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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수필

U 턴 인생 /장영희

by 안규수 2015. 10. 27.

 U 턴 인생




      
      
      나는 지독한 방향치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디를 가든 열 번 이상 가지 않은 곳은
       절대로 혼자 다시 찾아가지 못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이 문제가 더욱 심
      각해졌다. 태생적으로 공간개념을 타고나지 못해서이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활자로 
      된 것은 모두 다 읽어 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나는 운전하면서도 눈에 띄는 간판
      을 다 읽어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한눈팔다 걸핏하면 길을 잃고 헤맨다. 
      그럴 때면 난 무조건 그 자리에서 U 턴을 해서 다시 길을 찾아 나선다.
      간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대로를 벗어나 작은 동네나 뒷골목에는 참 재미 있
      고 재치 있는 상호들이 많다. 우리 동네만 해도 '돈으로 돈(豚) 먹기', '김밥과 함께라
      면', '순대렐라', '우(牛)찾사' 같은 음식점들이 있는가 하면 '깎고 또 ', '버르장머리' 
      같은 미장원도 있다. 얼마 전에는 '있다  없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국민가수 태진
       아 동생이 하는 고깃집'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나왔었고, 우리 조교는 '한때 이효리의 
      남자 친구가 하는 집'이라는 떡볶이 집 간판도 봤다고 한다. 조교가 문득 물었다.
       "우리말 처음 배운 외국사람이 보고 제일 놀라는 간판이 무언지 아세요?" 
      모르겠다고 하자 "'할머니 뼈다구 해장국'이요" 한다. 맞다. 나도 간판 보고 놀란 적
      이 있다. 용인 근처에서 본 '남동생 고기'라는 음식점 간판이다.
      동서남북도 가늠 못하면서 이렇게 간판이나 읽고 다니니 허구한 날 길을 잃고 헤매
      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며칠 전 최 선
      생님과 함께 파주 근처에 간 적이 있다. 
      최 선생님은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시고 자녀들이 살고 있는 뉴욕에 서 5~6년 사
      시다가 다시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오셨다. 통일로를 따라 운전을 하시면서 최 
      선생님은 눈에 띄는 간판마다 일일이 토를 다셨다. "'죽여주는 동치미국수집?' 
      아, 맛있겠다. '꿈에 본 고향'? 좋은 간판이네. 어딜 가도 고향 같은 데가 없어. 
      정말 꿈에 보이더라고.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죽는다던데."
      마침 한쪽 모퉁이에 '남매 철공소'라는 간판이 눈에 띄자 다시 말씀하셨다. "'남매
      철공소'라… 어딘지 슬퍼 보이는데… '남매 식당'은 몰라도. 그렇지 않아요?" 그
      러고는 '남매 식당'에 대한 사연을 말씀하셨다. 과부였던 최 선생님 어머니는 시장 
      한구석에 가마솥을 걸고 국수를 팔아서 생계를 꾸리셨다. 변변한 간판도 없었지만 
      시장 사람들은 늘 엄마 곁을 떠나지 않는 남매 때문에 '남매 식당'이라고 불렀다.
      "그나마 팔다 남은 국수도 귀해서 마음껏 먹을 수 없었지. 헌데 이 세상에 온갖 좋
      고 비싸다는 음식을 다 먹어 보아도, 그때 그 국수 맛은 잊을 수가 없어. 
      난 정말이지 죽기 전에 어머니가 파시던 국수 한 그릇 다시 먹어 보는 것이 소원
      이라오."
       이북이 고향인 최 선생님은 다시 못 갈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한동안 침묵
      을 지키다가 말씀하셨다. 
      "살아보니 인생은 U턴이야. 이것저것 원하는 것을 좇아 미친 듯 여기저기 떠돌아 
      살다가도 결국 돌아오고 싶은 곳은 내가 떠난 그 고향이거든." 
      '인생은 고향으로의 U턴'이라는 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고향은 따뜻하고 정답고, 
      그리고 이제껏의 실수를 다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이다. 매일 한눈팔다
      가 길 잃어버리고 U턴으로 다시 길 찾기에 나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말이다. 
      천방지축 방향감각 없이 돌아가는 내 인생도 어쩌면 늘 새로운 길을 배워 가면서 
      U턴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의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한 
      말이 생각난다. 
      "떠나라! 그리고 고향의 아가씨들이 가장 예쁘며 고향 산천의 풍치가 가장 아름
      다우며 그대의 집 안방이 가장 따뜻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면, 그때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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