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게 ‘거리(距離)’가 필요함을 확실히 안 것은, 밀림이 되어가는 과수원을 보면서였다. 밀감나무가 어릴 때는 방풍수(防風樹)도 바람막이로 큰 역할을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햇빛을 차단하는 피해수가 되었다. 그 방풍림 정리만 해도 귤나무는 좋아했다. 또 얼마 지나니 과수원은 원시림을 방불케 했다. 품종이 좋지 않은 것부터 솎아내기 시작했다. 몇 해 안 가 그 자리가 또 메워지면서 옆 나무끼리 얽키고설켰다. 맞닿은 부분은 서로 열매 맺기에 경쟁을 벌렸지만 수확할 때 보니 병과(病果)가 되어 파지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가지까지 고사(枯死)하기도 했다. 간벌을 해서 뚝뚝 떨어뜨려 놓는 방법 밖에 없었다. 햇볕과 통풍을 위해 나무를 솎아내거나 수관을 축소했다. 수확량의 감소를 우려했지만 맛도 나아지고 비(非)상품과도 줄고 가격도 잘 받았다. 결국 나무도 존재의 거리를 유지해야 스트레스가 없어진다는 것을 본 셈이다. 사실 그가 직장에 나갈 때는 싸울 일이 없었다. 은퇴 후 한참 지나서야 우리도 나무처럼 별도의 존재 공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우선 방(房) 만이라도 따로 쓰기로 했다. 아, 이렇게 편할 수가! 그가 자기 방에서 늦도록 티브이를 보아도 간섭하는 사람 없고, 나는 내 방에서 나대로 혼자 굿을 해도 얼굴을 붉힐 일이 없어졌다. 노트북을 켜고 이것저것 뒤져보기도 하고, 체조하며 훌라후프를 돌리고, 친구와 전화도 마음 놓고 건다. 책이나 신문을 읽고 스크랩 정리를 하기도 한다. 밤의 내 라이프스타일이 변했다. 내친김에 과수원도 반으로 갈라 따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라디오를 들으며 일을 하고, 나는 내 취향대로 산새소리를 들으며 김을 맨다. 써니가 바쁘게 우리 사이를 오가며 말을 시킨다. 남편과 스물네 시간을 같이할 때는 잠시만 부대껴도 발화(發火)가 쉬웠다. 예전에 그가 일 년간 회사 일로 미국에 가 있은 일이 있었다. 참 묘하게도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부터 그리움이 치솟기 시작했다. 나는 삼 일 간격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도 매일 그림엽서를 보내는 등 오히려 그 때 일심동체(?)로 살았던 것을 보면 사랑이란 떨어질수록 자력이 강함을 실감했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그와 나의 사랑의 거리는 그만큼의 폭이 필요했다는 증거이다. 마음이 지척이면 천 리도 한 마당 안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 안정혜 선생님의 <간격> 중에서 
서로 적당한 간격을 두겠다는 것은 관심을 두어 다시 생각하겠다는 마음이겠지요. 그것은 무관심의 거리로 밀쳐내지 않겠다는 당김의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딱 그만큼의 간격이 아닌 탄성이 존재하는 거리. 우린 간격을 얼마나 잘 두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뿐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이의 거리는 어떠한가요. 어느 순간 과욕때문에 거리감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래서 발화 아니면 무관심의 거리에 놓인 채 상처 입고 힘들어 하는 것은 아닌지요. 아름다울 수 있는 거리, 기다림의 거리, 바람봄의 거리.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한 거리,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한 거리. 멀어지지 않기 위한 거리. 우정의 거리, 사랑의 거리, 미움의 거리… 선생님과 나 사이는 어느 만큼의 거리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