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人의 소중함
박 정승은 노모(老母)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눈물로 하직의 절을 올리자 노모가
'얘야! 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 표시를
해두었다' 고 말한다. 박 정승은 그런 자리에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노모를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국법을 어기고 몰래 모셔와 봉양을 했다.
그 후, 당나라 사신이 왔는데, 똑같이 생긴 말 두 필을
끌고 와 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
맞추어보라는 문제를 제시했다. 그리고 못 맞히면 조공을 올려
받겠다는 것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박 정승에게 노모가 해답을 제시해 주었다.
"말을 굶긴 다음 여물을 주렴, 먼저 먹는 놈이 새끼란다."
노모의 현명함이 왕을 감동시키게 되어 그 이후 고려장(高麗葬)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얘기가 야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의 격언에
'집안에 노인이 없거든 빌리라' 는 말이 있다고 한다.
삶의 경륜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말해주는 격언이다.
가정에도 사회에도 지혜로운 노인이 필요하다.
물론 노인이 되면 기억력도 떨어지고, 남의 얘기
잘 안 들으려 하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경향도 있지만,
그러나 기억력을 잃은 그 자리엔 통찰력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적 대사를 가리는 자리는 반드시 노인의 지혜와
경험을 필요로 하는 자리다.
공자가 죽었을 때 살아있는 논어를 잃었고
노자가 죽었을 때는 도덕경의 비의를 잃었다.
소크라테스가 죽었을 때, 혹은 세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가 죽었을 때 그가 세상에 나서 얻고
이룩한 많은 지적인 성취들과 체험적인 진전들과
감성과 상상의 개화를 통째 가지고 가버렸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남긴 미량의 지식들을
남은 가루소금처럼 혀에 대고 겨우 맛보며
스스로를 깨우칠 뿐이다.
어찌 이름을 누렸던 그들만 성취를 했겠는가.
방식은 다르고 방향은 달랐을지언정 모든 인간은
자기의 길로 나아간 도의 자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이 실패와 어리석음과 나약함과 죄악이 뒤섞여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거기엔 주어진
수명만큼 긴박하고 절실하게 나아간 진전이 있었다.
도서관의 책들은 그런 진전들의 부스러기이다.
한 인간이 죽음을 맞을 때,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통찰은, 인류를 귀한 도반으로 보는 큰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 만하다. 인간 속에 깃드는 영성과 시간이
축적해놓은 내밀하고 다채로운 성취를 살피는 마음.
걸어다니는 수많은 도서관들에 대한 경배.
우리는 늘 가장 좋은 도서관들을 무심코 잃어버리고,
다시 쩔쩔 매며 새로운 도서관을 짓는 바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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