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지리산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 중 이런 말이 있다.
경상도 여자는 실속도 없이 시끄럽고, 강원도 여자는 밍밍해서 소금 없이 감자 먹는 맛 같고, 충청도 여자는 남편이 뭘 잘못하면 그것을 섣달 열흘을 긁고, 서울여자는 돈 떨어지면 정 떨어지는 여자다. 그런고로 여자는 남남북녀란 말이 있듯이 북한 여자와 제주도 여자가 최고다. 하지만 북한여자와는 결혼을 할 수 없고 제주도는 제주 남자하고만 결혼을 한다고 하니 그다음으로 전라도 여자가 좋다는 것이다. 전라도 여자는 남편의 사업이 망하면 속저고리나마 팔아 술 한 병 사들고 와 "이녁 이 술 마시고 기운 내시오" 하는 사람이 전라도 여자란다. 각 도의 기질을 우스개 삼아 말하는 것이겠지만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싶다.
경상도는 일단 시끄럽고 무뚝뚝하다. 경상도 중에서도 부산 말은 더욱 억양이 투박하면서 거칠다.
“뭐꼬” 하면 싸움의 시작이고 “마 됐다” 하면 끝이다. 뭐가 시작이고, 뭐가 됐는지 알수가 없다. 나 역시도 경상도 여자라 그런지 꽤나 말이 드세고 직선적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오지랖도 넓다.
나를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 알게 된 사람들은 내 글이나 목소리 듣고는 나를 상상하기를 덩치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으리라 상상 하는지 실제 나를 만나보고는 깜작 놀란다. 가늘고 호리낭창한 내 모습를 보고는 "이렇게 여성스러운 여자였어요"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남자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다. 얼마나 내가 무뚝뚝하고 거칠게 글을 쓰고 말을 했으면 나를 남자로 생각했을까 싶어 반성하게 하는 부분이다. 또 시끄럽긴
얼마나 시끄러운지 내가 듣기에도 거북하고 기분 상하는 일이 시장에 가면 종종 일어난다.
아들이 방학이라고 잠시 내려왔다. 혼자 십여 년을 객지에서 사먹는 밥이 오죽 지겨울까 싶어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광어넣고 미역국을 끓이기로 했다. 식당에서 사먹는 미역국이라야 그저 멸치다시다 물에 미역
썰어 넣고 부르르 끓인 멀건 미역국이라 그런지 미역국은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살아있는 광어나 가자미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 아뿔사 하필이면 오늘이 쉬는 날이다.
혹시나 하고 시장골목 생선가게에 가자미라도 있을까 해서 돌아오는데 마침 좌판에 가자미가 보인다. 꿩 아니면 닭이라고 반가운 마음에 불쑥
“이 가자미 국 끓일 건데 싱싱한가 모르겠네.” 하고 혼자 말하듯 했더니 주인아줌마
“싱싱하지 안 싱싱한 거 팔겟소" 하며 쥐어박는 소리를 한다.
"싱싱하지 않으면 찌개나하고" 채 말도 끝나기 전에
“남의 물건을 뭐라 카능교” “추분데 아침부터 나와 선 사람보고” 하며 화를 벌컥 낸다. 누가 뭐랫다고
그리고는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를 물로 헹군다. 예전 같으면 "안 사요"하고 돌아서겠지만 그리했다간 뒤 꼭대기 따라올 욕을 어찌 감당 하겠는가. 이제는 나이도 들어 욕 듣기도 싫고, 몸도 아프고, 성질도 죽고, 거기다 칼까지 들고 있으니 부처 된 마음으로 “마 주소” 하고 받아들고는 못내 억울해서,
"내 돈 주고 물건사면서 기분 상하네" 한마디 했더니
“우리 엄마가 내를 이리 낳아놓았는데 우짜요,”
“그래도 내 아는 사람 내 싫다 카는 사람 없소” 한다.
“문디 여편네 다 늙어가지고 엄마는 왜 들먹이노, 다시는 오나봐라” 하며 혼자 부글부글 끓는 속을 눌러 앉힌다. 비싸다고 한마디 더했다간 경을 칠 판이다. 손님은 왕이라는데 왕은커녕 시종도 못된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도 나는 간도 쓸개도 없이 부산을 참 좋아한다.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맨 얼굴로 사는 것 같은 솔직함이다. 무례하고 불친절해도 뒤에 뭘 감추고 있는 듯한 음흉함이 없다는 것이다. 큰소리 빵빵 치는 것이 거짓이나 사기 치는 것 같지는 않고 기껏 해야 허풍이지 싶다.
저 사람의 진짜 모습이 뭘까, 저 사람의 말이 진실일까 하는 의심이 안 든다는 것이다. 저렇게 내지르긴 해도 조금만 친해지면 금방 따뜻해진다는 것이다. 참 무뚝뚝하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 그 속에 나도 포함되고 있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싸울 듯 내지르지만 친해지면 정 깊은 사람들이다. 무슨 나라 구할 일이라고 남 안된 것을 보면 서푼도 안 되는 자비심이 발동해서, 힘이고 지략이고 돈이고 할 것 없이 거들고 나선다. 상대에게 고민이 있다 생각되면 원하지도 않는데 남 먼저 걱정하고 의논상대로 자처하고 일익의 힘이 되어주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오해를 받는 일도 있고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사람이 따숩다.
나도 서울 여자처럼(서울여자라고 다 그렇기야 하겠냐만) 돈 떨어지면 정 떨어지고, 소금없이 감자 먹는 맛 강원도 여자 같을지라도 나긋나긋 하고 싹싹해서 남의 비위 건드리지 않는 여자였음 좋으련만 태어남이 경상도니 그 기질을 어쩔 수가 없다. 조금만 부산에서 좀 떨어진 먼 도시에 있으면 시끄럽고 투박한 부산과 부산사람이 그리운 것을 어쩌랴, 누가 뭐래도 난 오리지날 경상도 여자. 실속 없이 시끄러운 보리 문디다.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부산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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