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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내 실수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어지지는 않을까?

by 안규수 2023. 6. 28.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지요?
오늘도 새 날, 새 호흡, 새 힘, 새 노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오늘 하루 저를 통해 누구를 사랑해 주길  원하십니까?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멋진 하루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축복합니다. ^0^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은 딱 우리 가족을 두고 하는 말 같다. 
늘 행복한 웃음만 넘치면 좋으련만 사는 게 어디 그런가. 
아이 넷이 돌아가며 문제를 일으키는 날이면 내 인내심의 바닥을 경험한다.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으로는 잘못을 감지하면서도 감정의 벽에 부딪혀 시인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좋으련만 
나 또한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에 속아 화를 내고 만다. 
결과는 뿌연 연기처럼 무거운 분위기가 집 안을 가득 메울 뿐이다.

갈등 없는 가정은 없다. 
아이들과 부모 사이에 하루가 멀다고 갈등이 생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관계의 담은 점점 높아지고 서로를 바라볼 수 없다. 
갈등은 감정의 문제이기에 옳고 그름을 따져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이성적인 아이라도 부모에게 마음이 상하면 이성보다는 상한 감정의 지배를 받는다. 
이는 아이가 잘못을 인지하고도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한 감정을 풀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불안한 상태로 잠자리에 드는 게 정서에 해롭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내가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간다.

마음 에너지가 방전된 상태로 날을 넘기기 시작하면 
관계 충전이 훨씬 오래 걸린다는 걸 잘 알기에 먼저 아이에게 찾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이 아닌 감정을 만져주는 방법으로 실타래처럼 엉킨 관계를 해결하기 시작한다. 
갈등의 주체가 아이였다면 갈등 해결의 주체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에 대해 본회퍼는 《신도의 공동생활: 성서 기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날에 생긴 모든 상처는 그날 저녁까지는 치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결정적인 규칙이다. 
맺힌 마음을 풀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위험에 빠뜨린다. 
따라서 형제의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저녁 기도회에 포함하는 것은 새로운 공동체 건설과 화해를 위해 바람직하다.
《신도의 공동생활: 성서기도서》 78쪽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맺힌 마음을 풀기 위한 용서와 화해는 가정을 다스리시는 십자가의 은혜로 경험한다. 
우리에게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경험한 아빠가 먼저 아이에게 손 내미는 게 당연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찾아가 말을 건넸다.
“아까 마음이 상했지?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저도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뜨거운 포옹을 하고 내가 기도함으로 갈등을 마무리한다. 
먼저 다가가 안아주고 내 연약한 모습을 고백하자, 
꽁꽁 얼어붙었던 아이의 감정이 어느새 녹아 잘못을 시인한다. 
그때마다 내가 꼭 건네는 말이 있다.

“그래도 아빠 아들(딸)!”


아이와 어려운 일을 겪고 화해할 때마다 같은 말을 해주는 이유는, 
갈등이 관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를 화나게 해도 자식이고, 기쁨을 줄 때도 사랑스러운 존재다. 
이처럼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이기에 갈등으로 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내 실수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어지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과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너는 내 자녀가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는 매정한 분이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의 실수나 연약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준이 되지 않길 바랐다.

실수와 연약함을 통해 오히려 서로의 관계가 견고해지는 사랑의 관계임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래도 아빠 자녀야”라고 말해준다. 
이 말은 “그래도 하나님 자녀야”와 같다. 하나님의 자녀는 실수하고 넘어져도 
그분의 사랑에서 끊길 수 없음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문제는 갈등의 발단이 아이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었을 때다. 
내가 명백하게 잘못했을 때는 잘못을 저질렀던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다. 
부끄럽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괴로운 상태로 하루를 넘기기도 한다.

그런 상황과 마주하면 하나님은 찬양과 말씀과 설교를 통해 
내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할 것에 대해 순종을 요구하신다. 
결국 괴로운 마음에 못 이겨 아이에게 찾아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용서를 구한다.

자존심의 벽을 깨고 자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 매번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면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는 아빠를 받아준다.

자존심을 지키기보다 아이와의 평안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용서 받는 아빠를 선택할 때, 
아이들의 존경도 함께 따라온다. 
나는 내 실수와 연약함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같은 말씀으로 함께해주실 줄 믿는다.

‘형동아, 그래도 아빠 아들이란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갈 4:6

– 말씀 심는 아빠, 이형동 - 

† 말씀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 시편 103장 10-11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골로새서 3장 12~13절

† 기도
저의 실수와 연약함으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정말 많지만 회개하며 나아갈 때 
긍휼히 여겨 주시고 안아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늘 사랑으로 함께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윌리엄 슈미츠(William B. Schmidt)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엘파소라는 산의 터널을 혼자 삽으로 파낸 광부입니다. 
길이 제대로 닦여있지 않은 1920년대라 많은 광부들이 광물을 캔 뒤에 험준한 산을 넘어 옮겨야 했습니다.
윌리엄은 광부들이 더 쉽게 광물을 옮기도록 혼자서 터널을 팠습니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불가능해 보였지만 윌리엄은 혼자서 매일 삽을 들었습니다. 
폭 3m, 길이 800m의 터널을 파는 데에만 무려 38년이 걸렸습니다.
윌리엄이 터널을 뚫는 동안 기술이 발전해 도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터널을 팔 이유가 없었지만 동료들의 만류에도 윌리엄은 매일 터널을 팠습니다.
터널이 완공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윌리엄이 터널을 판 이유가 세상에 밝혀졌습니다. 
윌리엄이 판 터널 곳곳에는 엄청난 금맥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윌리엄은 38년간 터널을 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금을 캐고 있었고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누구의 도움도 구하지 않고 혼자서 미련한 척 평생을 연기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에 때로는 평생을 바칩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보석인 복음을 받은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부자이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주신 보화를 잃지 않도록 전심으로 주님을 예배하며 찾으십시오.
 아멘!

주님, 우주의 으뜸이 되시는 존귀하신 주님이 우리의 보화임을 알게 하소서.
말씀이라는 보화를 매일 캐내고 삶에 적용합시다. <김장환, 나침반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