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저는 하노이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데요,
어제 낮에 35도이상의 고온 다습한 하노이의 전형적인 날씨를 볼수 있어 좋았습니다.
최근 기침 때문에 고생하는 데요, 다습한 하노이 기후가 기침을 멈추게 하는 듯 해서요. ^0^
지난 4월 16일 이후...
제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슬픔,
분노,
무력감이
쉬 떠나질 않네요.
마음이 무거우니 몸도 무거워지고
내내 컨디션이 좋질 않아...
감기 몸살에 복통 설사까지...
비단 저만일까요?
구할 능력도 없던
아니 구할 의지도 없었던
우리들을
이 사회를
이 정부를
믿고
두려움에도
격려하며
선내에 남아 있던
아이들의 모습...
그들의 목소리...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우리가
그들을...
거의 매일 같이
떠오르는 아이들의 모습.
그들의 목소리에...
자주 눈시울이 붉어지는 제 모습을 봅니다.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깊은 무력감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은 고민에 깊은 기도에 잠기는 시간도 많은 듯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부터
거룩을 회복하는 것,
세상 맘몬의 가치들에 맞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
내가 시작해야 할 첫 걸음이겠지요.
오늘은 박범신 교수의 경향신문에 기고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라는 칼럼을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갑니다.
아직도 스무명이 넘는 우리의 아들딸과 이웃들이 수심 40미터 캄캄한 바다 밑에 있다.
“달나라에도 가는 세상인데…” 하면서, 아내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내게 냅다 투가리 깨지는 소리를 한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가장인데도 나는 유구무언이다.
어린 두 딸의 엄마가 된 딸애가 아이들을 안고 눈시울을 붉히면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지켜가야 돼요!” 하고 역시 내게 볼통하게 묻는다.
아이들을 지켜야 할 아비인데도 나는 역시 유구무언이다.
‘아비’가 주역인 역사를 살아온 터, 부끄럽고 미안하지만 그 말조차 할 염치가 없다.
‘가장’이자 ‘아비’인 사람들이 가족들을 지킬 수 없다면 무엇으로 역사는 지키고 무엇으로 나라는 지키겠는가.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세월호 속엔 지금 세상의 모든 아비, 모든 어미가 들어가 있다.
모든 형과 삼촌과 이모, 고모와 누나들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지상의 세계는 지금 텅 비어 있다고 나는 느낀다.
선원들의 사이코패스적 이기심, 단 한 명의 생명조차 꺼내오지 못한 해경의 무능, 관료들의 갈팡질팡,
‘과거의 적폐’라고 말하는 최고통치자의 현실인식,
오로지 돈만 좇는 사업주와 그를 둘러싼 비리·부패의 카르텔을 이룬 이권그룹의 ‘빨대’들만
지상에 남아 책임을 모면하려고 이리저리 뛰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지상에 악착같이 붙어 있는 것은 여전히 돈을 절대군주로 모시는 기득권의 단단한 네트워크뿐이라는 느낌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중략)
슬픔은 오랜 세월에 걸쳐 몸속 가시가 되고 분노는 짧은 시간 안에 병이 된다.
당신이 그렇듯, 나 또한 그래서 요즘 계속 몸이 아프다.
눈물로 지울 수 있는 슬픔도 있고 눈물로 지울 수 없는 슬픔도 있다.
눈물로도 지울 수 없는 세월호의 슬픔은 아직 ‘가시’가 되지 않았는데 분노는 병이 된 지 벌써 한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이 분노가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에 갇힌 생명의 마지막 귀가까지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갖가지 대책이 열거될 때까지가 아니라,
세월호를 둘러싼 책임소재가 가려지고 그들이 엄벌에 처해질 때까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나라에 의해 안전을 보장받고 그것을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포만에 따른 범죄적인 만족의 우상을 깨부수고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에 대한 속 깊은 비전을 회복할 때까지다.
혹시 세월호 선장처럼 도망친 적 없는가.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에 앞서 아비이자 가장으로서 나는 내게 묻는다.
아니 대통령의 마음으로, 관료의 마음으로, 선장의 마음으로 가슴을 치며 묻고 싶다.
슬픔과 분노를 시간에 의탁해 지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몸속 ‘가시’로 만들어 오래 간직해야 할 자문이다.
팽목항-안산-KBS-청와대로 이어지는 희생자 가족들의 행렬을 보면서
터무니없게도 나는 ‘나라 없는 백성’의 슬픔을 느낀다.
어떤 이는 정말 ‘나라가 없다’라고까지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보라, 여전히 공동체로서의 ‘우리들’이 있다.
슬픔과 분노를 공유하려는 긴 조문 행렬,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제 명줄을 걸고 기꺼이 바다로 뛰어드는 잠수사들이 있으며,
바닷속 수심 40미터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저들과 함께 갇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감동이고 희망이고 힘이다.
월드컵 때 환호와 진취의 기상으로 우리 모두가 일체감의 감동을 보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번엔 슬픔과 분노로 우리가 공동체로서의 강력한 연대감을 다 폐기처분하지 않았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왕과 신하들이 다 도망친 다음에도 의병대 등으로 합류해 누대에 걸쳐 나라를 지켜온 우리들이다.
슬픔과 분노와 무력증에 시달리면서도 시시때때 거리로 나가
아무나 붙잡고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고 싶은 이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달나라에도 가는 세상인데 왜 바닷속 그들을 다 건지지 못하냐고 타박하는 아내에게,
엄마로서 앞으로 어떻게 내 아이들을 지켜가야 하느냐고 묻는 젊은 엄마인 딸에게 이윽고 내가 한 대답은 이것이다.
“사랑한다!” 잘못된 구조에 관용을 베풀자는 게 아니다.
살아남은 자의 모든 슬픔 모든 안타까움 모든 분노를 모아서,
그 옹골찬 진심, 단합된 힘으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그렇다.
“사랑합니다!”
잘못된 세상을 변혁시키고 새 세상을 여는 힘은 돈이나 권력이나 나만의 성공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다는 걸 여전히 믿고 싶고, 또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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