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행복한 아침입니다. ^0^
지난 간 밤에도 평안한 쉼의 시간을 보내셨는 지요?
저는 하노이에서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어제 밤 공항에서 바로 호텔로 오는 바람에 하노이 날씨를 어젠 느끼진 못했네요.
많이 더워진 듯 합니다. 호텔에서 인사가 많이 더우시죠라고 바뀐 걸 보면...^0^
삶의 우선순위가 바로 '가치관' 이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나 대신 누군가 할 수 있는 일 보다
내가 우선해야 하는 더 중요한 가치이겠죠?
내 아내(남편)의 남편(아내)...
내 자녀들의 아빠(엄마)...
내가 하는 일과 사역은 누군가 대신 할 수 있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가장 소중한 가치이겠지요.
가정 식탁이 회복되길...
가족의 거실 문화가 회복되길...
부부의 침실 대화가 회복되길...
매일 매일 가정으로 출근하시는 아빠(엄마)들이 되길 소망해 보는 아침입니다. ^0^
오늘 하루 한 주간의 업무 잘 마무리하시구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멋진 주말 만들어가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존경합니다. ^0^
오늘 아침도 유기성 목사님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복음>이라는 책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하루를 힘차게 열어가길 소망합니다. ^0^
주님은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써버리고 완전히 거지가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조금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탕자에게 좋은 옷과 반지와 신을 신기고 잔치를 벌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입니다.
그러면 탕자가 어떻게 이런 구원을 받게 되었을까요?
물론 전적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나 탕자가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면 그 사랑과 은혜를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탕자가 비참한 처지가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만으로 탕자의 인생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돌려 아버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그 걸음이 무거웠겠지만 그래도 탕자는 아버지 집을 향해 걸어갔고 결국 아버지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믿음은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로 자꾸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가장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우리는 집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학교에 있든지
어디서나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버지를 바라보고 아버지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일생 동안 계속되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로 가는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우리는 그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놀라운 구원을 이미 다 이루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주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 삶에서 구원받는 자의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영성일기를 꾸준히 써왔지만 끊었던 음란 동영상에 다시 무너지고 나서 낙심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 영성일기를 쓰면 정말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건가요?”
이 질문이 저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영성일기를 쓰면서도 다시 육신에 지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성일기가 죄를 이기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면 영성일기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다시 죄에 무너진 것은 죄에 지지 않을 만큼,
주님이 자신과 함께 계신 것을 바라보는 눈이 분명히 뜨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성일기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다시 죄에 빠진 것을 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죄에 대하여 민감하고 강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목사에게 자신의 실패를 고백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일입니까?
주님의 역사입니다.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짓던 죄가 이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된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근심을 강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영성일기를 통해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에도 우리에게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시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용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근심조차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주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런 형편에서도 믿음으로 그것을 이겨내고 놀라운 구원의 삶을 사는 분들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의 차이입니다.
매일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제는 진짜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엄청난 축복을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어설프게 믿어도 안 됩니다.
신념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의심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안에 오신 주님을 믿으시고, 그 주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항상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주님을 기억하세요.
그다음은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주님을 바라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한 걸음씩 계속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마서 8장 3,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복음 15장 4절
주님,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향해 걸어가기로 결단하오니 구원받은 자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오늘 아침 함께 나누는 따듯한 묵상>
시 133:1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도거함이 어찌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세계적인 대기업인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전설적인 경영자로 불렸던 잭 웰치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이 책에서 ´나´라는 1인칭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 싫은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모든 일들은 결코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서전을 쓸 때는 때때로 분명히 ´우리´가 한 일조차 ´나´라고 써야 한다는 강요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독자 여러분께 부탁을 드립니다.
이 책에서 ´나´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지금까지 나와 함께 했던
나의 동료들과 친구들까지 함께 포함하는 것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많은 전문가들이 잭 웰치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경영자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높은 위치에서도 그는 자만하지 않았고
자신의 책을 통해 먼저 동역자들과 협력자들에게 자신의 실적을 공유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자랑할 것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내 삶을 통해서 이뤄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귀한 동역자들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내 삶을 통해 오직 주님의 십자가와 주님의 발자취만이 드러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반드시 복되고 형통할 것입니다.
주님, 나의 자랑과 욕심을 나타내는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의 역사하심만을 나타내는 인생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나침반출판사 www.naboo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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