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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by 안규수 2023. 7. 12.

   박길숙 씨는 임신 기간에 유방암을 발견했지만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수술과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았다. 둘째 아이를 배고 26주 정도 된 때였다. 2017년 1월 초 가슴에서 티끌만 한 알갱이가 만져졌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박길숙 씨(42)는 첫째 아이를 낳고 젖몸살을 심하게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혹시 그 영향 때문에 생긴 증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알갱이는 빠른 속도로 커졌다. 3주 만에 방울토마토만 한 혹이 가슴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한 젖몸살 후유증은 아닌 것 같았다. 동네 산부인과를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의사가 “놀라지 마시고 큰 병원에 빨리 가 보시라”고 권했다. 암인 것 같다고 했다. 갑자기 앞이 컴컴해졌다. 임신부 박 씨의 유방암 투병은 그렇게 시작됐다.

  임신 29주 차 때 박 씨는 서울대병원 유방센터를 찾았다. 검사 결과 오른쪽 유방에서 2∼3㎝ 크기의 암이 발견됐다. 림프절로 전이됐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사 과정에서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한별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이가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박 씨는 ‘림프절 전이가 없는 2기 유방암’ 진단받았다.

  유방암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여러 유형이 있다. 박 씨의 경우 두 종류의 호르몬수용체와 HER2(사람상피세포증식인자수용체 2형)가 모두 음성이었다. 이런 암을 삼중음성유방암이라고 한다. 암세포가 빨리 자라며 독한 것이 특징이다. 항암 치료를 먼저 시행해 암세포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하는 게 표준 치료법이다.

  문제는 배 속 태아에게 미칠 영향이었다. 다행히 임신 29주라 항암 치료가 가능했다. 보통 임신 13주까지를 임신 1분기로 본다. 이 기간은 태아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라 항암 치료가 어렵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항암 치료를 할 것이냐? 아이를 살릴 것이냐를 놓고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임신 14주 이후에는 항암 약물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어진다. 태아를 살리면서도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 씨는 곧바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3주 걸려 한 번씩, 두 차례 병원을 찾아 반나절 동안 항암 주사를 맞았다. 그 사이에 만삭이 됐다. 3월 박 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둘째 아이를 출산했다. 걱정과 달리 아기는 건강했다. 몸무게도 정상이었다.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암과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산후조리를 어느 정도 마친 후 다시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추가로 다섯 번의 항암 치료를 이겨냈다. 치료 효과는 무척 좋았다. 3㎝ 크기의 암 덩어리가 1㎝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 후 한 번 더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이 교수는 “그때 이미 완치를 확신했다. 수술에 들어가기도 전에 암세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암세포가 없는 상태를 ‘완전관해’라고 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때 이미 박 씨는 완전관해 상태였다는 것이다.

  8월 유방 부분 절제 수술을 시행했다. 유방 위쪽 2.5㎝를 절개한 뒤 암이 있던 부위를 드러냈다. 특히 미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수술이다. 이 교수는 유두 선을 따라 절개해 흉터가 잘 보이지 않도록 했다. 암의 전이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림프절 조직 일부도 떼어냈다.

  병리과 조직검사 결과 예상했던 대로 암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전이도 없었다. 완전관해가 확인된 것이다. 이어 방사선 치료를 19회 진행했다. 유방암은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받는 게 표준 치료법에 속한다. 이 교수는 “진공청소기로 완전히 쓸어낸 후 스팀청소기로 다시 확인하는 절차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후 완치 판정만 기다리면 됐다. 그러다 2022년 8월 유방 초음파 검사에서 다시 혹이 발견됐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직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양성 혹이었다. 박 씨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 교수는 “삼중음성유방암의 경우 5년 후 완치되면 거의 재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요즘에는 추적 관찰만 하고 있다. 암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 씨는 첫째로 가족을 꼽았다.

  동네 산부인과에서 암 의심 판정을 받았던 날 박 씨는 첫째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다 넘어지기까지 했다. 박 씨는 “그때 완전히 넋이 나갔다”라고 회상했다. 이후로도 한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욕도 뚝 떨어졌다. 자기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배 속의 아기에게 미안했고, 아기가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박 씨는 이 교수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항암 치료에 들어가기 전 그 짧은 기간에 체중이 5㎏이나 빠졌다. 이 교수는 “실제로 암 환자들의 두려움이 가장 큰 시기가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아기를 위해서, 남편과 큰아이,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 다시 힘든 항암 치료를 할 때도 버텼다. 입맛이 없어도 한 끼를 굶지 않고 다 먹었다. 덕분에 체력도 다시 좋아졌다.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갈 때도 “이겨낼 수 있다”라고 스스로 말했다.

  둘째, 박 씨는 이 교수와 소통했다. 박 씨는 “의료진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었다. 이 교수의 치료 지침을 믿고 그대로 따르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 또한 “박 씨가 믿고 따라줬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박 씨의 적극적인 투병 자세도 치료에 큰 도움이 됐다. 이 교수는 “밝은 성격의 환자일수록 치료 효과가 실제로 좋다. 박 씨도 늘 유쾌하게 투병했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암을 이겨낸 후 한동안 유방암 환자 카페에 둘째 아이 사진을 올렸다. 동병상련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내 이야기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한별 교수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스스로 가슴과 겨드랑이를 만져보는 자가 진단을 수시로 할 것을 권했다. 유방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호르몬 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출산, 모유 수유 감소, 서구화된 식습관, 빨라진 초경과 늦어진 폐경으로 인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고, 유방암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방암은 세계적으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암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7, 8명 중 한 명꼴로 유방암이 발견된다. 국내의 발생 비율은 이보다 덜한 25∼30명 중 한 명꼴이지만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편에 속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치료 성적이 꽤 좋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유방암 5년 생존율은 90%를 넘어선다.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암 검진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92%가 0∼2기였다. 덕분에 치료 결과가 좋다”고 말했다.

  유방암을 예방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교수는 “아쉽게도 개인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다만 여러 연구 결과 유방이 처음 발달하는 사춘기 때의 식습관이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가공식품, 튀긴 음식을 피할 것을 당부했다.

  결국 검진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2년마다 유방 촬영을 하는 게 좋다.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이 나오면 6개월 혹은 1년마다 유방 촬영과 유방 초음파 검사를 받는 게 좋다.

  평소에 자가 검진을 자주 해야 한다. 아직 폐경 전이라면 월경이 끝나고 3∼4일이 지나서, 폐경 후라면 매달 하루를 정해 유방 전체와 겨드랑이를 손으로 만져 혹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 교수는 “박 씨 또한 이런 자가 검진을 통해 암을 발견한 사례”라며 자가 검진을 적극 권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