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보다가 황당해 질 때가 있다. 극중 인물이 갑자기 쫓기는 신세가 되거나 실의(失意)에 빠지면 무슨 해결책이나 되는 것처럼 “몇 년 배나 타고 와야겠다”고 말하는 경우다.
평소에 바다를 동경해 온 것도 아니고 그동안 해운 물류 사업에 관심을 가져온 것도 아니면서 느닷없이 배를 타겠다니, 참으로 생뚱맞은 소리다. 배라는 곳은 죄를 짓고 잠시 도피하러 가는 곳이 아니며, 생의 의욕을 잃었을 때 쉬러 가는 곳도 아니다. 가족이란 이름의 안전띠를 매고 바다 위로 매일 번지점프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배다.
어제 남편이 배에서 보내온 메일이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생긴 너울 때문에 열여섯 시간의 드리프팅(drifting)을 했고, 막 항해를 시작했을 무렵이었소. 미얀마 출신의 조리수가 주방 바닥에 쓰러져 있다는 다급한 연락이 왔소. 달려가 보니 그는 입가에 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소. 배는 이미 육지로부터 멀리 와 있는 상황인데 말이요. 위성전화로 의사를 연결해 응급조치를 물으니, 일단 링거를 한 병 투여한 뒤 빠른 시간 내에 병원으로 후송하라는 거였소. 스무 명의 선원 중 링거를 놓을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결국 선장인 내가 나섰소. 돋보기로 정맥을 들여다보며 링거 바늘을 꼽는데, 혹시 바늘이 혈관을 관통해 버릴까봐 손이 떨렸다오. 주사 바늘을 몇 번이나 찔렀다 뺐다 하는데도 그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소. 두 시간 전만해도 생글생글 웃으며 내 앞에 스테이크 접시를 놓아주던 사람이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손끝에 힘을 주어 바늘을 밀어 넣는 순간, 바늘이 쑥 들어가는 느낌이 왔소. 그리고 수액이 삼분의 일쯤 들어갔을 무렵, 그가 고맙게도 눈을 뜨며 의식을 찾았다오. 배 안에 몰아친 태풍은 이제 무사히 지나간 것 같소.”
미얀마는 1983년 아웅산 묘소 폭발 사건이 있었던 나라, ‘버마’의 새로운 국명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그 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선원으로 해외 취업에 나선다고 한다. 법대(法大) 졸업생이 우리나라에 오면 선실 바닥을 닦고 녹슨 선체에 페인트칠을 하며, 상대(商大) 졸업생들은 배의 밧줄을 정리하거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타고 있는 배에 갔을 때, 그들이 선내 휴게실에 모여 기타 반주에 맞추어 미얀마 노래 부르는 걸 들었다. 외로움을 이겨보려는 듯 그들은 한껏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오글오글 모여 있는 그들의 작업화를 보는 순간, 나는 목이 메었다. 그 작업화들이 푸른 바다 위에 애써 내고 있는 길이 보이는 듯해서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집어넣고 돌아서는데 무슨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구겨진 종이가 제 몸을 펴느라고 ‘바지락 바지락’ 소리를 내고 있었다. 종이 한 장도 원래의 모습, 원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그렇게 몸을 가누는데, 가족을 두고 떠나온 선원들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긴 승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 밤, 선원들은 대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사 놓은 선물들을 선실 바닥에 죽 늘어놓고 내려다보면서, 풀어진 선물 포장 끈을 다시 묶거나 새로 포장을 하면서, 또는 가방에 선물꾸러미를 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그렇게 뜬 눈으로 지새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非) 정규직 남편에서 다시 정규직 남편으로 돌아가는 날을 그들은 그렇게 맞이하는 것이다.
미얀마선원들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떡을 좋아한다고 해서 배가 입항할 때마다 몇 가지 떡을 해갔다. 배 위에서 당직을 서고 있다가도 내 모습이 보인다 싶으면 그들은 즉시 내려와 내 짐을 받아 들며 나를 친누이처럼 반겼다. 심근 경색증의 증세가 보인다는 의사의 판정 때문에 선원 생활을 그만 두고 돌아가야 했을 때, 말없이 굵은 눈물을 떨구던 미얀마 선원을 보았다. 추운 겨울날 갑판 위에서 순찰을 돌고 있는 미얀마 선원에게 다가가 기름때 묻은 그의 손에다 종이에 싼 팥빵 두 개를 쥐어주던 남편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세상의 오지(奧地)에서 만나 서로를 젖은 눈으로 바라보며 아픔과 외로움을 서로 보듬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여우같은 영악함으로 단련되어가고 있을 때 그들은 곰 같은 순박함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지는 모른다. 남편이 왠지 미얀마 선원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져간 떡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라든지, 승선 수당으로 받은 달러를 돌아앉아서 세고 또 세는 모습이라든지, 그리고 출항하는 배 위에서 나를 향해 양 손을 흔드는 모습까지도. 선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등대가 되어 세상의 파도를 헤쳐 나간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닮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들의 망향가(望鄕歌)가 선내에 울려 퍼지던 그 날, 배는 한 마리 순한 고래가 되어 조용히 바다를 헤엄쳐갔다.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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