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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십자가를 통해서 그를 보고, 나를 보라!

by 안규수 2020. 10. 30.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참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하늘,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누가 내 자식이나 손녀들, 손자들을 싫어하면 그 사람이 싫다.

반대로 우리 아이들을 귀히 여기고 칭찬해주고 예뻐해주면 나도 그 사람이 좋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고,

내가 옳다고 함부로 정죄하고 미워하면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때 내게 주신 말씀 중의 하나가 ‘넌 좀 낫냐?’라는 것이었다.

 

내 기준으로 보면 내가 좀 나아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선의 잣대에 대보니 나나 그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십자가를 통해서 그를 보니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이요,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보니 나는 그에 못지않은 죄인이었다.

내게 참 큰 깨달음이 되었다.

 

그다음에도 힘든 사람은 또 있었는데 잘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에이,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좀 낫냐?’라며 넘어갈 수 있어서,

그때부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나눔 본문중에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김동호 목사님의 <날기새> 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가족, 친구, 지인… 가끔은 사랑하는 아이일지라도 미워질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사람이 미워지고 싫은 감정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안보면 그만!! 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미움의 마음 정죄감이 들게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 이 마음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십자가를 통해보면 나 또한 의인이 아니요 죄인이기에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더 큰 은혜가 그 마음을 회복케 해줍니다.

살다 보면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때가 있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그것을 가리기 위해서 때로 피 터지게 논쟁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다.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이나 사상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아무리 논쟁을 하더라도, 혹 나는 옳고 그는 그르다 해도 사람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아도 그도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다.

그런데 우리는 옳고 그름을 가리다가 불리해지면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리고 정죄한다.

함부로 편을 가르고 색을 입힌다.

이기고 싶어서.

그것은 기독교의 정신이 아니다.

 

옳고 그름은 가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사람은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지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함부로 매장하려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나도 참 힘든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내가 힘들게 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했다.

‘저런 인간도 하나님이 사랑하실까?’ 예상되는 대답은 ‘얘, 나도 아니야’였다.

‘어떻게 저런 인간을 사랑하겠니.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니?

나도 네 생각과 같아. 네 편이야’라고 하나님이 내 편을 들어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금방 답이 나왔다.

‘그럼, 사랑하지. 그래서 내가 십자가를 진 것 아니냐.

그 죄가 커서 내 핏값을 주고 사한 것이 아니냐.’

깜짝 놀랐다.

‘생각이 좀 달라도,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살아도 하나님이 함부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시는구나.’

십자가를 통해서 그를 보니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었다.

그날 굉장히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미워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겠구나.

하나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시겠구나.’

 

나는 누가 내 자식이나 손녀들, 손자들을 싫어하면 그 사람이 싫다.

반대로 우리 아이들을 귀히 여기고 칭찬해주고 예뻐해주면 나도 그 사람이 좋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시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고,

내가 옳다고 함부로 정죄하고 미워하면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때 내게 주신 말씀 중의 하나가 ‘넌 좀 낫냐?’라는 것이었다.

 

내 기준으로 보면 내가 좀 나아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선의 잣대에 대보니 나나 그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십자가를 통해서 그를 보니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이요,

그 십자가를 통해서 나를 보니 나는 그에 못지않은 죄인이었다.

내게 참 큰 깨달음이 되었다.

 

그다음에도 힘든 사람은 또 있었는데 잘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에이, 사람이 다 그렇지 뭐. 나는 좀 낫냐?’라며 넘어갈 수 있어서,

그때부터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살기는 참 쉽다.

적 만들기도 쉽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는 외로워서 못 산다.

힘들어서 못 산다. 불안해서 못 산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도 귀히 여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날기새> 김동호p252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감염으로 손가락을 잃게 된 피아니스트가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한창 젊은 시기에 꿈을 잃게 된 피아니스트를 딱하게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손가락을 잃어서 연주를 하지 못해도 작곡은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곡가 슈만은 피아니스트 슈만일 때보다 더 큰 명성을 얻었으며

쇼팽과 리스트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2명을 발굴해내기까지 했습니다.

전설의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가 활동하던 당시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와 달리 손가락이 기괴할 정도로 유연하게 움직였기에

뛰어난 실력을 위해 파가니니가 악마와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대의학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오히려 ‘마르판 증후군(Marfan Syndrome)’이라는 유전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손가락은 유연해 지지만 근력이 떨어지고 염증이 쉽게 생기는 이 병을 앓으면서도

파가니니는 엄청난 노력으로 다른 사람은 따라 할 수도 없을 정도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됐습니다.

역경은 성과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극복할 어려움만 허락하심을 믿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주실 주님을 믿으며 정진하십시오. 아멘!!

 

주님!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역경이 찾아올수록 더 기도하며 더 노력합시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