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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이제 넘어진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by 안규수 2023. 3. 15.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외람되지만 고야의 그림 '개'를 떠올립니다. 
흐르는 모래에 갇힌 개 한 마리,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하지만 몸부림칠수록 모래는 더욱 확고하게 그 몸을 붙듭니다. 
화면에는 아득함과 막막함 그리고 적막함이 가득합니다. 
개는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저 어두워가는 하늘만 바라봅니다. 
어디에서도 도움은 오지 않습니다. 
 
아,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요? 
하지만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삶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제아무리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엄중함입니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없을 것이고, 죽음이 없다면 부활도 없을 것입니다. 
삶이 힘겨울수록, 죽음이 기승을 부릴수록 생명의 장엄함을 더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부활절은 3월 말에서 4월 중순에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사순절이라는 어둡고 긴 금욕과 절제의 시기를 견뎌낸 이들에게 주어지는 빛의 절기입니다. 
부활절은 아이들에게는 채색된 달걀로, 어른들에게는 빈 무덤과 백합화, 찬양대의 칸타타로 기억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더러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알리바이로 호출되곤 합니다. 
누구도 자기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미지의 죽음에 대해 본능적 공포를 느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는 매혹적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부활 신앙이 무너지면 기독교도 무너진다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은 육체적 생명이 끝난 후에도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부활 신앙은 미래에 지속될 삶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 삶과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생명은 세상의 악에 의해 결코 소멸될 수 없다는 근원적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시간의 공포를 견딜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은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패배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패배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생명이 소멸하는 장소처럼 보였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입구였습니다. 
부활이란 작은 개체로서의 생명을 넘어,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품에 안김입니다. 
부활은 죽기 싫어하는 인간의 욕망 혹은 두려움이 하늘에 투사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실답게 살려는 인간의 용기 있는 선택에 대한 하늘의 승인인 동시에 격려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활 신앙을 이 땅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체화하는 일입니다. 
봄비가 굳었던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따스한 햇볕이 땅속의 미물들을 깨우듯이 부활의 꿈을 품고 사는 이들은 절망의 대지에 희망을 파종하고, 
죽음의 땅에 생명의 씨앗을 파종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에 등장하는 농부가 그러하듯, 
우리가 선 자리가 비록 눈물의 땅이라고 해도 싹싹하게 그리고 굳건하게 
대지 위를 걸으며 씨앗을 뿌리는 것이야말로 생명에 속한 이들의 사명이 아닐까요? 
뿌린 씨가 당장 싹트지 않는다고 낙심할 것 없습니다. 
그 위에 움씨를 덧뿌리면 됩니다. 
고단하지만 그것은 허무한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심는 씨앗이 죽은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 기어코 싹을 틔울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 우리를 당신의 몸으로 삼고 싶어 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복입니다.

생명은 기어코 죽음을 넘어섭니다. 
아프고 서러울지라도 말입니다. 
이제 넘어진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봄, 봄이 아닌지요!

- 김기석목사의 '죽음 넘어 부활을 살다' 서문중에서 -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엡 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미국에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화가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20달러 지폐를 공들여 그렸습니다. 
그가 그린 20달러 지폐는 전문가들도 차이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매우 정교했습니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손에 물이 묻은 채로 돈을 받다 번지는 잉크를 확인한 상점 주인의 신고로 붙잡혔습니다.
위조지폐는 매우 중범죄였으므로 화가는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뒤 그가 그려두었던 그림 3장이 경매에 올라갔는데 무려 1만 5천 달러라는 높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이 화가는 20달러를 그리느라 매우 오랜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만약 이 화가가 20달러를 그릴 시간에 그림을 계속 그렸다면 경매에서 더 큰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이 화가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재능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푼돈을 위조하다 인생을 망쳤습니다.

이 이야기는 1887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한 무명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남들보다 나은 재능을 가진 것은 세상과 복음을 위해 사용하라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낭비하거나 잘못 사용하지 말고 주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하는 정직한 청지기가 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이 주신 놀라운 재능과 은사를 주님을 위해 올바로 사용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신 달란트를 주님을 위해 올바로 사용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