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달콤한 입술
이태호
돈을 센다. 침을 발라 한 번 더 확인한다. 만 원짜리 지폐 사십 장이 틀림없다.
돈의 출처는 노동의 대가다. 도로공사현장에서 깃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이다. 애초 그 일을 담당한 것은 초등학교 동창생이다. 집안일로 닷새 동안 자리를 지키지 못할 처지였기에 부탁 받은 한시적 일자리다. 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무료함은 물론 온 몸뚱이가 쑤셨다. 하지만 약속된 기일은 확실하게 지킬 필요가 있었다.
아랫주머니에 든 돈이 자꾸만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작년 여름 그늘장수 이후 첫 번째 수입이다. 의미가 남달랐다. 받아 쥔 순간부터 절로 힘이 솟았다. 돈의 위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당한 발걸음은 물론 뱃가죽까지 불쑥 일어섰다. 어디 그뿐인가? 한 편의 단편소설까지 창작했다. 주제와 소재까지 얼른 떠올랐다.
“여보, 오늘 저녁은 외식이오.” 내가 들어도 힘진 목소리다. 출근 때마다 힘든 일을 무엇 때문에 맡았느냐 공시랑 댔었다. 하지만 ‘돈’이란 말을 듣는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내나 나나 범인(凡人)이기는 매일반이다.
쇠갈비 2인분과 비빔냉면 두 그릇, 소주 한 병을 먹어치웠다. 5만3천 원이다. 하루 품값의 절반 이상이다. 두툼했던 지갑이 갑자기 홀쭉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뱃속이 따뜻한 만큼 기분 또한 최고다. 당당하게 취득한 돈일수록 행복은 배가된다. 이처럼 돈의 순기능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의 인생길엔 돈과의 어깨동무는 필수적이다. 황금을 돌같이 보라는 견금여석(見金如石)은 웃기는 금언으로 전락했다. 만약 그분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백치일 가능성이 높다. 돈은 그만큼 악마의 입술처럼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돈과의 입맞춤이라면 악마의 입술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나 달콤했던지 순간의 황홀감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오늘도 악마와의 입맞춤으로 혀가 잘린 사람들이 중언부언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겉모습만으로는 도대체 자살 할 이유가 한 건도 없는 사람들 같았다. 참으로 안쓰럽다. 이처럼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은 치명적이다.
정치판은 그야말로 개판보다 못한 것 같다. 개들의 짖음에는 타당성이 있다. 종자가 달라서 소리의 차이는 있지만, 당위성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정치꾼들이 떠드는 소리는 소음공해다.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언론도 많이 달라졌다. 정론·직필의 선구자 깃발도 찢어진 모양이다. 말 중에서 가장 애매한 것은 ‘그랬을 걸’이다. 사람 잡는 말이다. 지금도 떠들고 있다. 마치 자신은 순진한 양이라도 되는 듯이 저쪽이 늑대라고 고래고래 목청을 높인다. 어느 쪽 말이 진실일까? 양쪽 다 믿지 못하겠다. 그렇다면 변호사나 판검사는 믿어도 될까? 아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제기랄,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기에는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그 때문에 더욱 울화통이 터진다.
어쩔 것인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소리라도 칠까? 들어줄 사람들 같았으면 이 모양 이 꼴일까. 주권이란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사문화(死文化)된 지 오래다. 한마디로 말짱 도루묵이다. 돈 앞에서는 법 또한 꼬리를 내린다. 이것 참 야단났다.
아! 돈의 위력(역기능)을 뿌리까지 몽땅 뽑아낼 묘책은 어디 없을까?
정답은 ‘없다!’이다.
돈! 돈! 달콤한 악마의 입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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