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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꽃들이
사방에서 지펴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 하나
기억 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1942∼ )
할 일이 많은데 하기 싫고 바쁜데도 심심하다면 ‘상상 놀이’를 추천한다.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상상을 두서없이 적으면 소소하게 재미있다. 요즘에는 은퇴한 다음에 할 일을 상상하는 중이다. 닥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걱정이겠지만 오늘의 생각만큼은 내 자유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매년 사계절에 맞춰 꽃 여행을 가고 싶다. 겨울이 되면 당연한 듯이 ‘올해도 동백꽃을 보러 가야지. 암, 가야 하고 말고.’ 이런 생각으로 떠나고 싶다. 동백을 만나기 전에는 준비도 할 것이다. 동백꽃은 매우 문학적인 모티브여서 그것을 사랑한 시인이 여럿이다. 매년 그 시들을 모아 읽고 짐을 싸고 싶다. 그때 읽으려고 모아둔 시 중에서 하나를 추천한다. 꽃 시를 추천하는 일은 매우 기쁘다. 추천하는 마음이 꼭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하는 것 같다.
이 시는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요, 사랑을 되돌아보는 마음이요, 동백꽃을 즐기게 해주는 가이드다. 언젠가는 동백숲길에 가서 ‘잉걸불’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발음해 보고 ‘알전구’ 같은 꽃을 바라보겠다. 시 덕분에 상상은 생생해지고, 상상 덕분에 인생은 계속되기도 한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