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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편지

자아와의 처절한 싸움

by 안규수 2014. 10. 15.

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하루 되시길 축복합니다. ^0^ 


오늘 아침은 지용훈 님의 <자아와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칼럼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저는 교회에 다닌 지 27년 만인 1992년에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주님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경을 통해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며 교제하는 삶을 살게 되었죠. 

그리고 큐티 방법을 소개해주는 책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큐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 초창기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알 수 없는 곤고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지 5년 만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통해서 십자가의 도를 깨닫자마자 

그것이 자아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는 자아와의 처절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제 자아가 저를 수시로 절망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드러나 보이며 느껴지는 자아를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자아가 십자가에 이미 죽었다는 말씀(갈 2:20)을 믿고 선포할 것인가?’


내면에 심각한 갈등이 생겼습니다. 

저는 어린아이같은 믿음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자아가 죽었다는 것을 믿고 선포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말씀을 실상으로 믿고 선포할 때마다 사단이 제 믿음을 비웃는 듯했습니다. 

제게는 사단의 그 비웃음을 이길 다른 묘책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쓰여진 말씀이 사실임을 믿고 계속 입술로 선포하는 것밖에 없었죠. 

주님이 쓰신 성경말씀을 진리로 믿고 선포해드리는 것이 주님에 대한 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러한 처절한 갈등 가운데 또 다른 심각한 곤고함이 있었습니다. 

큐티 속에서 말씀을 새롭게 깨달았다고 기뻐했던 것조차 

제가 이미 알고 있는 선(先)지식의 테두리 안에 머물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죠.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제자리에서 맴도는 자신을 직시하게 된 것이죠.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저는 생수의 강이신 성령님께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깨닫고 제 삶에 적용점을 찾고자 하는 큐티 방식을 뒤로 하고, 

먼저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만 초점을 맞춰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그분이 내 안에 완벽한 진리로 계신다”라는 어린아이같은 믿음으로 기존의 큐티 방식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당시 제 큐티가 지식적인 차원에서 머물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책이 

잔느 귀용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The simplicity of prayer)였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성경읽기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게 해주는 것 

이전에 제 안에 계신 성령님께 집중하며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랑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기도할수록 예수님에 대한 옛 지식이 기도를 막았습니다. 

새 부대가 되고 싶은데 이전 경험의 옛 부대가 주님을 바라보며 더 사랑하는 것을 방해했죠. 

저는 그런 옛 자아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래서 자아가 이미 죽었다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제게는 복음이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나의 허물이

나의 못난 자아가

아직도 숨을 쉽니다


그동안 

지은 많은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았지만

나 자신을 내려놓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겹겹이 싸 놓았던

층층이 높이 세워 놓았던

나의 자아를 벌거벗겨 

십자가 앞에 놓았다면

지금의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닐 겁니다


다 벗었다 하면서도

핏물 같은 빨간 내복을

입고 있나 봅니다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시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영국의 케이 미술관에는 프레드릭 왓츠가 그린 ´소망´이라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동그란 지구 위에 눈을 다쳐 가리고 있는 한 여인이 손에는 작은 비파를 들고 있습니다. 

그 비파는 한 줄만 남겨져 있고 다른 줄은 모두 끊어져 있는 상태며 

배경은 어두워 제대로 분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여인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서려있지 않으며, 

오히려 한 줄만 남아있는 비파를 계속해서 켜는 포즈를 잡고 있습니다. 

프레드릭은 이 그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인간에게 그 어떤 시련이 닥친다 해도 소망만 있다면 극복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이라 해도, 눈이 다쳤다 해도, 소망만 있다면 인간은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비파의 마지막 남은 한 줄은 그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단순히 어떠한 일에 대한 바람과 생각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줄은 분명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고 말씀으로 인해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허황된 긍정과 막연한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연결된 소망의 줄을 잡으십시오. 


주님! 어려운 순간일수록 고개를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하나님은 나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심을 믿으십시오.<김장환, 나침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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