼 수 있지만
세상 한복판에 있는 직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서도 주님을 따를 수 있을까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를 부인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화가 날 때도, 이해관계로 인해 예민해질 때에도 주님의 제자인 우리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또한 제자의 삶은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십자가의 상징은 어느 시대에나 고통과 죽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처형당하기 위해 골고다로 가는 동안에 십자가를 지고 어떤 고통을 당하셨는지
그 고통을 맛보기 위해 실제로 나무 십자가를 지고, 또 십자가에 못이 박혀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문의 해외 토픽 난에서 간혹 볼 수 있습니다. 그
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물리적 고난이 아닙니다.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는 이런 상황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귀찮다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있고,
비리인줄 알면서도 다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을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이 다 받는 것을 거절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고통이 따른다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통이 크다면 십자가가 좀 더 무거운 것일 수 있습니다.
고난주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새벽기도와 금식과 같은 일을 귀하게 감당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터에서 이렇게 직업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거룩한 고통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일터에서 주님과 고통을 나누는 십자가를 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일터에서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불편이나 괴로움이 있어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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