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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해외사진여행 - 중국의 고도 시안

by 안규수 2023. 7. 7.

   2023년 7.1 부터 5일까지 중국 시안 여행 중에 진시황 병마용기념관과 당현종과 양귀비가 노니던 화청지, 화산 서봉을 곤돌라를 타고 올라 북봉까지 험난한 돌 계단 내려가는데 그 풍광은 금강산에 버금할 만큼 아름다웠다. 여행은 인문여행과 산수여행으로 나눌 수 있다. 이번 여행 이 둘을 겸한 여행이어서 뜻 깊었다.

  진시황제의 큰 업적은 만리장성을 쌓고,나라마다 다른 지금의 문자(한자)로 통일하고, 지방권력을 타파하고 중앙 집권제를 확립한 것 등이다. 그도 인간인지라 오래 살고 싶어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복(徐福)에게 5백 궁녀와 함께 제주도로 보내 영주산(한라산)에서 불로초를 구한 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 라는 마애명을 남기고 귀국 길에 오른다.

  중국의 역사를 보는데 1000년의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5000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西安)을 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그만큼 우리에겐 장안으로 익숙히 알고 있는 시안은 주나라 시대(時代)를 시작으로 진나라, 한나라, 위나라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 수도로서 찾이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시안은 실크로드의 시발지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떠나본 외국여행길이었지만 때마침 여름방학 직후라 가는 곳마다 관광객이 인산인해였다. 단체관광객들 틈에 끼어 카메라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던 짧은 여정에서 현지의 역사를 보고 풍물을 감상하기란 당초부터 무리였지만 나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은 충분히 이루었다고 생각 한다. 

  진시황 병마용에서는 장엄하고 웅장한 군마상들의 위용은 절로 찬탄이 흘러 나왔다. 2천2백년 전에 만든 병마용 중 쭈구려 앉은 병사의 나막신 바닥이 미끄럼 방지를 위한 장치가 지금 운동화 밑바닦처럼 되어 있었다. 거기에 8천명 병사들 자세나 얼굴 표정이 똑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말들의 얼굴표정이 지금이라도 적진을 향해 돌진할 것처럼 눈을 부라리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흙으로 빗어 가마에  구운 것으로 그때의 도자기 기술을 가늠할 수 있었고, 지금도 발굴중인데 그 규모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한다. 이 병마용은 진시황제가 11세에 등극한 후 자기의 사후를 대비해 공사를 시작해  죽은 후 완성되었다. 모두가 진시황 능을 향하고 있어 진시황의 명령만 떨어지면 달려갈 것 같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병마용을 비롯, 진시황의 묘역, 진시왕의 지하궁전울 형상화한 진능지궁(秦陵地宮),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서려있다는 역대 왕들의 별장 화청지, 화청지 안에 있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엿볼수 있는 왕과 양귀비의 전용 목용탕, 당대의 역사를 대충 그려볼수 있는 섬서역사박물관, 중국에서 현존하는 최대의 도시성벽이라는 서안성벽, 서안 서민들의 삶을 엿볼수 있는 풍물시장풍경 등 좋은 추억으로 기억에 남을만 했다.

 

   진시황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실물 1.5배 크기의 군마상으로 현재까지 8천여구가 발굴되고 세계 10대 불가사의 걸작품이라고 한다. 앞부분의 긴 참호 안에는 진시황 호위부대 그리고 군사 8000여명과 말 500필, 전차 130대가 11줄 오와 열을 맞춰 열병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나의 버킷리스트 인 고도 시안 인문 관광은 참으로 알찬 여행이었고 보람이 있었다. 특히 이번 여행은 아들 딸들이 보내준 효도관광이어서 그 의미도 남달랐다. 꼭 한 번은 관광할 만한 고도시 시안 여행을 추천한다. 고맙다 아들 딸들 사랑한다. 더 자세한 것은 여행수필로 남기려 한다.

 

병사들 얼굴 표정이 각기 다르다​

​진시황 능

진시황 지하궁전을 형상화한 진능지​

화청지​

화청지 당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나누던 장소

화청지의 양귀비 나상​

양귀비 목욕탕​

당 현종과 양귀비의 침실이 있는 궁

향로, 백제의 향로와 비슷하다​

병사와 말들의 크기가 실물과 비슷하다. 말들의 표정도 같은 게 없다.​

시안 성벽의 웅장한 광경​

​시안성벽 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