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시 읽고 싶은 수필

어떤 수필을 쓸것인가. - 곽흥렬

by 안규수 2015. 5. 4.

 

 

수필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저 단순히 자신이 체험한 것을 꾸밈없이 풀어만 놓으면 그대로 수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참으로 수필을 욕보이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을 체험과 사색의 글이라고 했지 체험의 글이라고는 하지 않았지 않은가. 체험만 있고 사색이 결여된 글은 엄밀하게 따져서 잡문이지 수필은 되지 못한다. 깊이 있는 사색이야말로, 수필과 잡문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이다.

 

세상에 나와 있는 수필작품들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본다면, 대체로 체험수필과 사물수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체험수필은 보다 서사적이고 사물수필은 보다 사색적이다. 그러니 어느 쪽을 낫게 보느냐 하는 것은 각자의 기호나 취향에 관한 문제이다. 다만 체험수필이 사물수필보다 쓰기가 수월하고 독자를 확보하는 데도 용이하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상에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가진 수필가를 찾기가 쉽지 않고, 또한 고급한 독자보다 저급한 독자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독자가 많다고 해서 꼭 문학적 향기가 더 높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연전의 일이다. 이름 있는 한 출판사에서 명망 높은 어느 철학자의 사상을 담은 책을 출간했을 때, 초판 삼천 부가 거뜬히 소화되었다. 의외다 싶으면서도 재판 이천 부를 더 찍었다. 역시 무난히 소진이 되었다. 여기에 고무되어 3쇄 오천 부를 더 발행했다. 그랬더니 고스란히 재고로 남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지성인은 5천 명 정도라고 자조 섞인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이는 좀 극단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번쯤 깊이 음미해 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화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체험수필이 사물수필보다 독자 확보 면에서 유리하다고 해서 문학성 혹은 예술성이 더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공정한 심사를 거쳐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품들은 거개가 사물수필이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예술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당연히 사물수필 쪽에 기울어 있음을 방증한다.

 

우리 수필 쓰는 사람들은 이 점을 유념해서 창작활동에 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사물수필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사물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과 고도의 사고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심자일 때는 체험수필에서 출발할 일이며, 차츰 필력이 높아지면 서서히 사물수필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